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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Aug 18. 2023

내가 만든 진주

우아한 하얀빛 진주. 완성된 진주는 아름답기만 한데, 사실 진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아픔이 담겨있다. 조개 몸속에 모래알 같은 이물질이 들어오면, 이를 견디기 위해 조개는 점액질을 만들어 이물질을 감싸고 또 감싼다. 조개 몸속에 모래알이 들어오면 조개는 엄청난 고통을 느낄 것이다. 처음에는 내보내기 위해 입을 벌리는 등 노력을 하다가, 그래도 나가지 않는 모래알은 오히려 자신 속으로 품게 된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지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름다운 진주다.


내게는 모래알처럼 마음속에 콱 박힌 일들이 있다. 어느새 해가 바뀌어 3년 전 일이지만 그때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 왕왕 꿈에 나올 만큼 아직도 그 일들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 조개가 바다에 살기에 모래알을 만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나 역시 회사에서 한 사람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에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팀장이 된 지 1년 반이 지난 무렵이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모르게 팀원들과 삐그덕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 팀을 꾸렸을 때는 어디를 가나 함께 다니고 한 목소리를 내서 우리들 스스로 최고의 팀이라고 얘기했었다. 그 당시 회사는 바꿔 나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늘 신나게 뛰어다녔다. 어느 팀이 이 프로젝트를 못한다고 하면 달려가서 무엇이 문제인지 확인하고, 일이 되게 하려면 이것을 고치면 되는 것 아니냐고 꽤 전투적으로 토론하기도 했었다. 회사가 우리의 모습에 맞춰 예전에 안되던 것들이 점차 되기 시작하고 그 결과로 회사 규모까지 커지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기만 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팀이 다른 팀과 부딪히는 만큼 프로젝트가 빠르게 해결되기도 했지만, 다른 팀들은 쓴소리만 해대는 우리 팀을 대체로 싫어했었다. 그리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 팀들을 적으로 두고서 다져진 우리의 팀워크는 사실 끝이 보이는 팀워크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1년 반 정도 우리 팀이 신나게 칼춤을 춘 덕분에 회사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이제는 커진 규모에 맞게 내실을 다져야 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대표님 역시도 팀장인 나에게 이제는 우리 팀이 나서서 무언가를 바꾸기보다는 다른 팀과 속도를 맞춰 균형을 맞추기를 기대했다. 나 역시 이제는 다른 팀들과 속도를 맞출 때가 왔음을 공감했다. 하지만 팀원들은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바꿀 것이 많은데 내가 안주한다고 했다.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예전 같았으면 내가 발 벗고 나서서 문제를 해결했을 텐데, 어느 순간부터 그 팀의 상황도 이해해 보자 라는 말을 하는 내가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다른 팀을 타겟 삼아 고쳐 나가던 것들이 더는 어려워지자, 이제 내가 타겟이 되었다. 나는 한순간에 문제 있는 팀장이 되어 버렸고, 그렇게 친구처럼 지내던 팀원들이 등을 돌렸다. 그렇게 처음으로 사람에게 데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 상황을 해결해 보려고 대화도 해보며 여러 시도를 했지만, 시도하는 모든 것들마다 예상치 못했던 부작용이 튀어나와 우리의 관계는 엉키고 설키기 시작했다. 그러다 서로 불편해져서 될 수만 있다면 얼굴을 보고 싶지 않은 상황까지 치닫고 말았다. 내가 팀장이기에 나와 대화를 나눌 뿐 마음을 열고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 잘 느낄 수밖에 없었고, 예전에는 팀원들과 하하호호 함께 하던 점심시간은 어느새 혼자가 되어버렸다. 그 시간이 너무 힘들어 회사를 그냥 그만둬버리고 싶었지만, 이 일을 이대로 덮고 퇴사하면 사람이 무서워 다시는 어디에서도 일을 할 자신이 없어 그저 웅크리고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


조개가 점액질을 내뿜으며 모래알을 감싸듯, 이미 내 마음속에 박혀버린 그 상황들을 계속 머릿속에서 되풀이하며 생각했다. 예전 상황들을 다시 그려보면서 계속 나에게 물었다. ‘내가 무엇을 다르게 했어야 했을까? 대표님이 이제 속도를 맞추라고 했을 때 아니라고 했어야 했나? 내가 지난 일 년간 다른 팀들에게 호전적으로 대한 것부터 잘못 아닐까? 어느 순간 팀원들과 친구처럼 너무 가까워진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면 내가 처음에 팀을 꾸릴 때부터 일이 되기만 하면 된다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만 뽑았던 것이 문제였을까? 아니 내가 이 회사에 입사한 것이 잘못이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금의 상황들이 왜 일어났는지, 이 관계를 다시 바로잡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일들을 내 스스로 재해석하고 싶었고, 그 내용들을 글로 남기고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하지만 힘들었던 일들에 대해 글을 쓰려하면 아직도 마음이 괴로워 일기장에만 쓸 법한 푸념글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쓰다가 멈추고 쓰다가 멈추길 반복했었다.


진주가 만들어지는데도 몇 해의 시간이 걸리듯, 그렇게 팀원들과 삐그덕 대면서도 그럼에도 이 일을 아직 좋아하니까 그렇게 1년이 넘는 시간들을 보냈다. 그 시간 동안 그들과 불편하면 불편한 대로 일을 하기도 하고, 한 명씩 퇴사하고 떠나면서 우리의 진짜 관계야 어떻든 겉으로는 고생 많았고 앞으로 잘되길 응원한다며 좋게 마무리 짓기도 하면서, 여러 교훈들이 남기 시작했다. 그 상황들을 복기할 때마다 내가 단순히 몇 가지 선택을 다르게 한다고 바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일을 바라보던 태도, 일만 되면 된다 라는 그 태도, 그에 기반해서 내가 내렸던 모든 결정들이 이 상황을 만들었고, 내가 결국 사람이 중요했다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 어차피 한 번은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제는 관계를 맺을 때 더 조심하고, 예의 있게 행동하려고 더 노력하는 등등의 삶의 태도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들 사이에 시간이 지났을 뿐이라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시절인연처럼 한 때는 서로 뜻이 맞아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힘이 되었던 인연이었을지 몰라도 우리들 사이에 시간이 흘렀을 뿐이라고. 그렇게 떠나보낼 인연은 떠나보내자 라는 깨달음이 남았다.


그 경험에서 힘들었던 감정은 모두 빠지고, 앞으로 회사에서 관계를 맺을 때는 적당한 거리감을 가지고 예의를 지키자 라는 덤덤한 글을 써내는데 총 2년이 걸렸다. 그렇게 지난 몇 년간 꼭 써야겠다고 다짐만 하던 이야기를 겨우 완성하고서 브런치에 발행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앞으로 쓸 글들의 리스트가 20개가 훌쩍 넘는다. 그렇게 글을 발행하고서 내가 진주를 만들 수 있는 조개가 되었음을 알았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마음이 다치는 일은 겪을 수밖에 없겠지만, 그리고 물론 그런 일들을 겪는 당시는 너무 아프겠지만, 나는 그 경험을 재구성도 해보고 숙성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기에, 그래서 나는 진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어떤 경험을 하든 거기서 무언가를 물길 듯 건져 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것만으로 이미 나는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만의 진주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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