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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병권 Jul 24. 2024

뒷것보다 더 뒷것 같고 동시에 앞것보다 더 앞것이었던.

어떤 추도사

     

어떤 추도사.     

“추도사를 해주세요”

갑작스레 최영찬교수 장례식에서 요청을 받았다. 손학규 선생, 류종일 선생, 이병호 선배의 말씀에 이어 단상에 나가 그저께 아침의 상상을 시작으로 형을 추모했다.     


저는 서울농대 79학번으로 영찬이형 2년 후배이고, 김상진기념사업회 회원입니다. 장편다큐 <1975.김상진> 감독이고 지금은 2025년 김상진열사 할복의거 5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장으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김상진열사50주년 슬로건과 포스터, 앞으로 할일등을 스토리텔링 하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하늘을 들락날락 상진 형님을 만나 뵙는 요즘입니다.     


그러던중 

그저께 아침 김민기 선배 부고가 떴습니다.  “아~!” 장탄식 속에 70년대로 날아가 있는데 이번엔 최영찬 선배가 우리 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순간 하늘에서 만나는 세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상진 형님이 68, 김민기 선배가 71, 최영찬 선배가 77학번입니다. 상진 형님은 왼품으로 민기 선배를, 오른품으로 영찬형을 반겨 맞이합니다. 세분은 어깨동무하고 그간의 일들을 풀어놓으며 서로 격려하고 눈길을 마주쳤습니다. 1970년대의 시대정신과 결이 맞았던 세분이기에 쳐다보는 나도 흐뭇했습니다.      


영찬이 형과 나는 세가지 영역에서 키워드를 공유합니다

90년대 농업농촌전자상거래, 친환경농산물, 민주화운동.

영찬선배가 창업한 벤처기업 이지팜의 전자상거래 담당 이사로 2000년대 초반에 일했고, 이어서 친환경농산물 사업으로도 곁을 나누었습니다. 개인적인 연으로는 2010년 무렵 저는 경기도 화성 시골집에 살았습니다. 아내가 암투병중일 때 옥수수, 호떡등 소탈하기 그지없는 먹거리들을 들고 자주 찾아오셨어요. 방에도 안들어오고 마루에 걸터앉아 특유의 도란도란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네고 아내에게 눈짓으로 격려 합니다. 아들내미 딸내미 등을 토닥거리며 용돈도 주시고... 그 장면장면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 대학교수가 제 가족에게  베푼 ‘최선’이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뒤에서 밀어 줄 때는 하염없는 ‘뒷것’이지만 동시에 불의한 세상과 맞장 떠야 할 때는 서울대교수직을 걸고 누구보다 앞장선 ‘앞것’이었습니다. 이명박때 4대강 반대투쟁 선봉에 서서 싸웠던 형이 생각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앞것’보다  ‘새것’이 더 어울립니다. ‘새로운 길을 찾아가는 존재’ 말이죠.    


영찬이형 잘가세요. 그곳에서는 아프지 않은 몸으로 맘껏 나래를 펴시고....      


오랫동안, 김상진

오랫동안, 최영찬

그렇게 형을 그리워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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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1층 행사장에서 최영찬교수 추도식을 마치고 김기사회원들과 바로 위층 김민기선배님 영전에 인사를 드렸다.      

오랫동안, 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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