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 그리고 하나의 목적지
회사에서 마음을 지키는 또 다른 방법은 나만의 베이스캠프를 만드는 것이었다. 내게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글쓰기'였다. '쓰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 그것이 내 베이스캠프였다.
글을 쓰기 전에는 'OO회사 다니는 누구'라는 페르소나만 있었다. 어릴 적 학교를 다닐 때부터 'OO대학 다니는 누구'를 목표로 살아왔기에, 그런 페르소나만 가지는 것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회사의 내가 나의 전부다 보니, 내 상황이, 나의 마음이 회사 상황에 따라 요동치기 쉬웠다. 그렇게 납작하게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나의 베이스캠프 글쓰기를 만난 이후, 내가 조금은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OO 회사에서 마케터로 일하는 누구'라는 페르소나가 중요하기는 하다. 이 일을 좋아하고, 이 일을 잘하고 싶기에 여전히 중요하기는 하지만, 이제는 내가 어느 회사를 다니든 '내 이야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음을 깨달았기에, 조금은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어떻게 내 베이스캠프를 찾았을까?
처음에 마음이 힘들 때는 짤막한 쪽글, 푸념글 같은 일기를 남기기 시작했었다. 다이어리에 지금 상황을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쓰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 치유가 있었다. ‘상대가 이런 상황에 놓여서 그런 것은 아닐까?’처럼 상대를 이해할 때도 있었고, ‘이 또한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그 상황을 재편집할 여유가 생기기도 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이 힘들었던 과정들이 모두 미화되고, 그때의 시간들이 교훈을 얻기 위해 거쳐야 했던 일처럼 생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정말 힘들었지만 지금은 잊고 결국 교훈이 남은 것처럼, 지금 힘든 일들도 다 지나갈 것이고 소중한 교훈이 남겠구나 하는 위로가 들기 시작했다.
숙성의 시간 그리고 교훈
그렇게 그 당시에는 힘들어서 그저 덮어두었던 경험들이 숙성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써야 할 이야기로 변했다. 새로운 경험들을 하면서 그 당시 내 반대편에 서있던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거나, 그때 일을 재해석할 수 있을 때 쓰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떠나자 글감이 남았다.
쉽게는 초년생 때 팀장님이 어렵고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지 몰라 힘들었는데, 팀장이 되고서야 왜 팀장님이 그때 그렇게 말했는지를 이해하게 되어, 초년생이 알아야 할 일하는 법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다던가. '회사에서 친구 만들지 말라는 이유'라는 글에 남겼던 것처럼, 회사에서 사람에 데였던 경험이 있고, 그 관계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 고민했던 것들이 시간이 흘러 모두 글감이 된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서 아프던 경험도 조금은 멀리서 바라볼 수 있을 때 그런 글들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지나온 글들을 다시 읽으며 내가 한츰 성장해 있다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쓰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
그렇게 '쓰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가 생겼다. 예전에는 마케터라는 페르소나만 있었기에 회사 생활에 따라 내 마음이 요동쳤지만, 이제는 어느 회사를 다니는 지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 '어디에 있든 내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이제는 회사 상황과 별개로 나를 스스로 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하나 생긴 것이다. 이제는 어느 회사에 다니든 상관없이 무슨 일을 하던 거기에서 무언가를 물 긷듯 건져 올릴 수만 있다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 마음 힘든 일이 생겨도 여기에서 교훈 같은 무언가를 건져낼 수 있으니 쉬이 불행하다고 느끼지 않았다. 물론 마음이 힘들기는 하지만 더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를 명사로 규정하지 않게 되었다. 'OO 회사 다니는 누구'라는 명사에서 '쓰는 사람'이라는 동사로 나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번주에 글을 썼나? 오늘 글을 썼나?'처럼 아주 정직한 기준이 생겼다. 누군가 부여하는 기준도 아니고,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아니고, 나 스스로 글을 쓰기만 하면 '쓰는 사람'이 된다는 감각. 부지런히 쓰기만 하면 된다는 것. 그렇게 남들의 시선에서 독립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커리어 고민은 끝이 없어서
'OO 회사를 다니는 누구'라는 페르소나가 이제는 덜 중요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회는 내가 어떤 회사를 다니고, 어떤 일을 하는지에 따라 평가하는 것도 맞기에 끊임없이 '이다음은 어디를 가야 커리어가 잘 그려질까?' 등을 고민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쓰는 사람'이라는 페르소나 덕분에 고민할 필요 없는, 내 인생에 하나의 목적지가 그려진 듯했다. 어느 회사를 다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비즈니스 상황에 따라 계속 바뀌지만, 내가 오늘 글을 쓰기만 하면 내가 '쓰는 사람'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고, 저 먼 목적지로 '누군가 읽고 힘이 되는 글을 하나 남기면 잘 산 인생'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커리어 고민으로 머리는 아프지만, 이 모든 것은 누군가에게 힘이 될 글을 쓰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과 함께, 내 평생 하나의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유퀴즈를 보다 문상훈 씨의 이 말을 듣고 함께 마음이 편해졌다.
잘 만든 시트콤 하나 만드는 것이 제 최종 꿈입니다. 죽기 전에 하나만 만들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도 조급하지 않아요. 늘 설레고 지금 이 순간도 일환이겠지 생각합니다.
내가 내려야 하는 각각의 선택이 너무 크게 다가올 때, 변치 않는 페르소나가 하나 생겼다는 것, 먼 미래의 목적지가 하나 생겼다는 것은 내게 큰 위로로 다가왔다.
베이스캠프가 있다면, 그렇게 망할 일도 없겠다.
이제는 내가 어떤 삶의 모습을 하고 있던, 그 경험에서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서 그렇게 망할 일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최악으로 가닿더라도, 나는 또 그 경험에서 무언가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니. 그것으로 이미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듯하다.
그렇게 당신도 매일 소용돌이치는 회사생활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다시 제자리로 나를 데려올 수 있도록 나만의 베이스캠프를 찾았으면 좋겠다. 'OO회사 다니는 누구'로만 평가되지 않도록, 자신만의 수식어를 찾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망망대해 같은 세상을 사는데 길을 안내하는 부표처럼,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으로 오늘도 작가노트를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