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문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은 현대까지도 이어졌다. 살면서 전공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글이 좋아서 무심코 들어간 문예창작, 나를 알고 싶어 배운 심리학, 그리고 남을 가르치고자 입학한 독서논술. 세 개의 전공은 모두 나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전문학사부터 석사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차근히 밟았다. 난 내가 특별한 줄 알았다.
10살쯤 시작한 글짓기는 삶의 전부였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어린 나는 공책을 펼쳤으며 그곳에 새로운 세계를 직조했다. 비록 내로라하는 백일장에서 상을 타는 경험은 한 번도 없었지만 꾸준히 글을 적었다. 13살에 우연히 전자책을 출간하면서 작가가 되었다고 믿었다. 가족을 대동하고 처음 출판사를 향했을 때 놀라던 편집자의 얼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나는 1년에 장편 하나를 출간하는 작가가 되었다. 10대 시절을 장르 소설에 바쳤으니 마땅한 추억이 남지 않았다.
"또 마감해? 그러지 말고 우리랑 놀자."
마음씨 좋은 친구들은 머릿속에 마감뿐인 나를 이끌고 자주 영화관을 찾았다.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나눠 먹었고, 친구 집에 가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같이 옹기종기 모여서 무서운 영화를 관람했고 억지로나마 추억을 남겼다. 문제는 그때의 나는 오로지 작가가 될 생각뿐이었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정말 내가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다.
그 당시만 해도 10대에 책을 출간하는 사람은 손에 꼽았다. 물론 내가 유명하지도, 그렇게 수완이 좋지도 않았지만 나름대로 작가란 타이틀에 만족했다. 10살 때부터 거의 10년 동안 글을 쓴 내가 문예창작과에 입학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그건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낙방, 실패, 거의 문 닫고 들어간 대학교에서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였다.
처음부터 내가 특별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좀 나았을까? 학창 시절 내내, 나는 작가로 소문이 났다. 선생님들은 나를 기억했고 가끔 과자를 건네면서 '미리 사인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농담하곤 했다. 시험을 앞두고 자습 시간이 주어질 때면 난 공부 대신 마감을 택했다. 손 끝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은 대작이 되리라 단언했다. 머잖아 최소의 나이로 돈방석에 앉을 거라던 내 꿈은 세월이 흐를수록 산산조각이 났다.
나는 유명해지지 않았고 신인상 공모에서 번번이 낙방했다. 최종심에도 이름이 오른 적 없었다. 동기들은 금세 절필하고 취업하거나, 끈기 있게 도전해서 어린 나이에 등단하곤 했다. 방 안에 들어앉아 여백만 뚫어지게 바라보던 내게 무언가 속삭이는 듯했다.
"너 자신을 알라."
이젠 특별함에 대한 욕심을 버릴 차례였다.
우리는 살면서 막연한 고통을 마주했다. 갑자기 모든 인간관계가 끊기고 되는 일이 없다. 갑작스러운 고통은 대운이 오기 전의 징조라는데 인간의 몸으로 견디는 건 무척 괴로웠다. 왜 그들은 나를 떠났을까? 나는 어째서 혼자일 수밖에 없었을까? 무수한 질문이 내 안에서 맴돌았다. 그럴 때마다 시절인연-회자정리를 떠올렸다.
시절인연(時節因緣): 인연이 닿는 시기는 정해졌다.
회자정리(會者定離):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오랜 시간 소설을 쓴 나의 취미는 '여백 글쓰기'다. 확실한 이론은 아니고 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시도하던 행동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여백에 지금 내 상황이나 기분, 이런저런 잡념을 모조리 적었다. 나와의 대화를 통해 내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소크라테스도 자문자답을 통해 스스로 욕망을 깨우치라고 말하였다. 어찌 보면 나는 훌륭하게 소크라테스의 말을 따르는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삶을 관통하는 욕망과 결핍을 발견했다. 결핍은 대부분 유년기부터 시작해서 청년기에 이르기까지 생겨났다. 유년기의 사소한 사건이 성인이 되었을 때 치명적인 결핍이 될 수 있었다.
근원과 뿌리.
나는 그걸 찾고 싶었다.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이야기, 신화의 원형. 창작물은 작가의 무의식을 반영했다. 여태까지 내가 작성한 소설들을 모조리 정돈해 키워드를 뽑았다. 그 결과, 이런 게 나왔다.
#생존 #욕망 #결핍 #설화
그렇다. 나는 어릴 적부터 유명 전래동화를 읽는 걸 즐겼다. 전통적인 걸 사랑해서 한복을 모으는 취미가 있었으며 가방에 자그마한 노리개를 키링처럼 달고 다녔다. 모든 이야기의 원형은 설화다. 설화 속 인물은 겉보기엔 평범하지만 시련과 역경을 거쳐 신성을 얻었다. 어쩌면 나와 당신, 우리 모두가 겪는 고통은 신성을 얻기 위한 시험이 아니었을까?
특별한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면 특이한 존재는 어떨까? 우리가 알고 보니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각자의 신성을 가진 채 시험을 통과하는 존재들이라면? 지금 겪는 이 고통이 날 더 크게 만들어주는 시험의 일부였다면? 끝이 보이지 않을까.
설화 속 인물이 동양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2025년 현대에 떨어졌다면 그들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똑같이 입시 지옥과 취업난에 시달리며 다크서클이 내려온 채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설화 속 인물이라도 시작은 평범한 인간이었으니까.
나는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젠 그걸 넘어선 특이한 나만의 존재가 되고자 한다. 부디 시험에 통과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여정을 떠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