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멈추지 않아도, 오늘을 살되 오늘 안에서 회복이 일어날 수 있도록
몇 년 전 회사 생활이 힘들 때,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마음 단단히 일하는 법이 궁금했다. 조언을 얻어볼까 하고 서점에 가보면 마음이 힘든지는 모르겠고 열정을 불사르며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반대편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 또는 곰돌이 푸와 함께 토닥토닥 모든 게 잘될 거야 라는 이야기뿐이어서, 고민을 해결해 줄 책을 찾지 못했었다. 그 당시 나는 어찌 되었든 회사에서 버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매일 내가 스트레스로 잠식되는 것을 그저 받아들일 뿐이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하루를 버티는 마음으로 그 시기를 보냈는데, <마이크로 리추얼>은 내가 갖고 있던 고민을 명확히 언급했다. 일상을 멈추지 않아도,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오늘을 살되 오늘 안에서 회복이 일어날 수 있도록 오늘을 살며 회복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책은 ‘러닝머신을 달리고 있는 당신에게’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쉬면 뒤처질까 봐 멈추지 못하고 열심히 달려도 제자리 정도인 시대라는 문장에 공감했다. 나 역시 조금 다른 의미기는 하지만, 회사를 다니는 것은,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러닝머신 위에 오르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회사에서는 분초를 다투면서 의사결정을 하고, 빠르게 다음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일들이 쉴 새 없이 생긴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끝나기 무섭게, 다음 프로젝트는 이미 시작되어 있다. 회사를 다니는 것은 시속 몇 십 킬로의 속도로 계속 달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퇴사하기 전까지는 러닝머신에서 내려올 수 없고, 퇴사를 해서 내려온다고 하더라도 밥벌이를 멈출 수는 없기 때문에 또 다른 러닝머신 위에 올라야 하는 게 삶이라고 생각했다. 가끔 컨디션이 좋지 않아 잠시 멈추고 싶을 때, 넘어질 때도 있지만, 내 뒤에 러닝머신에 오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 서있어 쉴 여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회사의 속도에 어떻게든 맞추든 러닝머신을 영영 내려가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러닝머신 사회에서 이 책은 나를 지키는 법, ‘리추얼’에 대해 이야기한다. 리추얼은 매일 나 자신을 위해 의식적으로, 규칙적으로 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 행위 자체에 효과가 있는 경우가 있고 (매일 아침 ‘이불 정리’라는 리추얼을 한다면, 퇴근 후 아침보다 더 힘든 내가, 조금은 더 정돈된 집에서 저녁시간을 시작할 수 있다.) 또는 해냈다는 감정이 쌓여서 효과를 발휘하는 것도 있다고 했다. (아무것도 할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행동 자체에는 아무 의미는 없지만 ‘매일 선 하나 긋기’를 꾸준히 해보는 것을 통해,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준다고 했다.) 그렇게 리추얼은 ‘내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라고 했다.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아하 모먼트가 있었는데 사람이 지치는 이유와 회복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1. 사람이 지치는 이유는 일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일한 만큼의 보상, 스스로에 대한 인정까지 포함한 보상이 충분한가의 문제였다.
그동안 번아웃은 일이 너무 많아서, 나를 소진시켜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번아웃을 가장 많이 겪는 직업 1위가 가정주부라 했다. 번아웃은 얼마나 빡세게 살았느냐로 결정되는 개념이 아니라, 노동량 대비 보상의 밸런스, 급여, 인정욕구, 보람, 심리적 정서 등을 포함하여 내가 소진한 것에 비해 얼마나 보상을 받았느냐에 달려있다고 했다. 내가 매일 일터에서 60 정도로 적게 에너지가 소모되더라도, 내가 느끼는 보상이 55라면 매일 5씩 소모되는 일상을 살고 있고, 그러다 임계점을 넘으면 번아웃이 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를 채워주는 정신적 보상을 늘리는 것, 내 일의 의미를 하나 더 찾거나 일상에서 사는 낙을 늘리거나, 가장 의미 있는 심리적 보상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비롯된 인정과 존중이라서 내가 나를 인정하고, 채워주는 보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의 힘듦이 오늘 안에 끝날 수 있게, 내일로 넘어가지 않게 나를 돌보는 리추얼이 필요했다.
2. 그리고 회복은 멈춰서 회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규칙적으로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다짐한 순간부터, 어떤 규칙성을 가지고 사소하더라도 무언가를 해낼 때, 리추얼을 통해 나를 돌보면서 회복한 것이었다.
번아웃이 오면 그냥 다 그만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 이 책에서는 우리가 놓치고 있던 '실제 회복이 일어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등산 중에 지쳤다면, 잠깐 쉴 곳을 찾고, 쉬면서, 에너지를 채워주는 무언가를 먹는 순서로 회복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도, 지쳤을 때 잠깐 쉬는 것은 맞지만, 에너지를 채워주는 무언가 역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쉬는 것에만 집중해 버리면, 일상을 놓아버리고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래도 지켜지던 루틴들 (아침에 일어나고 점심을 챙겨 먹던 루틴 등)이 무너지고, 사람들과의 연락이 끊기고, 그래서 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나를 채워주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나를 돌보기로 마음먹고, 정해진 시간에 산책을 나가는 것처럼 사소하더라도 규칙성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내는 것, 그것이 시작이라고 했다.
