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알람시계를 끄고, 씻으러 화장실로 이동한다.
거울 앞에서 익숙한 얼굴을 확인한다.
하지만 그 얼굴이 진짜 나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사회에서 버티기 위해서 바꾼 내 모습, 좋아하는 이성에게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 가끔 나 조차도 보기 싫어지는 내 모습. 하루에도 몇 번씩 얼굴을 바꾼다.
심리학자 카를 구스타프 융 (Carl Gustav Jung)은 이를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특정한 역할을 받고 그 역할에 맞는 얼굴을 만들어간다.
인사 잘하는 아이, 착한 학생, 성실한 직장인, 다정한 연인. 어느 순간에는 숨이 막히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만약에 내 가면을 집어던지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나를 보호해 주는 방어막이 사라지는듯한 느낌이 든다.
가면을 벗어던진 내 모습을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
낯선 시선들이 나에게 향할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뭔가 이상하네."
"내가 생각한거랑 좀 다른 모습이다."
이런 말들을 듣는 게 상처가 될 것만 같다.
나도 그렇고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처음부터 가면을 쓴 채 생활하지는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도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존중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함이 항상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었고 모두가 나를 좋아하기를 바랐지만, 그건 불가능했다.
그리고 상처를 받고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맞는 보호색을 띄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스스로 배우면서 다짐하는 것들이 있는데, 나 같은 경우에는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공감대를 얻으려고 내 가정사나 약점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을 죽이고 듣고 호응하는 습관을 들였다.
가장 중요한 걸로 회사나 밖에서나 남을 흉보지 않게 됐다.
친구는 약점을 꽁꽁 싸매지 않고, 넉살 좋아 보이게 사회적 오픈용 약점을 만들었다고 한다.
사실과 관련 없는 약점을 만들거나, 리스크가 작은 이야기들을 꺼내 친밀감을 구성한단다.
예를 들자면, 카페인에 내성이 강해서 커피를 마셔도 잠이 잘 안 온다거나 아보카도를 먹으면 체한다와 같은 누가 알고 있어도 내 이미지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 만한 것들.
결국 우리 모두는 상황에 맞는 가면을 쓴 채 살아간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나를 잃어버린 걸까?
꼭 그렇지는 않다고 믿는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의 페르소나는 필요하다.
하지만 가면을 쓰는 것만큼, 가면을 벗고 온전히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시간도 중요하다.
거울 앞에서, 그리고 내 본모습을 알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리고 가끔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이 가면을 쓴 나는 여전히 나인가?"
그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여전히 우리는 우리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