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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를 남기는 것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시선

내 이야기를 숨길 수 있을까?

by Onda

내가 응원하는 서사

지난주에 재쓰비의 세 번째 곡이 나왔다. 재쓰비라는 그룹을 간단히 설명해 보면, 문명 특급이라는 유튜브 채널 MC 재재가 프로젝트로 시작한 그룹이다. 그리고 유튜브 채널에 그룹 제작기를 모두 기록했다. 재재가 가비에게 전화를 걸어 같이 노래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부터, 제작비를 벌기 위해 괴산 고추 축제 행사를 뛰는 모습도 담았다. 그들이 부를 노래를 찾고, 안무를 배우고, 첫 번째 공연을 하고. 첫 번째 곡이 나왔을 때 서사를 알고 있는 모두가 열광했다.

그러다 지난주 세 번째 곡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쓰는 이유는 이 과정에서 느끼는 바가 많았기 때문인데, 세 번째 곡을 정할 때 두 개의 후보가 있었다. 하나는 재쓰비의 기존 콘셉트와 비슷한 노래, 다른 하나는 시도해보지 않았던 강렬한 콘셉트의 노래. 댓글들도 1번 곡이다, 2번 곡이다 의견이 분분했고, 2번 곡은 재쓰비스럽지 않다, 상상이 안된다는 의견으로 사장될 뻔했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 하자’, ‘재쓰비의 가치는 도전이었다’며 모두가 어렵다고 생각한 2번 곡을 선택했다. 지난주에 2번 곡의 뮤직비디오 제작기가 유튜브에 올라왔다. 재재가 몇 시간씩을 와이어를 타고 그 와중에 유머를 잃지 않고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댓글들도 모두 한 마음으로 재쓰비가 2번 곡을 잘 소화하기를 응원했다. 그리고 재쓰비는 모두의 예상을 넘어선 완벽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배경 없이 노래를 들었다면 그냥 흘려듣고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2개 곡 중 무엇을 선택할지 고민하는 것부터 보았고,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던 재재가 더 이상 도전은 어렵다고 말할 때 재재 덕분에 합류한 사람들이 도리어 재재에게 해낼 수 있다고 응원하고, 또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알고서 듣는 2번 곡은 울림이 달랐다.


파는 사람,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상히 알려야 하는 시대

폴인에서 민음사 조아란 님 인터뷰를 보았다. 이제는 파는 사람,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상히 알려야 하는 시대라고. 사람들이 만드는 결과물이 모두 상향 평준화되어, 이제는 어떤 사람이 이걸 왜 만들었는지 소상히 보여줘야 소구가 되는 시대라고.

그리고 나 역시도 마케팅을 하면 할수록 결국은 ‘스토리’가 답이다는 결론이 났다. 내가 한 곡의 노래를 들을 때도 이야기를 소비하는데, 아무리 고객 행동 별로 촘촘히 CRM 프로그램을 짜서, 어제 본 상품이 오늘 쿠폰 적용이 된다는 것을 알린다고 물건이 팔리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또 배운다. 이제는 이 브랜드가 왜 이 이야기를 하는지, 왜 이 대표는 고집스럽게 이 이야기만 하고 있는지, 이 브랜드가 겪은 산전수전을 내가 알아야만 응원하고 기꺼이 지갑을 여는 시대가 되었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 블라인드나 주변에서 대외활동에 대한 이야기, 열심히 활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반복적으로 들리기도 했다. 나도 책을 쓰고 대외활동을 하고 있지만 빈도가 낮아서, 유명하지 않아서 눈에 띄지 않았을 뿐. 언젠가 나도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글을 쓰다가도 제동이 걸렸다.


두 갈래 길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리고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라는 이야기. 17년, 18년 회사가 너무 힘들 때 내 스스로 너무 필요했던 이야기. 21년부터 쓰고 싶었지만 짬이 안 돼서 못 쓰던 글을 23년부터 하나씩 차근히 남겨, 25년에는 무조건 마무리 짓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를 완성하려면, ‘회사가 힘들 수밖에 없는 이유’, ‘회사에 무례한 사람이 계속 생겨나는 이유’처럼 회사가 보면 싫어할 만한 글들, 반골 기질처럼 보이는 글들이 필요했다. 마음 단단히 일하는 것은 결국 내가 원하는 일을 더 잘, 더 오래 하기 위한 것이라 회사에도 좋은 이야기지만, 그 이야기들을 쓰기 위해 필요한 일부 글들이 반골 기질처럼 느껴져 불편했다. 이 글들을 써놓고 나면 다시는 회사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내 마음의 일부는 아직도 직장인인지라 자꾸 제동이 걸렸다.


만드는 사람의 이야기를 소상히 알려야 하는 시대, 또 다른 한편에서는 나댄다는 욕을 듣는 이 상황에서 선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 고민이었다. 내가 왜 이걸 만들고 파는지에 대해 설명하는 삶, 그냥 나를 숨기고 회사 일에만 집중하는 삶. 두 갈래 길이 있다고 하면 무얼 선택할지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내가 더 가고자 하는 방향이 회사 내 인정인가?’라고 되물었을 때 그건 아니라는 것이 명확했다. 그리고 ‘마음에 걸리면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 안 쓰면 되잖아?’라고 되물었을 때도 그건 아니라는 것이 명확했다. 시대 흐름이 회사 안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으로 변한다 한들, 나라는 사람은 회사 안에서만 인정받는 걸 원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완성해야만 하는 내 과제가 되어 있었다.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다면,
그냥 더 나다운 선택을
하고 사는 게 맞지 않을까.



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이 주변에 모이지 않을까?

그래서 적정선은 모르겠고, 반골처럼 보일지라도 지금 쓰는 글들을 완성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내 이야기를 하려고 잠시 멈췄고, 지금은 후회 없이 내 이야기를 남겨야 할 때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답게 일하기’에 관심이 있고, ‘마음 단단히 일하는 것’에 관심 있다는 것을 계속 알린다면, 내가 남긴 글들을 보고 언젠가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든 회사든 만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렇게 ‘회사가 힘들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이번 주에 남기면서,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의 첫 삽을 떴다. 후회 없이 나답게, 내 기록을 남기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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