그래서 저자는 번아웃이 왔을 때 스스로 실험을 한다. 지칠 때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쉴 수는 없어서, '커리어 단절 없이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며 살되, 그 안에서 회복이 일어나게 하는 실험', 그래서 휴가를 내서 최대한 일을 off 하고 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고, 에너지를 쌓을 수 있는 활동들 (눈치 보지 않고 그냥 하고 싶던 일을 생각해 봤더니 저자는 게임이라고 했다.), 에너지를 한바탕 채워도 보고, 그리고 규칙적으로 나를 돌볼 수 있는 활동들을 하는 것, 그렇게 번아웃에서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리추얼
그래서 이 책에서는 일상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서 회복이 일어날 수 있도록, 다양한 리추얼이 예시로 나온다.
리추얼의 목적은 ‘마음의 중심을 잡는 것’이지만, 마음의 중심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서 (누군가는 회복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목표달성을 위한 집중일수도 있고), 목적에 맞춰 '내가 어떤 행위를 할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가?'라는 질문에 맞춰,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면 그것이 리추얼이었다.
1) 어제의 슬픔이 오늘로 넘어오지 않게 막아주는 아침의 리추얼 - 아침에 일어날 때 가장 먼저 내뱉을 첫마디를 정한다던지, 2) 오늘의 불안이 내일로 넘어가지 않도록 저녁 리추얼 - 스트레칭을 한다던지, 일기를 쓴다던지 등의 리추얼을 제시했다.
책에서는 다양한 리추얼이 예시로 나오지만, 예시 하나하나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상태인지 이해하고,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행위들을 이해하고, 그래서 오늘의 지치거나 화난 감정이 오늘 중으로 끝나도록, 오늘 안에서 회복되도록 자신을 잡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일상의 체크리스트 마음 날씨
여기에서 소개하는 리추얼 중에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일상의 체크리스트 마음 날씨였다. 매일 밤 하루를 회고하며 내 마음의 날씨와 온도를 기입하는 것인데, 날씨는 그날 있었던 사건 중심으로, 글자로 맑음, 흐림 등등으로 기록한다. 온도는 그날의 감정을 숫자로 표시한다. 이를 통해 경향성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날씨는 비슷한데 (큰 사건은 없는데) 온도가 널을 뛴다면, 현재 일어나는 사건이 아닌 과거에 일어난 사건 또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내 마음이 널뛰는 것이고, 이럴 때는 마음을 다스리는 활동들을 찾아야 하고, 반대로 날씨가 널뛸 때는 온도가 널뛰는 건 당연한 것이고, 이럴 때는 마음을 다스리는 활동보다 당면한 상황을 인지하고 문제 상황 자체를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매일의 내 감정을 기록해 두고, 내가 오늘의 일 때문에 힘든 것인지, 혹은 내 시선이 과거 혹은 미래에 가있는 것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몇 년 전 회사 생활에 힘들어하던 나를 생각해 보면, 회사 생활에 있어 갑자기 먹구름이 끼거나 비가 오는 것처럼 힘든 상황이 생기면,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대처할 방법은 모른 채, 왜 내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나, 비 오는 상황 자체에만 집중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비가 얼른 그치기만을 바라거나 비가 오지 않는 날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몇 년의 경험이 더해지고, 이제는 내가 날씨를 바꿀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비가 오면 우산을 잘 쓰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내게 있어 우산을 쓰는 것은 '글쓰기'였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을 재구성하고 의미를 찾고 나를 지켰다.)이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리추얼은 옆구리에 끼고 있는 작은 우산이라고 했다.
길을 나설 때, 작은 우산 하나를 끼고 걸으면 오늘 비가 오든, 안 오든 큰 걱정이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내 마음을 지키는 무언가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걷는다는 생각이면 될 것 같아요. 물론 맑은 날에는 거추장스럽거나, 불필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요. 그래서 되도록 작고 가벼울수록, 매일 지니고 다녀도 부담이 없을수록 좋은 게 아닌가 싶어요.... 물론 리추얼이 만능은 아니에요. 모든 비를 다 막아줄 순 없을 겁니다. 태풍이 불어오면 홱 하고 뒤집힐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우산 하나를 쥐고 걷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변화무쌍한 인생 날씨를, 조금은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매일 소진되지 않고 오늘 안에서 회복이 일어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리추얼을 기억하고, 부지런히 글을 써보자고 다짐해 볼 수 있던 책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잊고 지내던 긍정심리학에 대한 관심을 일깨운 책이었다. (두 번째 직업에 대해 https://brunch.co.kr/@236project/145)
혹시 마음을 단단히 하며 살아가는 법에 대한 갈증이 있는 분들께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