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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육아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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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Dec 22. 2023

워킹맘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질문의 시작

“그 많던 언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워킹맘이 되기 전, 그들이 회사를 그만두는 이유가 아이를 맡길 장소나 사람이 부재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전에 내가 사회 문제라고 생각했던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는 베이비시터를 잘 연결해 주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워킹맘이 되고 보니 아이 맡길 사람이 없어서가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근본의 원인이 있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물론 다양한 케이스들이 있기에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일만큼 중요한데, 회사는 여전히 내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기를 기대한다. 일과 육아 둘 다 잘하고 싶어 고군분투하는데, 둘 다 잘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밖에 없으니까, 결국 그 상황을 견디기 어려워서였다. 일에 집중하기 위해 아이를 맡기려고 작정하면 하루종일 맡길 곳은 있다. 하지만 내가 일을 하는 이유도 아이와 행복하게 살자고 하는 것인데 힘들어하는 아이, 힘들어하는 나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은 시작된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질문의 시작

초년생 때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없었다. 이 때는 모르는 것이 많아 뭐든 배워야 하고, 월급도 올려야 하고, 그냥 인생에서 ‘일’이 메인이 되던 시기였다. 일하는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 없었다.


그렇게 일만 있던 삶에 아이가 태어나고, 나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육아도 시작된다. 하지만 회사는 단순히 출퇴근만 반복하는 곳이 아니라, 늘 그렇듯 나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요한다. 회사의 피라미드 구조 상 연차가 찰수록 필요로 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하고, 더 많은 시간을 회사에 쏟고 더 능력 있는 사람만 남는다. 예전처럼 회사 일에만 매달려도 될 듯 말 듯한데 나는 이미 집에서는 육아라는 과제로 허덕이는 중이다. 밤새 깨는 아이 때문에 잠을 거의 자지 못한 채 출근하는 날들이 쌓이고, 진이 다 빠질 만큼 일을 하느라 퇴근 후 아무것도 할 힘이 없지만 다시 아이를 돌보는 시간들이 쌓이면서, 일도 육아도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둘 다 잘해보려고 잠을 줄이고, 에너지드링크를 마셔가며 노력하지만 몸도 마음도 한계에 도달하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들기 시작한다. 먼저 몸과 마음이 지쳐 이런 질문이 들기 시작한다.


하지만 육아는 힘들기도 하지만, 힘든 모든 것을 잊을 만큼 행복하기도 하다. 내가 이렇게 일을 하는 이유도 아이와 함께 행복하기 위해서고, 그래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포기할 수 없다. 퇴근하고 몇 시간은 아이와 평일에 함께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고, 야근을 하는 시간은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의 기회비용이다. 회사에서 더 잘하자니 아이와 함께하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시간들을 더 줄여야 하는데, 아이가 없는 것처럼 일만 해야 하는데, ‘아이를 보지 못하면서까지 일을 해야 하나?’ 또다시 질문이 드는 것이다.

이제 내게 소중한 것은 무작정적인 성장도 아니고, 높은 월급도 아니고, 일하면서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도 일을 잘하고 싶은데, 아이와 회사 모두 내게 100% 이상의 노력을 쏟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아이도 잘 키우면서 일을 잘하는 모습이 욕심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한다.


둘 다 잘 해낼 자신이 없어서

그리고 회사에 남아있는 윗사람을 바라본다. 이제 내게 절실한 것은 일과 아이의 균형인데, 나의 윗사람들을 보면 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없이 일을 하고 있다. 누울 자리 보고 다리도 편다고, 회사에 모든 것을 다 걸고 달리는 사람들 옆에서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 처음에는 잠을 줄여가며 아이, 일 모두 같이 잘해보려 했으나 지속가능하지 않고, 아이를 내려놓고서 일만 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그동안 책임감 있게 일을 해왔던지라 회사에서 더 이상 100 이상의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내 모습이 힘들다. 스스로가 회사에서 60점, 70점인 것 같고, 육아도 60점, 70점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회사에 더 피해 주지 않고, 아이를 더는 괴롭히지 말고 그만두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둘 다 잘하고 싶은데 못하는 모습에 이렇게 할 바엔 하나만 제대로 하는 것이 낫겠다고, 그렇다고 엄마를 그만두고 싶지는 않으니 회사를 떠나는 것을 선택하는 것 아닐까. 일과 아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스스로의 기준이 높은 사람일수록 그렇게 회사 안에서 못하는 나를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는 것을 선택한다고 했다.


애쓰고 있는 나를 인정해 주기

브런치에서 여러 글을 읽다가, 워킹맘의 아웃풋은 합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회사에서 70점, 집에서 60점 하는 것 같아도 실은 나는 총합 130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자기 합리화처럼 느껴져 나도 아직은 어렵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힘든 일이고, 아이를 잘 키우려 노력하는 와중에 나도 성장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해 주기로 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해 보일지 몰라도 (회사 사람들은 사실 내가 얼마나 애쓰는지는 알 필요도 없고, 안다고 해도 결과로만 평가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애쓰고 있는 나를, 내가 인정해 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시선을 내면으로

물론 일과 아이를 병행하려면 궁극적으로는 유연성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방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당장 그런 일을 찾기는 쉽지 않고 그냥 그만둬버리는 선택을 하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애쓰고 있는 나를 인정해 주고,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무엇을 다르게 시도했는가?’라는 질문으로,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전전긍긍하는 대신 내 기준을 안으로 가져오기로 했다.

책임감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 빨리 그만두는 결정을 내린다고 했다. 회사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까 더 예민하게 고민하고, 내 바뀐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만둔다고 했는데, 모두 남에게 쏠린 시선이 시작이었다. 남들의 평가에 그만둬버리기에는 아이만큼 내 일을 하는 나도 소중하니까. 노력하고 있는 나, 천천히 나아가고 있는 나를 인정해 주기로 했다.


일과 육아가 벅차게 느껴지는 순간은 앞으로도 더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아이가 너무 어리다 보니 나와 떨어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고, 어린이집 가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데, 곧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시기는 올 것이고, 힘들어하는 아이를 보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더 자주 들 것이라는 것도 안다. 회사 또한 더 높은 기준을 제시할 것이고, 그때마다 회사에서의 나도 성장하고, 엄마로서의 나도 조금씩 성장해가고 있는 모습에 집중해 보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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