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못하는, 작고 빠르게 시작하는 것에 대해.
회사를 다니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기다보니, 사이드 프로젝트에 대한 생각이 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사이드 프로젝트보다는 내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인데, 이게 참 어렵다. 사업을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잘 정리되지 않아, 내 사업의 WHY와 지금의 고민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내가 사업을 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써보자면,
- 더 이상 이직하고 싶은 회사가 없다. 서비스~상품, 스타트업~대기업까지 모두 겪고 보니 더 가고 싶은 곳은 없다.
- 그리고 평생 직장인으로 사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을 한다. 100세 시대에 정년 65세를 보장하는 직업이 몇 개나 있을 것이며, 특히 여성의 경우는 출산,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는 비중이 50%나 된다. 나 역시 앞으로의 5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 '나의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세상에 남는 것은 브랜드와 그 브랜드를 만든 사람이지 않나.
- 의미 있는 것을 만들고 싶다. 한 때 상품가격 500원을 낮출지 말지에 대해 서로 죽일듯 싸우기도 하면서 현타가 왔었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상품가 500원을 낮추는 것이, 우주로 로켓을 쏘는 21세기에 얼마나 유의미한 논의일까? 비누가 없는 인도 아이들을 위해 비누 성분을 합친 분필을 만든 Savlon. 이처럼 내가 이 세상에 있었음으로 인해, 세상에 긍정적이고 유의미한 영향력을 준 사람이 되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hVfLoKqS1o
- 이에 in-line하게, 구조적 문제를 보면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았던 엄마가 노후를 걱정할 때, 아이 돌볼 사람이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을 볼 때, 그리고 회사 생활이 힘들어도 gap year를 갖지 못해 무작정 버티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을 볼 때 사업으로써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 여성이 더 오래 일하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나 역시도 직업안정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WHY에 대해 생각하면 사업을 안 할 이유는 전혀 없고 내 사업을 해야만 하는데, 문제는 '사업'이라는 단어가 너무 큰 단어여서, 도무지 진전이 되지 않는거다. 회사일을 할 때는 타임라인에 맞춰서 일하는 것이 가능한데, 내 사업에 있어서는 타임라인이라는 것은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 나 혼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데드라인이 무의미하고,
- 설사 데드라인을 억지로 설정해서 마무리한다고 해도, 이 일은 단순히 해냈다(done)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잘 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번주 금요일까지 아이템 선정하기라는 데드라인을 정했어도, 이 아이템이 최선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 그 데드라인은 하염없이 밀리는 것이다.
린 스타트업, agile test & learn이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잘 알고, 회사 생활에서는 잘도 적용하는데, 내 일에서 못하고 있는 것이 우습기도 하다.
이런 고민을 내가 늘 머리가 막힐 때면 찾아가는 휘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사업을 하고자 하는 WHY는 위와 같고, 내가 해결하고 싶은 질문은 '내가 어떻게 하면 여성이 더 오래, 더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회가 될까?' 라는 이야기를 했다.
휘님은, 사업가에는 크게 2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1. '사업가'라는 직업을 원하기에, 풀고 싶은 문제 (아이템)은 수단일 뿐인 사람. (애완용품 시장이 크고 있고 돈이 될 것 같으니, 강아지를 키워본 적은 없어도 Pet 사업에 뛰어드는 사람)
2. 자기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중요했고, 사업은 그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일 뿐인 사람.
지금 나는 2번의 경우인 것 같다고 했다.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먼저 있고, 사업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고는 싶은데, 어려운 것은 내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비즈니스로 풀기에는 범위가 너무 크거나 비즈니스적으로 풀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이다. 가령 여성의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려면, 경력단절로 이어지기 쉬운 출산/육아를 직접 건드려야 하는데, 멋진 신세계 책처럼 기계에서 아이가 태어나도록 하거나 유치원을 설립해서 모든 아이를 케어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서는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모든 여성이 원하는 해결책일까? 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사람이 나처럼 '일하는 것이 곧 자아실현'이 아니며 그저 돈벌이의 의미로 일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모든 여성의 일자리'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맞나? 혹 마트에서 일하는 여성에게 매달 500만원의 돈이 들어온다면, 그 여성은 계속 마트에서 일할까? 그녀가 원하는 것은 돈이지 직업이 아니다. 사업은 마술 요술봉이 아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 줄 수도 없고, 모든 여성의 일자리에 대해 고민하는 순간 돈벌이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냥 500만원씩 돈을 입금해주기만 하면 해결될 것이고,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비즈니스의 문제가 아닌 정책의 문제가 된다.
사업이라는 것은 '문제'부터 잘게 쪼개고 쪼개서, 하나의 해결책으로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도록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사업을 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에 딸려오는 수많은 투두리스트 때문에 압도되고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하면서 시간만 흐를 수 있다. 휘님은 사업준비를 한다고 말하지 말고, 아이템을 찾고 있다고 말하라고 했다. 그러면 더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꾸까 대표님이 2년 동안 자신의 사비를 털어 진행했던 펜펜 프로젝트에 대해 알려주었다. 한국에서 쓰다 남은 볼펜들을 개발도상국에 보내주는 프로젝트였다. 그건 사업도 아니었고, 그냥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바로 액션으로 취했던 프로젝트였다. 나 역시도 정부가 몇 조를 부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사업으로 풀고 싶다고 할 것이 아니라 쪼개고 쪼개서 정말 특정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부터 시작을 하거나, 아니면 사업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라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든 책을 써서 여성이 조금 더 일하도록 영감을 주든 일단은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어렵게 생각이 들 때는 잘게 쪼개고 작게라도 시작해보는 것. 회사 일을 할 때는 명확히 보이던 것들이, 막상 내가 내 돈을 들여 사업을 시작한다고 생각하니 처음부터 완벽하게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 진전이 안 일어난다. 그럴 때는 빠르게 시작할 수 있는 사람과 동업을 하거나, 스스로 데드라인을 정하고 (잘게잘게 쪼개서 데드라인 정하기; 아이템 정하기를 언제까지 한다 등등) 일단 시작하기. 린 스타트업이라는 책에는 당신이 할 사업은 Plan A도, B도 아닌 무언가로 사업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열심히 아이템을 정하더라도, 결국에는 Plan A, B도 아닌 무언가를 하게 될테니, 일단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글로 써놓으면 참 쉬운데, 막상 내 일이 되니 너무 어렵다. 회사 일처럼 자기 사업 못하는 직장인의 고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