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으로 이직할 시 주의해야 할 점 1
마케터가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고려한다면, 주의해야 할 점 몇 가지를 알려주고 싶다. 첫 번째 주의사항은 ‘마케팅만 잘하면 될 거라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듯, 보통 마케터들은 '마케팅만 잘하면 이 브랜드 클 것 같은데 왜 못 하고 있지?'라는 질문을 하며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케팅을 잘 못해서, 광고를 잘 틀지 못해서 브랜드가 크지 못했다기보다, 사실은 그 스타트업은 자신이 가진 제약사항 하에서 최선의 선택들을 해왔던 경우가 많다. (마케팅의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비즈니스의 문제, 회사 자체의 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마케팅만 잘하면 될 거란 생각에 이직을 했다가, 실제로는 마케팅보다 마케팅을 하기 위한 사전 작업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수도 있다.
나 같은 경우는 다행히도 사전작업에 해당하는 일이 오히려 내가 즐겁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직을 통해 알게 되어 커리어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보통 많은 마케터들이 이런 일들을 하면서 마케터로서의 커리어가 꼬인다는 생각을 갖기도 한다. 브랜드 마케팅을 하기 위한 사전작업, 이 회사에서는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마케팅이라고 부르기에는 애매한 일들에 시간을 쏟게 되는데 사전작업에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의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다시 이직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직을 하면서, 마케팅만 잘하면 된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이 회사가 이렇게 플레이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대표가 나를 채용하면서 내게 기대했던 것은 ‘브랜드 캠페인을 잘하는 것’이었으나, 내가 입사 후 마케팅팀이 일하는 것을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은 '마케팅 활동할 때가 아닌데?'였다. 그 당시에는 광고를 잘 튼다고 할지라도, 광고로 올린 수요를 소화할 수 있는 생산 구조도 아니었고, 상품 종류는 너무 많아서 고객은 무엇을 골라야 할지 혼란스러워했고, 많은 상품을 관리하기 위해 인력 리소스는 낭비되고 있었고, 팀 내에서는 협업 프로세스가 갖춰지지 못해서 각자가 상품을 새로 런칭하고 그 상품을 각자가 마케팅하는 독립적인 프로세스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근 1년간 브랜드 캠페인을 할 수 있는 회사로 키우기 위해, 팀이 협력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팀을 조직화하고, 판매하고 있는 상품을 재정비하고, 마케팅 활동에 따라 생산 수량을 높일 수 있도록 생산팀과 업무를 맞춰나가고, 기존에 업무 프로세스 중 비효율적인 것을 없애는 등 사전작업에 시간을 쏟고 나서야 얼마의 광고를 틀어야 얼마의 매출액이 나는지 등의 계산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1년의 시간 동안에도 마케팅 활동을 진행하긴 했지만, 앞단의 것들이 자리를 잡고 나서야 브랜드의 key communication message를 논의하는 것이 매출액 상승에 의미가 생기고, 그동안 내가 다른 회사에서 해왔던 마케팅, 메시지에 따라서, 광고 소재에 따라 변화하는 마케팅 효과가 보이기 시작했고, 극적으로 매출이 뛰기 시작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brunch.co.kr/@236project/36
그렇다면 이직 시점에 대표에게 지금 마케팅할 상황이냐고 물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까?
답은 '아니다'이다. 대표가 지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이제 마케팅을 해야 할 때다 라고 명확히 파악한 후 마케팅 실무자를 데려오면 너무 좋겠지만, 그 앞단의 기반이 없는 회사에서는 쉽게 지금 회사의 문제점을 '마케팅 메시지를 못 뽑아서, 광고 미디어 믹스를 못 짜서' 등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마케팅보다는, 회사의 기반 하에서는 최고의 마케팅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는 마케터를 뽑지만 사실 그 스타트업에서 필요한 것은 그 앞단에 해당하는 마케팅을 하기 위한 ‘기초작업’ 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당신이 스타트업으로 이직할 때부터, 마케터 직무에 대해 지금 하는 일보다 더 광의로, '마케팅을 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스타트업 대표는 마케터를 영입할 때 적어도 자신의 스타트업보다 규모가 큰 곳, 기반이 닦인 곳에서 인재를 영입하길 원한다. 그 말은 당신은 제반이 잘 닦여있는 곳에서 마케팅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재고가 품절되면 재고 없음을 알려주는 프로세스가 세팅되어있고, 광고에 따라서 수요가 얼마나 늘지 이를 계산해주는 시스템도 있고, 그런 상황에서 마케팅을 해왔던 경우가 많은데 스타트업으로 이직하게 되면 자신이 누리던 그 제반 업무를 만드는 것부터 마케팅이 시작된다. 스타트업에서 당신을 영입하면서 이득을 보는 것 역시도 이런 프로세스를 아는 사람이 더 빨리, 더 잘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프로세스를 잘 아는 것과 그 프로세스를 제로 베이스에서 잘 적용까지 하는 것은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자신이 스타트업으로 간다면 그 업무부터 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걸 각오하고 가야 시행착오를 덜 겪게 된다.
