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이사가 나를 위한 이사가 되었다.
아이를 위한 학군지 이사가, 어느새 나를 위한 이사가 되어 있었다.
경시대회가 끝난 뒤, 아이는 새로운 친구와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아빠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그 친구랑 같은 동네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보고 싶어요.”
남편은 처음엔 시큰둥했다.
이사라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고, 막상 움직이는 것도 귀찮은 법이니까.
나 또한 마흔 해 넘게 살아온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회사까지의 거리가 남편도 나도 불과 1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을 흔들었다.
집의 평수만 줄이면 가능했다.
결국 남편이 말했다.
“집 내놓고 가자.”
집을 보러 온 사람은 하얀색 인테리어가 마음에 든다며, 뭐든 맞춰주겠다고 했다.
전세를 놓고 떠나는 건데도, 마음은 묘하게 쓰라렸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결정을 내렸기에, 앞으로 나아갔다.
이사 준비를 하며 많은 짐을 비워냈다.
나눔을 하다 보니 당근 온도는 쑥 올라갔고, 그 숫자만큼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짐을 비우며 떠오른 추억들, 아련히 스치는 인연들이 그리워졌다.
그래도 멀지 않으니 자주 오겠다고 다짐하며, 집을 정리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사했다.
이사한 지 두 달.
그리운 사람들이 자꾸 생각났다. 그들을 만나고, 안부를 묻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동네에서 나는 낯선 이방인이 된 듯 공허했다.
그 공허함을 채워준 건 책이었다.
아이들과 서점에서 보낸 시간, 베스트셀러를 집어 들며 읽어나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깨달았다.
내 글쓰기가 아직은 일기장 같다는 것, 더 많이 읽어야 한다는 것.
학군지 이사는 결국 나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
예전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면, 이제는 함께 읽으며 서로의 감정을 나눈다.
어느 날은 돈에 관한 글에 빠졌다가, 마음을 다잡게 하는 책에 몰입하고,
철학서와 소설을 오가며 비어 있던 마음을 조금씩 채워간다.
이사라는 큰 결정을 통해, 나는 아이의 성장을 위한 길 위에서 결국 내 삶의 여백도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