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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Sep 08. 2020

'떨어질 기회'라도 있던 시대에 대해

2014년 당시의 취준시절, 그리고 회사생활에  대해

문득 출근길에 '빨리 늙어버리고 싶던 시절'이 떠올랐다. 내 존재이유를 찾아야 했던 취업준비 시절, 얼른 늙어서 이런 고민들이 모두 지나가길 바랬다. 지금의 상황을 보니, 그렇게 힘들었던 그 시절은 '떨어질 기회라도 있던 시대'였다.


2014년부터 시작된 취업준비는 막막했다. 자소서, 면접, 자기소개. 지금 돌이켜 보면, 대학교를 막 졸업한 사람이 자신을 뭐라고 소개할 수 있었을까? 열정이 넘치는 사람? 어떻게 열정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 당시 취업정보카페에서는, 너무 열성적인 모습을 보여줘도 금세 이직을 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줄 수 있어 떨어질 것이라 했다. 적당히 열정 있고, 적당히 안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격 한다는데 나는 그 적정선을 알 수가 없었다.


한 회사에 지원했을 때는, 면접장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영어면접이 추가됐다고 했다. 앞타임 면접자가 3개국어 능통자여서 이제는 그 사람보다 영어를 잘해야 붙을 수 있다고 했다. 국내기업 MD 자리라, 전혀 영어를 쓸 일도 없던 자리였고, 면접전형에 대한 안내에는 영어면접이라는 말도 없었다. 그 시절은 스크리닝 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무엇이든 급작스럽게 추가되던 시절이었다. 사실 내가 영어를 잘한들 붙을 수 있는 것이 명확한 것도 아니었다. 내 뒷타임 면접자가 나보다 무엇 하나 뛰어나다면 나는 대체될 뿐이었다. 그런 불합리함에도, 나는 내 자리를 얻기 위해, 더듬거리는 영어로 말해야만 했다. I want to work in here.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올데이 면접이라고 그럴싸한 이름이 붙었는데, 회사 건물 7층에서 백여명 가까운 면접자들이 1차 면접을 보고 나서 갑자기 면접자 모두를 1층 로비로 내려보냈다. 그러더니 앞으로 문자를 받게 될텐데, 합격문자를 받은 사람만 다시 7층으로 올라올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1층 로비에 몰려있던 사람들 중 선택받은 몇 명은 엘레베이터로, 나머지 몇십명은 출구로 향해야 했다.


그 당시 채용공고들이 빼곡하던 다이어리.


그런데 여전히 학교는 속모르는 소리를 하고, 학생을 향해 돈벌이를 했다.

우리 학교는 그 당시 졸업유예 프로그램이 없었다. 졸업을 하고나면 취업이 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에, 재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졸업을 유예하는 프로그램인데, 우리 학교는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그 전학기에 최소 3학점짜리 수업을 1개라도 들어야했다. 졸업하지 못해 취업이 취소되면 안되기에, 우리는 언제 취업이 될지도 모르면서도 계속 등록금을 내야했다.

 그리고 또 다른 면접을 가기 위해 교수님께 면접으로 인한 출석인정 요구서를 냈더니, 속 모르는 교수님은, '그런 회사는 가지 마시게.'라는 말을 했다. 나도 그런 회사 가고 싶지 않았다. 가고 싶은 회사만 지원해서, 정말 나의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도 그런 회사 지원하고 싶지 않았다. 한 학기당 자소서를 100개씩은 내야 면접 몇 번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몇 학기를 반복해야만 했다.


그렇게 지리한 취업준비를 겨우 끝내고, 한 중견기업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다 큰 성인으로서 내 밥벌이를 한다는 설렘 대신, 학생 때도 경험해보지 못한 '핸드폰 압수'를 경험했다. 한 달간의 연수 기간동안, '연수원 프로그램 집중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회사는 다 큰 성인의 핸드폰을 뺏을 수 있을만큼 강력했고, 그것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부당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해병대 체험을 하고, 번지점프에서 뛰어내리고, 우리 회사 사랑한다고 소리를 질러대야했다.


