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할 일에만 집중하기
지난 글에서 오늘의 나도 나라는 것을 잊지 말자고, 그게 나를 돌보는 법이라고 했다. 이번 글에서는 오늘 하루를 어떤 일들로 채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눈멀지 마라."
회사에서 내게 조언을 해주시던 분이 계셨는데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분이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막일 현장을 갔었는데, 그날 옮겨야 할 벽돌이 너무 많아서 눈이 휘둥그레하고 있으니, 베테랑 아저씨가 "눈멀지 마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그냥 한 번 나르는 벽돌 몇 장에만 집중하라고. 그렇게 한 번씩 나르는 벽돌에만 집중하면 언젠가는 벽돌을 다 옮길 수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난 후부터 “눈멀지 마라.”라는 문장을 계속 곱씹게 되었다.
그렇게 지난 1년 육아휴직 기간 동안 단단한 오늘들을 살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책 원고 작업을 다 할 수 있을지 막막했던 때에도, 해가 바뀌어 이직을 준비할 때에도 언제 다시 지원을 하고 면접을 볼 지 앞으로의 일들에 까마득해질 때에도, 집안일은 쌓여 있고 우는 아이를 안고 있을 때에도 계속 그 말을 반복했다.
“눈멀지 말자.”
"그냥 오늘 써야 할 한 파트만 고민하자."
“오늘은 지원만 우선 해보자.”
“아이 달래는 것만 생각하자.”
내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오늘 할 일을 끝내고서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어도 난 오늘 할 일을 끝냈으니 그걸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나씩 오늘 할 일들을 지워가다 보니, 그리고 시간 속에 나를 던져둔 채 반복하다 보니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원고는 마무리되어 출간을 앞두고 있고, 새 회사로 첫 출근이 다가오고 있고, 아이는 10개월이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그렇게 마음이 편했다. 오늘 할 일을 잘 마무리하고 오후 4시가 되면 아이와 산책을 했다. 더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하루의 일에만 집중하며 하루를 켜켜이 쌓아가는 날들이 참 오랜만이고 소중했다. 햇빛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글을 쓰면서 커피 한 잔을 즐기고, 내 작가 노트가 점점 낡아지는 것을 즐기고. 나를 돌보고 있다는 그 느낌 자체가 좋았다.
치열하게 달리지 않아서 마음이 편했나 싶기도 했지만, 스무 살 반수 때를 생각해 보면 치열하게 달리면서도 마음이 참 편했다. 지금도 그랬고 그때도 그저 오늘에만 집중했다는 것은 같았다. 수능 시험과 같은 큰 산을 앞두고 있었지만, 내 두 눈은 그리 멀리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하루에 풀어야 할 문제집 몇 장, 오늘 외워야 할 단어들에만 집중했더니 어느새 다 풀고 끝나버린 문제집들이 쌓였고, 결과가 어찌 되든 후회 없이 내 모든 것을 쏟았다는 마음으로 1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평온하고 단단한 하루를 보내는 것의 비결은 오늘 할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전부라는 것을 그렇게 문득 깨달았다.
살다 보면 종종 성취하고 싶은 목표가 너무 멀리 느껴지고 지금의 나는 보잘것없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 스스로 세워 둔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그래서 내가 나를 힘들게 할 때가 있다. 뭐라도 해보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너무 대단해 보여서 무엇을 먼저 손대야 할지도 모르게 압도된다. 그때는 나에 대해서 더 깊게 생각하지도 말고, 아무 생각 없이 당장의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언젠가 된다.
그리고 반복.
그리고 오늘 할 일에 집중하고 있는 그 시간을 반복하면 된다. 무언가 할 일이 있으면 그냥 하고, 그 일을 더 잘할 방법이 무엇 일지만 고민하면서 반복하면 된다. 그렇게 반복되는 하루들이 켜켜이 쌓이면 단단해진다.
종종 미래에 달성해야 할 내 목표에 압도되기도 하고, 과거에 후회하기도 하는데, 오랜만에 오늘을 살았다. 시선을 오늘 하루에만 두고, 오늘도 "눈멀지 말자."라고 외친다. 그렇게 시간 속에 나를 던져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