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 대해
마음을 돌보며 일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오늘에 대한 이야기들을 빼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오늘을 어떻게 보내는지’ 그 태도가 결국 내 마음을 돌보는 방법이었다. 오늘을 미래를 위한 투자로만 바라보고 살 때, 대체로 마음이 힘들었었다. 미래에 오늘을 저당 잡힌 채 살아본 이후에서야, 오늘부터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오늘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목표가 너무 클 때는 오늘 해야 하는 작은 일에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대체로 행복하게 지내게 되었다.
'오늘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찾기
오늘도 따뜻한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고소한 커피 향이 집에 가득 찬다. 커피 향을 맡는 순간 ‘이게 행복이지.’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커피를 옆에 두고 다이어리를 펼친다. 어제 있었던 일도 정리해 보고, 요새 나는 어떤 생각들로 가득한지 다이어리에 털어놓는다. 커피를 한입씩 홀짝이며 다이어리에 내 마음을 털어놓다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해진다. 그렇게 오늘의 행복을 내게 선물하고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의 행복이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닌데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곧잘 놓쳐버리고는 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회사 일이 너무 바빠 점심시간에 밥 먹는 시간조차 사치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새벽까지 야근을 했지만 여전히 해야 할 일은 많고, 점심을 먹으면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눌 힘도 없었다. 오후에 민망하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까 싶어, 모니터 앞에서 김밥 한 줄을 우걱우걱 먹으며 밀린 메일에 답장을 했다. 그리고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물처럼 마셨다. 책상 건너 건너 점심시간에도 여전히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일은 어렵고 잦은 야근으로 몸은 힘들었고 성과에 대한 압박으로 마음까지 힘들었지만, 버티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미래를 생각하면 버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며 일이 늘었을지는 몰라도, 그 시기의 나는 잘 웃지 못했다. 대체로 행복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를 버티게 해 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때는 ‘오늘만 버티자’ 며 달력에 하루하루 X표를 치며 버텼는데, 그때를 버티게 해 준 것들은 그렇게 대단치 않았다. 이 회사에서 몇 년 버틴 후의 내 모습도 아니었고, 돈도 아니었다. 주말에 친구와 예쁜 카페에 가기로 한 약속, 이번 주에 업로드되는 웹툰 하나, 다음 달에 발매되는 가수의 새 앨범처럼 작고 사소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을 매일 늦은 퇴근길 택시 안에서 적었다. 그것들을 기다리는 힘으로 회사 생활을 버텼다.
그리고 주말이면 소설 속으로 도망쳤다. 나는 욕심이 많아 힘들면서도 내려놓지 못하고 전전긍긍 사는데, 내가 찾아 읽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무언가 지킬 것 없이 단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반려동물의 밥을 챙기고, 산책을 가고, 다섯 명 남짓 되는 주변인들을 알뜰살뜰 챙겼다. 그 당시 내게 독서는 수전 손택의 말처럼 작은 자살이었다. 내 삶이 너무 버거워, 지금의 나는 절대 선택할 수 없는 삶, 하지만 늘 꿈꾸는 다른 삶으로 도망쳤던 것이다.
독서는 제게 여흥이고 휴식이고 위로고 내 작은 자살이에요.
그렇게 버티던 중에 가수 요조와 타블로의 강연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오늘의 아메리카노
먼저 가수 요조의 영상 내용은 대략 이랬다. 오늘 마실 아메리카노를 내일로 미루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당연히 내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내일이 있기 때문에 20대는 버는 돈의 80%를 저축해야 한다는 말이 있고, 늙어서 잘 살려고 오늘 먹고 싶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참고 살기도 한다. 매일 죽을 것처럼 산다는 건 힘들지만, 그걸 생각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큰 차이가 있다고 했다.
우리에겐 내일이란 없어요. 저금만 하다가 오늘을 너무 고되게 살지 말고,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오늘 드시고요. 올지 안 올지도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를 확신하면서 혹사시키지 마세요. 오늘이 제일 중요하고 제일 소중한 날이에요. 내일 보다 더. 여러분 하고 싶은 거 하세요.
나는 너무나 쉽게 미래를 위해 오늘의 행복은 애써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었다. 물론 내일이 오지 않을 것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보내는 중이더라도, 나의 일상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채우고, 오늘의 나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오늘의 일에서 의미를 찾으면서 살아도 됐던 것이다. 혹여나 오늘만 살더라도 행복할 수 있도록. 지금 이 자리에서의 행복을 놓치지 말자는 것. 그 영상을 접하고서 여전히 회사 생활은 버겁고 힘들었지만, 아침에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출근하는 사람들도 쳐다 보고, 내 마음을 다이어리에 털어놓는 시간들도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오늘의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타블로의 이야기
타블로의 영상 내용은 이랬다. 행복을 방해하는 위험한 말이 '너 지금 그런 거 할 시간 있냐'라고. 예능을 보든 드라마를 보든 그 일이 내일을 기대하게 해주는 거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절대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럴 시간이 충분히 있고, 있어야 한다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을 가지라고.
내가 무의식적으로 내일을 기대하게 해주는 일들, 예능 한 편, 소설 한 편 같은 것들을 찾았지만, 실은 그것들을 즐기는 시간에도 마음 한켠에는 일 생각으로 마음이 불편했었다. 그렇다고 주말에 노트북을 확 열고 일에 뛰어들 마음의 준비는 되지 않아서, 예능을 보면서도 불편한 마음으로 이도저도 아닌 시간들을 보내곤 했었다. 실은 그 시간이 단순히 예능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살리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그 시간조차도 인색했던 것이다.
그 영상을 접하고서는 나를 돌보는 시간에 후해지기로 했다. 이 시간은 단순히 예능을 보고 책을 읽는 시간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살리는 시간이라고. 그 어떤 것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그렇게 나의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시간은 흐르고, 결국 그 회사에서 버티던 시간들도 지나갔다. 지금 와서 생각했을 때 그 시기가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초년생이었고, 아직 일하는 법을 터득하지 못해 상황에 끌려다녔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상황을 이끌 수 있을 때 (일을 잘하게 되었을 때) 마음 힘듦이 사라지기는 했다. 하지만 ‘회사 생활 초기 3년 배운 걸로 평생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있듯, 누구나 초년생 때 이렇게 힘든거라면 이 시기를 어떻게 조금은 행복하게 보낼지 다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만약 누군가 목표를 위해 버텨야 하는 시기를 보낸다고 한다면, (버텨야 하는 시기라는 게 정말 필요할까에 대해 고민은 있다.) 지금이 버텨야 하는 시기일지라도, 내 시간을 작고 하찮을지라도 나를 조금이라도 행복하게 하는 일들로 채워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3년만 버티면 돼.’와 같은 말들을 하지만, 그 3년의 나도 나니까.
'오늘의 나'부터 행복할 수 있도록
이제는 먼 미래의 나를 위해서만 살지 말자고, ‘오늘의 나’부터 돌보자고 생각한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행복할 수 있도록. 그렇게 밥도 꼬박꼬박 잘 챙겨 먹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주말에는 예능도 열심히 본다. 그리고 단순한 커피, 단순한 예능이 아니라 오늘의 나를 돌보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에게도 어떤 ‘오늘의 행복’이 있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