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 '원천강 오늘이'
오늘이: 오늘 만난 아이
황폐한 땅에서 살아가는 아이는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났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알 길이 없던 아이는 각종 동물의 수호 아래 살았다.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은 아이에게 '오늘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름이 생긴 오늘이는 자신을 궁금해했다. 그때 백로 부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오늘이야. 네 부모는 원천강에 있을 거란다."
그 말을 들은 오늘이는 곧장 원천강으로 향하는 여정을 떠났다. 오늘이는 다양한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기약 없이 책 읽는 소녀 매일이, 한 줄기에만 꽃이 피는 연꽃나무, 공부가 하기 싫은 장상 도령, 마지막으로 여의주를 세 개나 가졌음에도 승천하지 못하는 이무기. 오늘이는 그들에게 길을 묻고 부탁을 받았다.
"원천강에 가거든, 꼭 내 고민을 들어줘!"
원천강에 도착한 오늘이는 그렇게 만나고 싶던 부모님과 조우했다. 앞으로 원천강에 살 일만 남은 오늘이는 편안한 하루를 보냈다. 문득 자신에게 길을 알려주며 고민 해결을 부탁하던 사람들이 떠오른 오늘이는 해결법을 알아내 그들에게 돌아갔다.
욕심 많은 이무기는 두 개의 여의주를 버린 후 용이 되어 승천했다. 연꽃나무의 꽃이 핀 줄기를 꺾으니 다른 가지에도 꽃이 피었다. 공부하고 책을 읽던 매일이와 장상 도령은 혼인하여 더는 외롭지 않게 되었다. 여의주와 연꽃을 가진 오늘이는 신성을 얻어 시간과 계절의 신이 되었다.
오늘이는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기자기한 동화책으로 읽은 설화였다. 그 당시 나는 당당한 아이였고 멀쩡한 집을 두고 하교 후에 친구 집에서 밥을 얻어먹었다. 이 소식을 들은 가족은 몹시 놀랐다. 친구의 어머니는 '얘는 어디 가서 굶어 죽진 않겠어요.'라는 말을 전했다고 했다. 일주일 용돈이 3천 원이던 시절엔 학원 가기 전에 빵집을 들렀으며 학원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사 먹었다. 어린 나는 어떤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었으며 사람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건 무엇이든지 했으며 그건 나의 매력이었다.
인생이 순탄하게만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솔직하고 당당하던 나의 태도는 자라오면서 사회에서 깎였다. 주류 문화가 중심인 또래 문화에서 나 같은 아이는 안하무인 하고 제멋대로인 평가를 받았다. 외동으로 자라 온 나는 남과 무언가를 같이 하는 게 어색했다. 솔직함이 미덕이라고 생각했으나 자라오는 내내 수많은 거짓말을 목도했다.
"넌 왜 그렇게 별나게 굴어? 선의의 거짓말은 거짓말이 아니야. 그건 친구들 사이에서 당연한 거지."
감각이 예민한 나는 타인의 거짓말이나 싸한 분위기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8시간 내내 학교에 있는 건 내게 고문이었다. 순응하지 않으면 미움받았다. 조금만 다르게 굴면 이상하다고 손가락질받았으며 그 누구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20대 초반이 되기까지 나는 새로운 가면을 만들었다. 적당히 평범하고, 잘 웃고, 웬만해선 미움받지 않고 조금은 엉뚱한 면이 있어서 놀리기 좋은 사람.
그런데 정말 그게 나였을까? 8살의 나는 어디로 가버린 걸까.
설화 '원천강 오늘이'는 평범한 소녀가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찾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의 고민을 받고, 그들의 고민마저 들어주는 게 인상적인 설화였다. 특히 오늘이가 안락한 원천강에 머무는 걸 포기하고 되돌아가 도움을 준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심리학적으로 말하자면, 이건 메타인지를 확립하는 과정이며 자아효능감이 타인에게 발휘되는 결과를 낳았다. 요즘 시대엔 자아를 잃은 사람이 많았다. 아이러니하게 잃어버린 자아를 찾고자 모험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도 오랫동안 나의 존재를 찾아 헤맸다. 나는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었다. 사람들은 내게 개인적인 감정을 쏟아냈다. 심리학 전공을 하기 훨씬 전부터 상담을 위해 나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조언이나 해결법은 내게 없었다. 빈약한 공감과 그저 존재할 뿐이었다. 문제는 나 같은 사람은 타인의 감정이나 고통을 모조리 흡수했다.
사람들은 내게 감정을 쏟아내고 후련해했다. 병드는 건 나였다. 나도 모르게 흡수한 감정들은 배출되지 않고 마음 깊숙한 곳에 고였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어, 다짐하던 순간. 나는 모든 걸 정리하고 혼자만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오늘이가 원천강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가듯이 나도 그렇게 했다. 여백에 온갖 고민과 걱정을 다 적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 세상에 왔는가?
사주팔자부터 별자리, 전생 등등. 내가 될 수 있는 건 모조리 찾아 헤맸다. 유년기의 일화들을 나열하며 일대기를 파헤쳤다.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확고한 인간이었다. 재롱잔치에서 의상 대여비만 10만 원이 나올 정도로 끼와 매력이 가득했다. 어쩌다가 나는 가면을 쓰게 되었을까? 언젠가 봉인되었던 진짜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오늘이는 모든 걸 버리고 척박한 땅에서부터 원천강까지 두 발로 걸어갔다. 잠시 도움을 받았지만 목적지까지 간 건 혼자였다. 이따금 원천강에 도착하기 전까지 오늘이의 심정을 헤아렸다. 얼마나 많은 외로움과 고독을 맛보았을지 떠올리면 다시 힘이 났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자아 찾기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나조차도 알지 못했다.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내가 살아오면서 줄곧 들었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바로 세우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사람마다 고유의 재능이 있다면 내겐 잘 들어주고, 그걸 기록하는 능력이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진짜 '나'를 찾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