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불안했던 그 이유를 찾았다. 허름한 병원에서
2020년 24살,
병원 간호사로써 첫 직장이 생겼을 즈음 나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고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24년간 쌓아왔던 나에대한 신뢰가 무너졌었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1년도 하기 힘들다고 스스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도 못버티는 사람이었던가..?' 그순간 왠지모를 절망감과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그렇게 이 불안감은 2024년 현재까지도 문득문득 찾아오는 골칫덩이가 되었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2개의 직장을 오갔고 프리랜서도 경험했다. 그리고 2024년 8월 간호사로써의 정체성이 희미해갈 즈음,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위해 보험으로 놔두었던 간호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이 직업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은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도 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환자를 직접보지 않는 간호사를 선택했다. 허름한 병원에 입사하는 나의 바램은 크지 않았다. '간호사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보자.'
첫 직장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알아주는 병원 중 한곳에서 화려하게 시작했던 나는, 현재 쓰러져가는 작은 병원에 취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한지 한달이 되었다. 정말 배울게 없다고 생각했던 이 병원에서 의외로 나는 많은 것들을 얻었다.
내가 있는 부서는 나포함 4명의 간호사가 일한다. 29살인 나는 이곳에서 막내, 아니 거의 딸뻘이다. 큰 병원에선 거의 수간호사 급의 연령대인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3분의 어른(항상 또래와 일했던 나는 신기한 광경이다)들은 각자 개성이 뚜렸하다. 팀장님(A)은 모난곳이 없는 성격을 가지신 엄마같은 느낌이 드는 분이다. 다른 선생님 한분은(B) 대학병원에 25년넘게 다니신 수간호사 출신이시다. 그것도 응급실..(진짜 갓오브 갓..) 마지막 선생님은(C) 그나마 40대로 막내 이모뻘이신 분이다. 마음도 여리시고 착하신 분이라 내가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직접 먼저 나서 잡일을 도맡아 하신다.
수간호사 출신 선생님(B)은 내 옆자리에 계신다. 이 선생님에게 이곳의 일은 정말 껌이다. 실제로도 본래 본인이 했던 업무의 1/10 난이도라고 하셨다. 예전엔 너무 바빠서 강아지 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였다고 하셨으니..(너무너무 공감되는 이야기다) 여기서도 그녀는 모든일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 해결사다. 우리 부서의 모든 문제는 이 선생님을 거쳐간다.
선생님을 보고 있으면 정말 배울게 많다. 그녀의 일상을 지켜본 바로는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1. 시간을 절대로 허투로 쓰지 않는다.
2. 운동은 생명과 같다.
3. 자신감으로 가득하다.
선생님의 일상은 여태껏 내가 사회에서 보지 못한 '진짜 어른'의 모습이었다. 점심시간에 밥먹고 앉아있는 나에게 앉아있으면 살만찐다며 운동을 알려주시고, 간호사로서의 내 커리어에 대해서도 상담해주셨다. 나눴던 대화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나 : 제가 신규간호사 때 너무 열심히 하려고 해서 금방 지쳤나봐요.
선생님(B) : 아니, 그건 너가 이 일을 해야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서야.
이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그랬다. 신규간호사 시절 내 머릿속은 온통 1가지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일하고 이 돈 받을거면
내가 진짜 하고싶은 일을 도전해보는게 더 낫지 않을까?
이 일은 절대 평생 못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겐 간호사라는 직업이란 돈을 버는 일 중 하나에 불과했다. 내가 간호사를 해야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일에만 질질 끌려다니다가 번아웃이 된 것이다.
나 :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간호사를 오래하셨어요? 저는 절대 못하겠던데..
선생님(B) : 일을 오래 하려면 가장 중요한건 사람이야. 내가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사람, 나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는 선배. 2명만 있어도 넌 오래 할 수 있었을껄?
20살부터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주는 어른을 만난적이 있는가?
마음을 진정으로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것이 아마 잘 사는 것 (well being)의 척도가 아닐까?
4년이 지난 지금.
나는 이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내가 이걸 해야하는 이유'를 한문장으로 정리해본다. 이 과정이 없다면 현재 내가 다니는 직장은 아까운 시간만 까먹는 일이 되어버린다는 걸 아주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이 일을 해야하는 이유를 찾지 못한 것.
그러고보니 이것이 간호사에 대한 두려움을 4년간 떨쳐내지 못한 이유였다.
내 속에 있는 불안이를 이제야 잠재울 수 있을 것 같다.
ADI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