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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큰 회사 밖의 시간, 그 불편한 여유

일상을 붙잡는 힘

by Onda

회사라는 돌덩이 하나 뺏을 뿐인데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병 안에 큰 돌덩이, 작은 돌멩이, 모래까지 모두 넣으려면 순서가 필요하다고. 큰 것부터 넣어야 작은 돌멩이도 모래도 모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작은 것부터 채우면, 정작 꼭 들어가야 했던 큰 돌덩이는 들어가지 못한다. 인생에 있어서도 가장 크고 중요한 일을 먼저 넣고, 그다음에 작은 것을 넣어야 한다고 했다. 휴직을 시작하면서 회사라는 큰 돌덩이를 빼고 그 자리에 내 인생에 넣고 싶었던 글쓰기라는 큰 돌덩이를 넣었다.


회사라는 큰 돌덩이 하나 뺐을 뿐인데, 내 일상은 무언가를 계속 추가해도 여유롭다. 하루에 6시간 글쓰는 시간을 넣어도 여전히 여유롭다. 아침에 모닝페이지를 쓰고, 일주일에 2~3번 운동도 하고, 아이와 산책을 나가고, 아이에게 밤늦게까지 책도 읽어 주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추가하는데도 계속 여유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회사라는 돌덩이가 얼마나 컸는지를 깨닫게 된다. 회사를 그만둔 직후에 이 크기를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일상에 계속 무언가를 추가하는데도 여유가 생기는 것을 보면서 뒤늦게 놀라고 있다.


휴직을 앞두고 친구와 돈 버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회사 밖에서는 단 돈 몇 만 원을 버는 것도 힘드니까, 회사만큼 돈을 잘 주고 보상하는 곳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실은 회사가 돈을 많이 주는 게 아니라, 정말 회사가 절대적으로 내 시간이든 에너지든 많은 것을 가져간 게 맞다는 생각을 한다.


불편한 여유

회사가 빠진 만큼 시간이든 에너지든 여유롭지만, 불안이라기에는 아직은 거창하고 불편감 정도의 단어로 설명되는 감정이 있다. 10년 넘게 어딘가로 출근해서 하루종일을 보내고 오는 삶, 매일 나를 채찍질했던 삶을 살아왔던 터라, 노트 앞에서 내 생각을 자유로이 펼치는 이 시간이 좋으면서도 어색하다. 어색해서 그런지 자꾸 회사로 돌아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 시간의 끝을 그리게 된다.

내년 1월쯤이면 어떤 회사로 가야 할까?

나도 모르는 새에 다음 회사를 그려보는 나를 보고 놀라곤 한다. 뭐가 불편하길래 자꾸 끝을 그리게 될까? 불편한 이유들에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불편감을 낮출 수 있으니, 이름을 붙여보자면 다음 3가지 정도인 것 같다.


1) 트랙 밖을 벗어난다는 불편감

여유롭게 노트 앞에서 노닐고 있으면 드는 생각이,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시간도 유한한 리소스인데, 젊을 때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는데, 이렇게 여유로워도 되나 하는 불편감이 든다. <미지의 서울>에서 내 가장 큰 천적은 나라고 했다. 그 말처럼 내가 여유롭고 행복하면 감사하고 좋아하면 될텐데,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라는 질문을 던진다. 당연히 회사 다니면서 글 쓰고 육아하던 때보다는 여유로운 것도 맞고, 글을 쓰려고 휴직했지만 내가 회사 다닐 때처럼 아침 9시부터 밤 8시까지 내리 진이 빠질 만큼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보니 이 여유로움에 대해 나를 못살게 굴려고 준비를 한다. 내가 일을 멈춤으로써 생기는 기회비용, 나는 그에 상응하는 글을 쓰나 등의 생각들로 이어진다.


2) 계획이 틀어지는 것에 대한 걱정

휴직을 하자마자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에 올인하려 했지만, 두 번째 책 교정 작업과 육아시간이 늘어나 원래 하려던 일의 속도가 나지 않아 불편한 감정이 든다. 두 번째 책 <일감각을 키우는 주니어 성장 노트>가 8월 중순에 나왔어야 했지만 교정 작업이 늘어나면서 9월로 밀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휴직한 것을 아이에게 따로 말한 적이 없는데, 아이는 엄마의 여유로움을 느꼈는지 갑자기 엄마 껌딱지로 바뀌어 육아하는 시간도 함께 늘어나버렸다. 인생이 계획대로 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면서 통제하려는 성격을 아직도 못 버렸다. 아직 계획한 일을 시작도 못했는데 끝이 정해져 있는 실험 기간이 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 때면, 하고 싶은 것은 있지만 여전히 해야 할 것들에 발목이 묶인 시간이 계속되면 불편한 감정이 고개를 든다.