대학시절 내내, 전략 마케팅을 하고 싶다는 생각 하에 다양한 공모전, 학회 활동들을 했었다. 학회를 할 때는, 매일 밤 11시, 12시까지 조모임을 하며, "너의 논리는 이게 부족해, 이런 건 근거가 뭐지?" 등등 졸업한 선배님들을 모셔놓고 인풋도 받고 꽤 열심히 살아왔다 자부한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했고, 힘들게 취업하고나서는 어떻게 춤을 춰야 우리 그룹이 1등을 할까, 어떻게 해야 임원에게 눈도장을 찍을까 등등의 이야기만을 했다. 그리고 정말 말그대로 춤 연습 때문에 잠이 늘 부족한 연수기간이었다. 대학생 때 다들 자기 계획을 가지고 꿈을 만들던 사람들이, 이 연수기간동안 이 회사가 전부인양, 이 회사에서 생각하는 방식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얼마나 사회적 낭비인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 회사에서 6개월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동안 있었지만, 검정운동화를 신지 않고 색깔있는 운동화를 신었다고 선배들 입에 오르내렸던 일도 있었다.


취업하고나서는 '바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무것도 못 들은 척 살아야했다.

어떤 단어로 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까? 자괴감이었던 것 같다. 논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하지 못했다는 자괴감, 대학생 때 왜 그렇게 노력했는지에 대한 현타, 그렇게 노력해서 겨우 입사할 수 있었던 회사가 이 정도라는 분노감. 사회에 대한 분노. 만명이 지원해서 한 명이 뽑히는 게임이라면, 떨어진 9,999명이 부족한 것인가 애초에 이런 게임판을 만든 사람이 잘못한 것인가. 많은 감정들로 잠 못 이루던 시기였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파랑새는 없었다. 

중견기업을 빠르게 퇴사하고, 예전부터 연이 닿아 같이 일했던 적 있던 스타트업에 입사하면서, 내가 대학생 때 알던 것은 교과서 속 이야기, 실제로 비즈니스가 돌아가는 것을 배우면서 내가 많이 부족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피앤지. 그토록 원하던 논리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회사에 입사하였으나, 그만큼 결과로 평가받는 회사였다. 입사하고 2주 뒤 어떤 미팅에서 정말 무슨 말인지 몰라 아무 말을 할 수가 없었는데, 매니저가 앞으로 말하지 않을거라면 미팅에 들어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 곳은 강한 놈은 알아서 살아남는 것처럼, 연수도 설명도 없이 그저 던져졌고 그저 평가됐다. 

그렇게 3년을 그 곳에서 인정받고자 노력했다. 12시에 전체 건물이 소등되면, 동기들과 함께 자연스레 다시 불을 켜고 노트북 앞에 앉았고, 목디스크 허리디스크에 다들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이 자세가 더 일하기 편하다느니 농담을 하며 버텼다. 매일 있는 미팅은 오늘의 내가 얼마나 논리적이고 똑똑한지를 평가하는 자리였다.


이런 생활이 버거워 잠시 쉬고 싶었지만, 나는 잠깐의 쉼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었다. 그 때 빨리 늙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남아있는 긴 세월이 너무 버겁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 벌어야 할 돈들이 너무 크게 와닿아서 얼른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스트레스로 손이 떨리지도 않고, 출근 준비하는 화장대 앞에서 '오늘만 버티자'라고 나를 다독일 필요도 없고, 잠시 쉬었던 시간에 대해서 그 때 왜 쉬었느냐고 면접관들에게 질문공세를 당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다시 흘러, 이제는 그 때 고생했던 시절, 삽질들이 자양분이 되어 내 밥벌이를 수월하게 하는 것을 보면서 씁쓸할 뿐이다. 이렇게 힘들어야만, 그리고 매일을 전력질주해야 평범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지금에 대해. 그리고 내가 지금 밥벌이를 잘하고 있다고 해서, 앞으로의 평온한 삶이 절대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기분이다.


지금은, 내가 취업준비하던 시절이 코로나 시대에 비하면 '떨어질 기회라도 있던 시대'라고 불린다고 한다. 내게는 죽고싶었던 만큼 힘들었던 시기가, 또 그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시대다. 시작도 어렵고, 잠시 삐끗하면 그대로 경력단절로 이어지는 이 사회가 너무 무섭다. 코로나가 오든 홍수가 오든 태풍이 오든, 우리의 밥벌이는 계속되어야 하고, 출근 지하철에 몸을 맡긴다. 내 몫의 자리가 어딘가엔 있겠지.

 

마지막으로, 시간이 흐르면.

취업준비를 하던 당시, 무료표가 생겨 친구와 보게 되었던 뮤지컬에서 이 노래를 알게 되었고, 그 당시 굉장히 많이 들었던 노래다. 많은 가사 중에 이 노래를 지금까지도 기억하게 만드는 가사는 이 한 문장이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언제쯤 내가 원하는 날 만날까 


- 그 당시 그토록 만나보고 싶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지금의 내가.


https://youtu.be/MKjvTeWrU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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