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효과
어느 날, 게임을 하다가 길드에서 처음 본 사람과 이야기를 했다.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처음으로 깊은 얘기를 하게 됐다.
신기했다. 친구, 가족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을 단순한 닉네임으로 존재하는 저 사람에게는 왜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았을까?
호기심이 생겼다.
이 경험이 계기가 되어, 나는 고민 상담방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내 예상보다 많은 익명의 사람들이 저마다 한 아름씩 걱정을 안고 찾아왔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었다. 이성과의 관계, 본인의 문제, 말 못 할 상처까지.
그제야 깨달았다. 낯선 사람에게 마음을 여는 것은 관계에 대한 부담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하지만 다른 문제도 생긴다.
사람은 같은 감정을 공유할 때 관계가 깊어진다고 느끼고 특별한 존재로 여기게 된다.
공유된 감정이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게 결국 관계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낯선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느낀 게 있다.
낯선 사람은 우리를 더 잘 이해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떤 감정도 섞이지 않은 상태에서 듣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객관성을 '이해'라고 착각한다
이런 대화에 익숙해질수록, 우리는 또 다른 낯선 사람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부정적인 시선으로 결론을 내릴 수도 있지만, 긍정적인 요소가 더 크다고 본다.
상대방이 내 고민을 해결해주지는 못하더라도, 그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어느 정도의 후련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문제를 바라보게 되거나, 관계에 얽매이지 않기에 오히려 더 자유로운 시선에서 해결책을 찾는 행운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상대방 역시 누군가를 도우면서, 이타적인 행동에서 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이번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때의 상황을 생각해 보았다.
가까운 사람은 고민을 ‘기억하고’ 함께 해결해 줄 수 있다.
낯선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건 그 순간의 위로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가까운 사람은 내 곁에서 고민의 변화를 지켜보며 계속 조언해 준다.
그리고 내가 어떤 성향을 가졌는지, 왜 이런 고민을 하게 됐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크게 공감해 주기도 한다.
즉 가까운 사람은 나의 패턴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곁에서 함께 조언을 줄 수 있다.
그럼 부정적인 케이스는 어떤 게 있을까?
부모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고 했을 때 : "나 회사생활 너무 힘들어" -> "네가 엄마(아빠)만큼 힘들었어?"
이렇게 조언이 아니라 부담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또한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이 말을 하면 얘가 앞으로 나를 다르게 바라볼까?"라는 불안에 빠질 수도 있고
관계가 어색해지진 않을까? 걱정도 조금 들기도 한다.
역설적인 부분이지만 가까운 사람이 더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이 약점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솔직해져야 할까?
때로는 낯선 사람에게, 때로는 가까운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나는 고민 상담을 들어줄 때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으로 답을 내리지 않는다.
전문가도 아닐뿐더러, 그 사람의 감정을 감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내 역할은 단지 들어주고, 그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행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고민을 털어놓는 상대가 누구든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돌보는 일이다.
고민을 털어놓는 대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 감정을 이해하고 보호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