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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고 말았습니다

오랫동안, 김상진

by 안병권

4분이라는 시·공간에 지난 50년이 울림·떨림·기쁨가득 머금고 뛰어 들어왔습니다.

김상진열사 할복의거 현장 낭독육성 원본카세트테이프(1975년 4월 11일 녹음본)재생하고 디지털음원으로 전환했습니다.


서울 송파 김의장(원예72)선배 댁을 방문 인터뷰하고 50년간 보관해오던 김상진열사 육성원본테이프를 기증 받았습니다. 장영철PD가 동행 촬영을 맡아주었습니다. 점심은 선배가 맛있는 회정식으로 대접해주셔서 거나하게 낮 술도 한 잔 했습니다.

용산에서 카세트테이프플레이어와 USB 구입해 김제 집으로 내려와 테이프 재생작업에 돌입했습니다. 긴장 되고..... 안 나오면 어쩌나.... 수십년을 작동안한거라 조심조심 혹시 모를 상황이 염려되어 앞면을 다 돌렸습니다. 초조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침이 바짝 마르기 시작했고 뒷면으로 돌려 다시 녹음 재생버튼 꾹.

순간

상진이형이 살아생전 스물여섯 청년학생으로 제 앞에 홀연히 나타나셨어요.

유명한 서울농대 수원캠퍼스 미공군비행장 전투기 소음이 두차례 지나갑니다. 이래저래 혼잡·분주한 현장분위기(당시 300여명 학우들의 반유신집회)가 고스란히 전해져옵니다.

(마지막에 칼로 할복하는 순간) 놀라 소스라치는 학우들의 비명소리를 끝으로 테이프 녹음은 끝납니다.

총길이 4분여.

양심선언문이 ‘육성 완전체’로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나는 삼창했습니다. 괜히 혼자 일어나서 허리 돌리고 손치켜들고 난리났습니다.

우리가 열사 육성으로 알고 있는 것은 1975년 기독교방송(CBS)에서 송출한 방송분으로 1분 20여초짜리입니다. 저도 다큐<1975.김상진> 제작할 때 그 육성이 최종이라는 결론을 가지고 작업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정이 있어 엔딩부 1/4만 읽은게 아니라 처음부터 녹음이 진행된 것을 방송국에서 잡음이나 소음빼고 시간을 고려하여 편집 방송한듯합니다.

몇마디는 양심선언문에 없거나 다른 내용도 있고 중간중간 호흡을 가다듬는듯한 터울도 있습니다.

열사가 읽은 내용 텍스트로 정립하고 전체 원본을 공유하겠습니다. 이 의미로운 역사를 생성케 한 김의장선배와 그 따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촬영 마치고 선배가 테이프를 기증해주셨습니다. 두 손이 떨렸습니다. 덕분에 김상진열사 50주기 기념사업이 풍성하고 깊어졌습니다.

김의장선배님 고맙습니다^^


다시, 민주주의

이 땅의 영원한 민주주의 푸른 잎사귀가 번성하도록

오랫동안, 김상진

김상진열사 50주년기념사업 추진위원회 위원장 안병권

50주기 기념사업후원 [농협]1193-01-001167 (사)김상진기념사업회-기부금영수증발행

카세트테이프들고둘이서접사.JPG 원본테이프를 기중받다
김의장72.JPG 김의장선배(서울농대 원예과72학번)
김의장안병권.jpg 댁앞에서 선배와 나란히
주의개봉못함.JPG 50년 보관
촬영중김의장.jpg 인터뷰중
테이프수령하는안병권.JPG 테이프 기증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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