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여다보기 — 내 방도, 내 마음도
벌써 3일째다. 처음엔 몇 달, 어쩌면 몇 년째 방치 중인 작은 방의 책을 정리하려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책장의 위치를 바꾸는 모험을 감행했고, 그게 꽤 마음에 들어서, 이번엔 거실에 있던 책장도 작은 방으로 가져왔다, 책장을 옮기기 위해서는 그 안에 있던 모든 책을 빼고 먼지를 털고, 다시 책장에 배치해야 하는 고된(?) 노동이 필요하다. 그 작업에 무려 3일이 걸렸다. 그 와중에 틈틈이 큰방의 가구 배치를 살짝 바꾸고 옷장 밖으로 나와 있던 수많은 옷 무덤을 정리했다. 대청소를 끝낸 것 같지만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작업의 일부를 시작했을 뿐이다.
며칠 전 크리스마스를 부모님과 함께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아무것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읽어야 하는 책도 많고, 몇 달 안에 영어성적도 만들어야 하는데, 의지와는 다르게 몸이 움직여지지 않으니 도리가 없었다. 소파 위에 늘어져 하릴없이 쇼츠만 보고 있다가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새해를 맞이해서는 안 된다는 ‘반성’과 지금 중요한 것은 책을 읽는 것보다 정리하는 것이라는 ‘자각’과 얼마 전 이북리더기를 구매했으니 웬만한 책들은 이제 좀 처분하자는 ‘각성’으로 아주 오랜 시간 널브러져 있던 작은방의 책을 정리하게 되었다.
3일간의 노동은 꽤 효과적이었다. 책장을 이리저리 눕혀서(?) 다시 배치해 보니 더 많은 공간이 확보되었고 무려 삼면의 벽을 빈틈없이 메운 책장은 작은 방을 프라이빗한 ‘도서관’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오호, 이러면 책을 처분하지 않아도 되겠는데?’ 거실에서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빈백을 옮겨와서 독서에 몰두하고 있는 내가 그려졌다. 큰방에서는 컴퓨터로 할 수 있는 문서 작업과 공부를 하고, 작은 방에서는 독서와 그림 작업을 한다면 새해에는 좀 더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도 들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회사를 그만뒀기 때문일 것이다. 프리랜서였던 나는 지난해 입사라는 것을 했다. 1년 계약직이었고 후엔 다시 프리랜서로 복귀하는 수순이었다. 조직 생활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달콤했던 3개월 허니문 이후에 3개월의 극심한 스트레스, 3개월의 체념과 내려놓음, 나머지 3개월은 달력에 D-day를 표시하고 퇴사일을 카운트하며 지냈다. 재계약을 하게 된 이유는 올해 들어간 대학원 때문이었다. 주말에 다니다 보니 아무래도 규칙적인 회사생활이 프리랜서보다는 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판단 미스였다. 일과 공부를 병행한다는 것, 적어도 나에게는 불가한 일이었다. 둘 중 하나는 내려놓을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하다가는 일도 공부도 다 놓칠 것 같아서 이번에는 일을 내려놓기로 했다. 최소 내년 여름까지는 학업과 개인작업에만 집중해 볼 생각이다.
종강 딱 2주 전에 퇴사를 했다. 덕분에 한 주는 두 개의 에세이를 써내야 하는 기말과제에 집중할 수 있었고, 나머지 일주일은 범위가 어마어마한 과목의 시험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대학원은 논문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학점에 목맬 필요는 없지만, 교수님들의 흥미진진한 강의를 제대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퇴사가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진 덕에, 무사히 첫 학기를 마쳤다. 성적도 선방했고, 1 지망으로 썼던 지도교수님도 흔쾌히 받아주셔서 2025년을 만족스럽게 마무리하는 중이다.
물론, 집 정리마저 끝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거의 이사를 하는 수준으로 집을 뒤엎을 예정이니 이것은 분명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수십 년 동안 소비하고 쌓아두기만 해서, 무엇을 가졌는지조차 몰랐던 내 공간과 일상을 천천히 들여다봐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과정을 통해서 남은 인생을 내가 그리던 방식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글들은 그 과정의 기록이다. (2025년 12월 30일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