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생의 빚
남편이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시부모님의 헌신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고 따뜻했다.
보이지 않는 응원과 묵묵한 뒷바라지,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남편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님께서 폐암 진단을 받으셨다.
첫 병원에서는 개복 수술을 권유했지만
어딘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 나를 볼 때마다 산만해졌던
두 명의 의사 선생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내 안에는
‘한 번 더 확인하는 힘’이 생겼다.
나는 밤낮으로 정보를 찾았다.
인터넷을 뒤지고, 유튜브 영상들을 탐색하며
폐암 분야에서 가장 신뢰받는 두 명의 전문의를 찾았다.
망설임 없이 대학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기적처럼 누군가 예약을 취소했고,
우리는 3일 뒤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았다.
하루라도 빨리,
하루라도 더 안전하게 치료를 시작하고 싶었다.
병원에서는
“위치가 좋지 않아 개복은 어렵고,
2기지만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 말은,
곧 살릴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안도의 숨을 쉬었다.
지금 아버님은
그 임상시험을 통해 치료를 받고 계신다.
상태도 안정적이다.
그 일을 계기로
남편은 건강의 소중함을 더 깊이 깨달았다.
요즘 그는 주말마다 등산을 다닌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삶을 오래도록 지켜내기 위해서.
그날,
전깃줄을 붙잡고 가까스로 살아남았던 나.
이제는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이토록 많다.
《전생의 빚》
글. 담빛
부모와 아이는
그냥 만나게 된 게 아니야.
두 사람은
전생이라는 아주 먼 시간에서
서로를 약속하고,
이 생에 다시 만나기로 한 거야.
그 인연은
‘빚’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어.
하지만 그 빚은
무거운 약속이 아니야.
이름이 있어.
그건 바로
사랑이라는 이름의 빚이야.
우리는 살아가며
그 사랑을 조금씩 꺼내 쓰고,
조금씩 되갚아 가는 거야.
사랑으로,
품어줌으로,
그리고 함께 있어주는 걸로.
그런데 때때로
너무 바쁘고,
너무 힘들어서
그 빚을 잊어버릴 때도 있어.
그럴 땐
가슴 한 켠이 아릿하고,
미안한 마음이
조용히 피어나기도 하지.
그래서 말이야,
사랑은 미루는 게 아니야.
책임도 기다리는 게 아니고.
이 생이 허락해 준
시간 안에서
할 수 있을 때
정성을 다해 사랑해야 해.
그렇게 다 갚고 나면,
아이도 언젠가
부모가 되겠지.
그리고
그 아이 역시
다시 사랑이라는 빚을 지게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