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준비하는 일상의 기록
한 해의 마지막 날과 새해의 첫날, 그 가느다란 경계선을 함께 넘는 이는 매년 달라진다. 올해는 고향에서 부모님과 함께 했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다. 한 해 마무리하며 잘한 일 못한 일이 무엇인지 더듬어 보지도 않았고, 새해를 맞이했다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그저 지난해 보다 주름이 진해진 부모님과 삼시 세끼를 해 먹으며 소파 위를 뒹굴거렸고, 넷플릭스를 헤집어보았고, 시시한 농담을 나누고, 에스키모인처럼 털패딩을 뒤집어쓰고 밤산책을 했다. 손톱처럼 앙증맞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에세이가 떠올랐다. 제목이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였나?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몇 번의 새해를 부모님과 맞이할 수 있을까?”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분명 지난해 아버지의 초기 전립선암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엄마 역시 넘어지면서 팔목이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수술로 철심을 박고 일상생활에 문제가 없는 상태이다. 두 분 다 또래들과 비교하면 정정한 편이고, 나 역시 건강검진에 큰 이상은 없으니 이변이 없다면 우리들의 새해는 열 손가락 카운트는 훌쩍 넘길 것이다. 아닌가? 부모님의 나이를 다시 생각해 보니 무사히 열 손가락 카운트를 하기 위해서는 행운의 여신의 도움과 관음보살의 자비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였을까? 미래만 바라보며 달려가던 내가 과거의 추억을 더듬게 된 시점은? 언제든 원할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그리운 장소로 달려갈 수 있을 거라고 해맑게 확신하던 나의 유년기, 혹은 청년기는 언제 끝이 났을까? 인간에게는 정해진 시간이 있고, 인연에는 어울리는 시절이 있고, 그 모든 것들은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고 끝나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지하던 순간부터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 버렸다.
몇 년 전 구순을 넘긴 할머니는 화장실을 가다 넘어져 엉덩이뼈가 부러졌다. 응급실로 옮겨져 위기를 넘겼지만, 앞으로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해야 한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고는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고향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 옆 마을에는 할머니, 큰아빠, 큰엄마 그리고 사촌오빠들이 살던 큰집이 있었다. 할머니 방 아랫목은 늘 뜨끈했고, 항상 틀어져 있던 TV에는 철 지난 사극과 자연 다큐멘터리, 때때로는 박진감 넘치는 레슬링 경기가 펼쳐졌다. 해마다 TV 볼륨이 과도하게 높아졌고, 할머니의 잠은 점점 더 늘어났다. 기억이 깜빡이는 날들도 있었지만, 그 시절 엘리트 신여성이었던 할머니는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다. 어느 날은 젊은 시절에 외운 시를 읊어 주기도 했고, 노인정에서 그린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다. 볕이 좋은 날은 할머니와 팔짱을 끼고 동네를 산책하기도 했다. 피곤해하는 할머니의 다리를 조물조물 주무르다 보면, 습관처럼 “자고 가라”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다가 곧 내가 불편할까 “얼른 가 보거라”는 말로 손녀를 배웅하시던 나의 할머니, 할머니는 이제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이제 다시는 그런 다정한 순간을 마주하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가 머물고 계신 곳은 고향 집에서 차로 30분 이상 떨어져 있는 요양병원이다. 먼 친척이 있어서 그나마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라고 했지만, 교통편이 없어 부모님이나 큰집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할머니를 보러 가기가 힘들다.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몇 달 전 외국에 머무는 동생이 갑자기 할머니 생각이 난다고 귀국했을 때다. 아기처럼 작아진 할머니는 조그마한 침대에 엎드려 가느다란 숨을 쉬고 있었다. 거동조차 힘들었지만, 손자 손녀만큼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당신이 있는 곳이 요양병원인 것은 전혀 알지 못하는 듯 “저 방에서 놀다 가라”라는 말씀을 하시면서 다시 잠에 빠져 드셨다. 내가 차를 몰고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한 다음번 할머니와의 만남은 아마도 올해 설날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전일 수도 있고.
이제 가족들은 매 순간 할머니를 만날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다. 어쩌면 이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큰아버지의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을 목격하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하지만 조금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리는 적어도 아주 오래도록 이별을 준비할 수 있으니까. 사랑하는 존재와 갑작스러운 헤어짐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이별준비는 오래 할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매 순간 상대에게 최선을 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매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감각을 예민하게 가져가고 싶다. 그런 삶에는 마치 부록처럼 최선을 다하는 태도와 성의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이게 쌓이다 보면 꽤 괜찮을 인생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언제나 이별을 준비하는 사람은 언젠가는 좋은 이별을 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