그래서 이직을 앞둔 분들께
지금은 당연한 그 기반, 리소스가 없음에도 그 과정을 만들어나가는 마케팅부터 즐겁게 할 수 있다 판단된다면 스타트업 이직을 추천한다. 보통 스타트업으로 이직하시는 분들은 이렇게 될 상황을 예측조차 못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아서 '여기 마케팅할 상황이 아닌데?', '여기 이런 것도 없어요?' 등등의 질문만 하다가 다시 이직하시는 경우도 많아 이 글에서 알려주고 싶었다. '이게 없어서, 저게 없어서' 등등의 핑계가 생길 것 같다면 스타트업 이직은 한 번 더 고민해보시길 추천한다.
그리고 타 브랜드의 마케팅 활동을 함부로 평가하지도 말자. '마케팅만 잘하면 될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마케팅하고 있지?' 등등의 말은 쉽게 내뱉기에는 너무나 가볍다.
나 역시도 외부에서 우리 브랜드의 인스타그램을 보고 '짜친다'라는 표현을 들은 적이 있다. 외부에서 보기에는 인스타그램을 더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은데, 더 감도 높은 사진을 쓸 수 있는데 왜 저러지? 등의 아쉬운 부분을 이야기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를 평가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이다. 우리가 감도 높은 사진을 쓰지 못하는 그 배경에는 우리 역시 인스타그램 사진이 아쉽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인스타그램보다 더 중요한 업무가 있고, 인스타그램 사진의 감도를 어떻게 높일지에 대한 논의보다 당장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의사결정이 우선되고 있고, 회사가 마케팅팀을 매출액 달성이라는 과제를 수행하는 팀으로 정의하였고, 인스타그램을 따로 관리하는 인력을 채용할 수 없어 팀원이 퇴근길에 포스팅하는 것이 전부였던 등등의 회사 상황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짜친다'라는 평가를 했던 사람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비즈니스를 키워봤던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보기에는 인스타그램만 잘해도 나아질 것 같은데 등의 생각으로 그 말을 뱉었을 수는 있지만, 회사의 의사결정 및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나는 더 해주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그냥 저희가 부족하죠라고 말하고 넘길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 그냥 겉으로 보이는 상황에 기반해서 다른 브랜드의 마케팅 활동을 평가하는 것은 정말 쉽게 내뱉기에는 너무 가볍다.
이 글은 이직을 앞두고 자신의 성향에 대한 파악이나 각오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정말 이 회사가 마케팅만 잘하면 클 회사인지 아닌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현재 그 회사의 모습은 대표가 그동안 내려온 의사결정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스타트업 이직할 때 주의할 점 두 번째는 대표를 확인하자는 내용이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모든 기업은 대표의 그릇만큼 큰다는 생각을 한다. 실무자가 몇 개월 회사를 겪고 나면 회사의 문제점들, 빠르게 집중해야 할 과제들이 명확히 눈에 보이는데 반해 막상 대표가 회사의 현 상황, 문제의 심각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든 마케팅 앞단의 기반 없이 커왔다는 것에는 이를 문제 인식하지 못하든, 투자하지 않았던 회사의 의사결정과 맞물린 경우가 많다. 다음 글은 스타트업 이직 전 주의해야 할 두 번째 사항, ‘대표’에 대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