3) 내가 쓰는 글이 정말 세상에 도움이 될까 의구심

마지막으로 내가 휴직을 해서라도 끝내겠다고 다짐한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는 출간 계약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이 이야기를 결론 짓겠다고 갈망한 것에 가깝다. 어떤 날은 이 글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가도, 어떤 때는 내가 정말 책을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 그냥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이 실험이 다 끝나고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를 실물 책으로 만들겠다는 유일한 목표 하나가 있었는데, 이걸 못 이루고 실험 기간이 끝나면 어쩌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모두가 밥벌이를 하느라 바쁜 세상에 ‘실험’이라고 이름 붙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실험 성과가 충분히 나올까 싶은 것이다.


일상을 붙잡는 힘

그때마다 나를 붙잡는 방법을 정리해 보면, 다음 3가지다.

1) 불안과 공존하는 법

작년 말에, 이미 회사를 독립해서 살아가고 있는 친한 언니와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나는 소속감이 중요한 사람이라, 휴직 결정을 하기 전에 이미 내게 불안이 올 거라는 걸 알았다. 너무 불안하면 어쩌나 걱정되어 언니에게 미리 조언을 구했다. 그때 언니가 해준 이야기를 다시 생각해 본다.


트랙 밖으로 벗어난 지 몇 년이 지났지만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다만 불안을 데리고 사는 법을 알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스쿠버다이빙 이야기를 해주었다. 언니는 지금은 물속에서 4분 가까이 숨을 참는데 고통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저 고통을 인지하면서 숨을 참는 것이 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통 사람들이 잠수를 하면 숨을 1분 정도 참지만 언니는 누구든지 30분 내로 2분 이상 참도록 해줄 수 있다고 했다.

"횡격막이 치는 느낌이 들 텐데, 4번 정도 그런 느낌이 들어도 죽지 않는다."

"네가 혹시라도 기절하면 내가 너를 깨우든 뭐든 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앞으로 겪게 될 일에 대해 아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함께 해결해 줄 사람이 있다는 말만으로도 사람들은 숨을 더 길게 참을 수 있다고 했다. 불안도 같다고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아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네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엄청난 불안이 올 텐데, 이런 느낌이 들고, 그다음에는 어떤 느낌이 들고, 그 불안을 예측하고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그리고 이걸 함께 공감해 줄 수 있는 사람. 이 감정이 누구나 겪는 것이고, 내가 위험에 처한 것이 아니라는 것. 불편할 수는 있지만 지금 상황이 안전하다고 말해주는 누군가만 있다면 버틸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불안을 인지하고 살아갈 수 있다고 했다.


2) 루틴, 루틴, 루틴

그리고 불안감에 흔들리지 않도록 나를 붙잡는 방법은 루틴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모닝페이지를 쓴다. 일주일에 두 번은 운동을 간다. 하루에 6시간은 글을 쓰려 노력한다. 글이 더 이상 써지지 않을 때는 책을 읽는다. 일주일에 두 번은 아이를 어린이집에서 하원시킨다. 단순한 반복이 내 삶을 지탱한다.


3) 내가 오늘 무엇을 했고, 무얼 하려고 하는지에만 집중하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이 실험 기간에 해야 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마음 단단히 일합시다>를 완성하기

출간이니 수상이니 내 스스로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은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완성하기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내가 오늘 쓰려고 마음먹은 글들을 다 썼는지만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해야 할 것들을 생각할 때 너무 멀리 바라보지 않고, 오늘 내가 글을 썼는가 그 정직한 기준만 생각하고 있다. 망망대해 위에 떠있는 부표처럼 작가노트를 쥐고서 오늘 글을 썼으면 오늘은 잘 끝냈다는 생각만 한다. 그거면 됐다.



오늘의 나에게 집중하는 삶

휴직 초반에 수학자 허준이 님의 졸업 연사를 보게 되었고, 계속 그 문장들을 곱씹고 있다.

취업준비, 결혼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않길 의미와 무의미와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게 되길 바랍니다.


내가 불편감을 느끼는 것이 어디 병원 그럴듯한 1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를 못해서인가. 내가 오늘 하루를 온전히 살다 보면 내년 1월쯤 그 끝에서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


오늘 하루도 글을 쓰면서 낯선 나를 향해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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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