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da Dec 01. 2021

이직을 앞두고 '이게 옳은 선택일까?’ 고민한다면

특히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할 때 읽어보면 좋을 글

은행을 7년간 다니던 남편이 최근 스타트업에 붙었고 이직을 고민하다 결국 가지 않는 것을 택했는데, 옆에서 남편의 고민을 보면서 예전 첫 이직을 앞둔 내 모습을 보았다. 이직을 앞두고, 특히 그것이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처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이 글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는 커리어의 첫 시작을 한 중견기업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는 ‘마케터’로서의 커리어를 강조하기 위해 커리어의 시작이었던 중견기업을 이력서에 노출하고 있지는 않다.) 이 회사는 절대 망할 리 없지만 내 적성과 맞지 않았고 개인의 성장보다는 그 회사의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야만 했던 조직이었다. 6개월을 겨우 채워가는 시점부터 이직을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적은 금액이지만, 통장에 500만 원 정도 돈이 모이니까 돈도 의미 없고 의미 있는 일, 내가 행복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기도 했었다.)


고민하던 과정에서 한 스타트업으로부터 이직 제안을 받고, 이 불안정한 고용 시장에서 이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인가 며칠 밤을 새우며 고민했던 기억이 있다. 대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월마다 들어오는 명확한 돈과 망할 리 없는 회사, 어디 다닌다고 이름만 말하면 사람들이 알아주는 회사에서 월급이 줄어들지도 모르는 것과 회사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맞을까. 내가 이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지에 대해, 정답 없는 질문을 계속 던질 뿐이었다.

이 선택으로 얻게 되는 장점과 단점을 나열해놓고 하나씩 비교해보아도 각각의 선택에 장단점이 너무 명확해서 머리만 아플 뿐이었고, 미래를 보고 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각각의 선택에 따른 미래를 그려보아도 모든 것을 가정 위에 두고 그려놓은 미래는 그저 망상일 뿐이었다.


그때 내가 고민 과정에서 썼던 방법과, 이직 과정에서 얻게 된 내용을 정리해보자면,   


1. 죽기 직전의 나라면 어떤 선택을 후회할까?

고민의 과정에서 쓰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죽기 직전 할머니가 되어 과거를 회상한다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죽기 직전의 순간에, 지금 이 시점을 보면 어떤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까를 묻는 것이다.

“아 그때 한 번 재밌는 선택을 해볼걸.”

“아 그때 중견기업을 버텼어야 했는데.”

죽기 직전을 상상하면, 남들의 시선도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가 명확해진다. 나의 경우 남들의 시선 때문에, 혹은 월급 몇십만 원 차이 때문에 원하지 않던 일, 혹은 행복하지 않은 일로 내 대부분의 시간을 썼다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었다.


2. 옳은 선택은 없다.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될 뿐이다.

하지만 첫 번째 방법으로도 결정을 내리기엔 겁이 났는데, 그러다 드는 생각이 만약 그 선택으로 커리어가 꼬이거나 커리어가 끊겼다면 '그때 버틸걸'이라는 생각이 들고, 만약 그 회사가 잘되면 '이직할 걸'처럼 스타트업의 결과에 따라서 내 후회가 바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내가 접하게 된 문장 하나는,

'옳은 선택은 없다.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될 뿐이다.'였다. 그 선택으로 내 인생이 어떤 모습이 그려지는지에 달려있다는 생각이 들면, 내가 지금 이직이 옳은 선택이라는 것을 보여주겠다, 내가 이직해서 이 회사 키워보겠다 라고 되새길 뿐이었다. 나는 결국에는 이 문장을 믿고 첫 번째 이직을 하게 되었다.   


3. 그리고 내 인생을 좌지우지할 만한 선택은 없다는 것.

지금의 나에게도 지속적으로 하는 말이기도 한데, 물론 이직을 한 후에 내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상황 때문에 후회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직접 겪은 것은, 스타트업을 갔다고 내 선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혹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바로 잡을 기회는 내가 스스로 계속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이직을 고민할 만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커리어 방향성에 대해 계속 고민하던 사람일 것이고, 이직을 한 후에라도 계속 기회를 찾게 될 것이다.


이게 옳은 선택인지 묻는다면 사실 원하는 답을 얻기는 힘들고, 두려움에 빠지기 쉽다. 옳은 선택인지 묻는 대신, 나는 어떤 상황이 와도 옳은 선택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인가, 혹 옳지 못한 선택을 했을지라도 나는 다시 바로 잡을 수 있는 사람인가 라고 물어야 한다. 그리고 이직을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일에서 아쉬운 점이 뭔지 찾고, 그 아쉬운 점을 보완하려 하고 이직을 위해 이력서도 고치고 면접도 보는 과정 자체가 이미 그런 사람이라는 반증인 것이다.


실제로 나 역시도 밤잠을 설치며 고민한 끝에 스타트업에 갔지만, 1년 뒤 내가 생각지 못했던 변수로 다시 이직하게 되었다. 내가 중견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첫 이직을 할 때 다시 이직을 한다는 것은 내 상상의 범주에도 없던 일이었지만, 몇 번의 이직을 통해 얻은 것이 많은 지금 돌아와 생각해보면 그때 스타트업으로 갔던 것은 정말 '옳은 선택'이었다. 


4. 그리고 완벽한 파랑새는 없다는 것.

그리고 첫 이직일수록 이직에 대한 환상이 커지기 마련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 이상적인 직장은 없다. 내가 이직을 열망한 자리는 누군가의 퇴사 자리일 수 있듯, 누군가는 문제를 느끼고 떠난 조직이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첫 이직일수록 이직할 조직은 완벽할 것이란 상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어디든 이직을 하려 할 때 조금이라도 자신의 상상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 외 다른 장점이나 얻을 것이 명확하더라도 이직하지 않는 경우도 많은데, 어디든 완벽하기만 한 파랑새는 없다. 그냥 그때그때의 최선의 선택이 언젠가 길이 된다고 믿고, 처음 선택을 밀고 갈 때도 필요하다.


이처럼 이직은 한 번 하고 끝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해 나가야 한다는 것. 파랑새를 찾는 것이 이직이 아니라, 이직해가는 과정에서 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몇 번의 이직으로 얻게 된 몇 가지 문장들을 정리해보았다. 

이직은 '이직할 회사'가 아니라 '이번 선택이 옳은 선택이 아닐지라도, 계속 옳은 선택을 해나갈 자신'을 믿고 해야 한다고. 


하지만 여러 상황을 고려해보았을 때 남는 것 역시도 답이 될 수 있다. 남편은 결국 자신의 성향, 업무의 특성 등을 고려하여 남는 것, 그리고 지금의 회사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도 하나 확실한 것은, 이직을 고민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자신에 대해 조금은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