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 우투리가 보내드립니다

설화 '아기장수 우투리'

by 장아연
우투리: 난세에 등장한 영웅


옛날, 아주 먼 옛날. 가난한 부부에게 아기가 태어났다. 이 아기는 태생부터 비범하여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걸음마를 시작했다. 등에 돋친 날개로 집안을 날아다녔다. 지나가던 스님은 장차 이 아기는 장수가 될 재목이라고 하였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부모는 우투리를 숨겨 키웠다. 하지만 우투리의 비범함은 널리 퍼져 왕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투리가 장차 왕위를 위협할지 모른다고 생각한 왕은 얼른 우투리를 처리할 준비 한다.


"어머니. 오늘부터 매일 콩을 볶아 주세요. 그 콩으로 갑옷을 만들어 위협에 대적할 겁니다."


위기감을 느낀 우투리는 묘책을 세웠다. 우투리의 어머니는 미심쩍었지만 우투리가 부탁한 대로 매일 콩을 볶아 갑옷을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우투리의 어머니는 무심코 떨어진 콩을 주워 먹었고, 갑옷의 겨드랑이 부분을 엮지 못했다. 그 결과, 우투리는 갑옷을 입고 싸우다가 겨드랑이에 화살을 맞고 생을 달리했다.


하지만 우투리는 슬퍼할 어머니에게 유언을 남겼다. 인연이 닿는다면 몇 년이 지나도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찬 유언이었다. 더불어 우투리는 무덤에 콩 한 되를 넣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이 유언을 미심쩍게 생각한 왕은 우투리의 어머니를 겁박해 우투리 묘의 위치를 알아낸다. 우투리의 묘를 열어보니 콩으로 만든 군사들과 말들이 가득했다.


왕은 분노하여 우투리의 시신을 훼손하였다. 콩 한 되로 군사와 말을 만들어 부활하겠다는 우투리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이 설화를 처음 읽은 건 입시를 치를 19살이었다. 그 당시 나는 문예창작과 실기 콩트를 준비하였다. 1,500자 내외로 적어야 하는 콩트는 그야말로 강렬해야 했다. 내 시선이 머문 건 '아기장수 우투리'였다. 대다수 설화는 행복한 결말로 끝났다. 하지만 몇몇 설화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는데, 그중 하나가 우투리였다. 우투리는 태생부터 비범한 능력자다. 그의 재능을 시기한 왕만 아니었더라면 우투리는 큰 인물이 되었을 거다.


세상은 행복한 결말만 주지 않았다. 시련과 고통은 인간의 삶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우투리 같은 사람은 세상에 너무 많았다. 재능이 있지만 가진 게 부족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던 사람, 사람들에 치여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마저 꺾인 사람, 오랫동안 준비했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모든 게 물거품이 되어버린 사람. 내게 대학은 그런 존재였다.


나는 어릴 적부터 꾸준히 글을 적었다. 마법소녀가 그려진 깜찍한 공책에 다양한 이야기를 작성했다. 내 손 끝에서 시작한 문장은 반 아이들에게 닿았다. 아이들은 내 글이 담긴 공책을 수업시간 내내 돌려보았다. 그렇다고 마땅하게 글에 재능이 있던 건 아니었다. 10살, 담임선생님의 권유 하에 시작한 글은 쉽게 늘지 않았다. 어떠한 것에도 재능이 없던 내게 유일하게 해 볼 만한 게 글이었다.


"이런 건 대학 가서 적어. 일단 입시는 붙어야지."


문예창작과에 입학하고 싶었던 건 글을 배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당장 갈 대학이 없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소설만 썼던 나를 받아줄 대학은 몇 없었다. 그 당시 나는 심리학과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인서울 심리학과는 내신 등급이 높아야 가능했다. 내가 수능을 볼 직후엔 문이과가 통합했다. 수능일은 12월 3일이 되었고 그만큼 입시 일정도 밀려났다.


학교에 가정학습을 내고 학원으로 출석하던 어느 날. 쓰고 싶은 글을 쓰지 못하고 오로지 합격을 위해 쓰는 글이 얼마나 허망한지 깨달았다. 반골기질로 차용하기 시작한 설화는 합평 내내 좋지 못한 소리를 들었다. 가장 많이 들은 평가는 '개성만 넘친다.'였다.


우투리는 나름대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다. 비범한 태생에 걸맞게 갑옷을 만들어 입는 둥, 왕을 대적할 그릇을 갖췄다. 문제는 그걸 뒷받침할 수 있는 조력자가 없다는 점이었다. 조력자가 될 뻔한 우투리의 부모는 가난한 농사꾼이었다. 아버지는 농사를 짓느라 줄곧 바깥에 나가있었으며 어머니는 우투리의 큰 뜻을 알지 못했다.


때론 모든 결말이 행복하리란 보장은 없었다. 우투리는 겨드랑이를 가리지 못한 단 한 알의 콩 때문에 생을 마감했다. 누구에게도 결핍은 있는 법이었다. 19살의 나에겐 '남을 위한 글'을 쓰는 고통이 결핍이었다. 그 여파로 문예창작과를 졸업할 때까지 설화를 멀리했다. 지하철을 왕복하면서 설화를 읽고 기록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다시 쓰게 되었다. 억누른 감정은 언젠가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 우투리가 2025년 현대에 왔으면 공교육을 버틸 수 있었을까? 학교는 날개가 달린 우투리를 그대로 보았을까? 서랍 속 깊숙이 들어간 우투리를 다시 꺼냈을 때, 비극적인 결말과 달리 우투리는 강건해졌다. 몇 년이 지나도 다시 만날 거란 우투리의 말처럼 나는 잊은 설화를 마주했다.


부디 이번 결말은 행복하길 바라면서. 기억 속 무지한 자신과 마주하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나, 나는 용기를 갖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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