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열정이 마르지 않았다는 이야기
오래전에 그만두었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한다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야.
한때 엄청나게 열정을 쏟았던 일이라면 더욱더.
나에겐 그런 게 두 가지가 있어.
그림, 그리고 요가
과거의 어느 시기에 나는 그것들에 미쳐있었어.
요가는 2016년쯤,
그림은 취미로 틈틈이 해오다가
2019년에 본업도 접어 버리고 그림에 올인해 버렸지.
그림책 학교를 1년 8개월 정도 다녔거든,
그렇게 열정을 쏟은 결과가 나쁘진 않았어.
요가는 티칭 자격증을 따고 매일 아쉬탕가 수련을 했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몸이 바로 그때 만들어졌어.
그러니까 마음도 단단해지더라.
그림책 학교를 졸업하면서 만든 더미북은 상을 받았고
덕분에 생애 첫 그림책을 출간했어.
강연의 기회도 주어졌고 지금도 가끔 독자들을 만나러 다녀.
요가와 그림은 내 인생에서 영원할 것만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놓아버린 거야,
아니 놓쳐버린 건지도 모르지.
마음이 힘들 때 시작했던 요가는
삶이 다시 행복해지고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수련에서 멀어졌고,
그림은 책 출간 이후 다시 본업에 복귀하면서
조금씩 멀어져 버렸어.
물론 두 번째 그림책 작업을 시작하긴 했어.
스토리 라인도 완성했고, 그림도 어느 정도는 그려놨는데,
입사한 뒤에는 적응하느라고 정신이 없더라고.
퇴근 후에는 정말 연필을 쥘 에너지가 없었어.
회사를 그만두기로 하고 다짐했지,
대학원 생활도 중요하지만
아주 오랫동안 미뤄둔 요가와 그림책 작업을
꼭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지만 퇴사한 지 한 달이 넘어가는 지금
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야.
이유가 뭘까?
인간의 열정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할당량이 있는데,
나는 이미 다 소진해 버린 건 아닐까?
어쩌면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지.
특히, 뭔가를 잘하려면
너무 많은 애를 써야 한다는 그런 당연한 사실들.
요가를 처음 배울 때는
선생님의 동작을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한 시간이 훌쩍 가버렸어.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파고들 틈은 없었지.
힘들긴 해도 조금씩 몸이 풀리는 게 느껴졌고
어려운 동작이 가능해지자 성취감이 느껴졌어,
하지만 점점 잘하게 될수록 다른 생각이 올라오더라.
아쉬탕가 풀 시리즈를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 20분 남짓,
동작 하나하나 제대로 하려면 굉장히 힘든 수련이야.
어느 날부턴가 시작할 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아, 한 시간 이십 분... 언제 다하지?’
특히 하루 수련을 빼먹은 다음 날이 꼭 그랬어.
그러니 이틀 빠지고 사흘 빠지고….
그렇게 일주일 되고 한 두 달이 지나
몇 년이 흘러 버렸네.
아주 가끔 요가를 하면
내 몸이 얼마나 무거워졌는지 실감해
예전엔 저절로 붕 뜨던 내 몸이
한없이 가라앉아 있거든.
그림책 작업은 어정쩡하게 멈춰있는 상태야.
좀처럼 시동이 걸리지 않네.
이제 견인차라도 불러야 하나?
나를 어떤 ‘과정’에 강제로 집어넣지 않고서는
더 나아가지 못할 것 같아.
그림책 작업을 떠나서 순수하게 그림만 그린다면?
사실 그것도 쉽지 않아
이제, 괜찮은 그림이 뭔지 알아버렸거든.
그림을 막 배우던 시절에는
초심자의 행운, 혹은 자신감이라고 해야 하나?
지금 보면 참 엉성한 선이라도,
그것을 이어 뭔가를 그려내면 그게 참 즐겁더라.
모작하는 것만으로도 뿌듯해지는 시기였지.
하지만 이제는 내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압박이 생겼어.
이걸 ‘약간 숙련된 자’의 저주라고 불러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참 미련이 많은 사람이야.
요가와 그림에 대해
아직 열정이 마르지 않았다는 이야기겠지?
우리들의 관계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일 테고.
그래서 나는
다시 시작하기 위해 조금씩 버둥대고 있어
수리야 나마스카라를 해본다던가
색연필로 냥이들을 그려본다던가
잘하겠다는 욕심을
조금 내려놓았더니 괜찮은 선이 나오기도 해.
이러다 보면
내 열정에 다시 불붙는 날,
그날이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