죽산아이
“양파 캘 때 다 되었네요”
이웃들이 때에 맞춰 일러 준다. 난 그에 맞춰 며칠간 수확 날짜를 만지작거린다.
오늘이 D데이.
‘갈 때’, ‘거름줄 때’, ‘뿌릴 때’, ‘심을 때’, ‘약줄 때’ ,중간중간 “물줘야쓰겄구만”
그러다가 마침내 ‘캘 때’.
검은색 제초비닐이 덮혀 있을 때는 양파밭은 우중충하고, 누르끼리하다. 비닐 구멍 사이로 드러난 모양도 그리 크지 않고. 내심 은근 속상했다. 하지만 다른 농부들 반의반도 공을 안 들여 놓고 잘되기를 기대하는 내가 나쁜 놈이지 싶었다. 그런데 비닐을 걷어내니 다른 세상이다. 각자 성질을 품고 알알이 뿌리 내리고 앉아있는 ‘으젓함’에 감탄. 굵직하다. 신나게 한알 한알 손 갈고리로 캐냈다. 그냥 캐내기가 아쉬워 카메라를 지면에 대고 그들 가까이서 내 생애 최초로 ‘캐기 직전의 맛’을 음미했다.
‘사는 것’에서 ‘캐는 것’으로 내 삶은 진화하기 시작했다. 양파를 많이 먹는 우리집에서 그들은 서너개부터 5kg, 10kg망에 들어있었다. 시절에 따라 가벼운 선택의 갈림길에서 비싸네, 싸네 수동적인 고민으로 일관하다 값을 지불하고 얻는 존재였다. 그 외에는 이 친구들과 공유하는 정감은 없었다. 하지만 도시적 삶결을 벗어나니 ‘밭 갈 때’에서 ‘캘 때’까지 시간과 공간, 근심과 환호, 귀찮음과 기쁨등이 크고 작은 리듬을 타면서 ‘곁’이 된다. 그리고 끼니끼니 밥상머리에서 다양한 이야기꺼리로 재구성된다. 어스름한 저녁 살림집 앞마당에 풀어 놓는다. 한동안 좋은 볕과 바람으로 말리기 위해서다. 지난주 초에는 마늘을 캤다.
양파·마늘은 대표적인 귀촌이다.
‘귀촌’을 캐서 맛나게 먹는다.
김제 죽산에서 누리는 ‘삶터 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