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쯤 나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나답게 일하기’라고 생각을 정리해 두고 2달 정도 시간이 지났는데, 내 생각이 조금은 다르게, 혹은 조금은 더 뾰족하게 변화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6월의 어느 날 이야기
6월의 어느 날, 내가 설득해야 하는 내용이 회사의 우선순위상 중요하지 않아서 협조적이지 않은 분위기의 미팅이 끝나고, 이 일이 내 스콥이네 아니네 하는 논의에 지쳐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의미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 순간 내 Next가 정해졌음을 깨달았다.
“나는 이제,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풀 수 있는 곳으로 간다.”
마케팅은 ‘무엇’을 알리는 수단이다. 내가 초년생 때 가지고 있던 고민 중 하나는, 그 ‘무엇’을 알릴지에 대해 결정하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마케팅하든 모두 재미있을 것 같아 하나를 정할 수는 없었다. 마케팅 자체에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결국 '마케터로서 다양한 활동을 해볼 수 있어서 성장할 수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인더스트리를 정해왔었다. 그렇게 ‘무엇’을 알릴 것인가 하는 고민은 열어두고, 법률, 생필품, 이커머스 등 다양한 인더스트리를 경험해 왔다. 물론 ‘이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라는 질문은 주기적으로 들기는 했지만.
그리고 10년 차가 되어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12년인지 13년인지 (오래되어 정확한 연도는 기억나지 않지만), 김주환 교수님의 회복탄력성 관련 수업을 들었는데, 그 당시 마케팅을 좋아했던 것만큼 회복탄력성 과목에 대해 흥미를 느꼈었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한 공부보다, 순수히 그 학문에 재미를 느껴 수업도 열심히 듣고, 참고로 언급된 논문들도 읽어보고, 그 분야를 공부하던 대학원 언니도 알고 지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당시 마케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했던 터라, 긍정심리학, 회복탄력성에 대한 흥미를 인지만 한 채로 그냥 넘어갔었다.
그리고 17년, 18년에 P&G를 다니면서 매일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높은 업무 강도와 챌린지한 문화에 마음이 힘들었고, 웃고 지내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은 안 힘든가? 나만 이렇게 힘든가?' 하는 궁금증을 가졌었다. 그래서 회사 안에서 마음 지키는 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그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 없어 답답해했었다. 그래서 내가 나중에 ‘회사 안에서 마음 지키는 법’을 깨닫게 되면 꼭 이 내용을 기록해 두어야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23년부터 하나씩 글을 남겨오다, 지난 6월 읽게 된 <마이크로 리추얼>에서 내가 그동안 궁금해했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회복탄력성, 리추얼 등 긍정심리학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지쳤을 때 어딘가로 훌쩍 떠나지 않고 (모두가 그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나를 지키는 법에 대해 늘 관심이 있어왔는데, 내가 듣고 싶어 했고, 말하고 싶어 했던 것이 결국 12년도, 13년도에 너무나도 즐겁게 공부했던 회복탄력성 분야였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렇게 6월의 어느 날,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긍정심리학이었다는 깨달음과,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맞물려, 12년도 그 재밌던 수업을 들었던 때로 크게 한 바퀴를 돌아온 것 같았다. 이제는 인더스트리를 선택할 때,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인가 라는 기준으로, 긍정심리학과 관련된 곳에서 일을 해야겠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마케터로서 그 일을 할지 말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냥 그 일 자체를 하고 싶었다. 물론 지난 10년간 해온 마케팅과 분명 접점은 많을 것이다. 마케팅이라는 것이 결국 ‘무엇’을 키울지에 대한 이야기이고, 해보고 싶은 ‘무엇’이 생긴 것이니까. 이 분야를 예전에 마케터가 되고 싶어 준비했듯 깊게 파면, 언젠가 이게 내 두 번째 직업이 되겠구나 깨달았다.
모든 일을 멈추고서 바로 핸들을 크게 꺾어 긍정심리학으로 가기에는, 이제는 지켜야 할 가족도 있고, 갚아야 하는 대출금도 있어서, 지금의 일은 계속하면서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나라는 사람은 어느 정도 가시화가 되어야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니까. 지금처럼 마케터로서 매일 무엇인가를 배우는 곳에서 성장하면서, 나의 '무엇'에 해당하는 공부를 한다. 12년도에 배우고 10년을 훌쩍 지나 많이 가물거리는 긍정심리학, 회복탄력성 등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또 길이 보이지 않을까. 오랜만에 다시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다.
요새 출퇴근 길에 김주환 교수님의 <회복탄력성> 책을 읽고 있는데, 읽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카우아이 섬에서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사회부적응자로 클 것이 당연시되었던 아이들의 3분의 1은 아주 밝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자랐고, 그 아이들 옆에는 꼭 부모가 아니더라도, 그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전적으로 지지해 주는 한 사람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의 나도 회사에서 멘탈이 나가는 일이 생기면, 아무 고민 없이 바로 전화를 걸 친구가 있다. 내 크고 작은 고민, 깨달음에 대해 늘 들어주는 친구가 이번에 나를 스치고 지나간 두 번째 직업에 대한 생각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언니는 언니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알고 있다고. 그리고 늘 그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나씩 이뤄낸다고. 마음을 지키는 법에 대해 예전부터 늘 이야기해 왔고, 언젠가 긍정심리학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 언니가 그려진다고."
그렇게 내 두 번째 직업이 시작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