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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da Mar 06. 2022

그럼에도 다들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

이직을 여러 번 하며 나에 대해 알게 되고 나에게 맞는 곳을 찾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또 아이러니하게 많은 사람들이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에 대해.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첫 번째 이유는, Anchoring effect (닻 내리기 효과) 때문이다.

닻 내리기 효과는 배가 어느 지점에 닻을 내리면 그 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근처를 맴도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각인된 정보를 기준으로 판단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일컫는 말이다. 사람들이 어떤 판단을 하게 될 때 초기에 접한 정보에 집착해 합리적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행동경제학 용어다. 가령 처음 들어보는 나라의 인구가 몇 명일까?라는 질문에 누군가 5천 명이라고 말한 후에 다음 사람들이 말하는 숫자와, 누군가 100만 명이라고 말한 후에 다음 사람들이 말하는 숫자는 전혀 다르다. 이처럼 사람들은 처음 들었던 값에 근거해서 그 값의 주변으로 유추를 하게 된다.


첫 회사는 닻과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처음 접하는 회사의 모습이 단순히 이 회사의 특징이라고 받아 들 여지 기기 보다, 사회생활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회사 생활에 대한 기준이 되게 된다. 회사에서 일하는 태도, 일하는 강도, 생각하는 방식, 평균 연봉 등등. 첫 직장은 하나의 닻이 되어, 그 이후 완전히 새롭게 깨지는 경험이 없는 한 이를 깨기 어려워진다.

내가 첫 직장이 닻 역할을 했구나 하고 느꼈던 건 P&G에 와서 내가 가지고 있던 '일반적'이라고 이해했던 것들이 모두 무너질 때였다. P&G 전에 스타트업을 다닐 때에도 나는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했고 일을 제대로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P&G에 와서 그 이상을 해내는 사람들 사이에 속하게 되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이 큰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팅에서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다음 미팅에 들어오지 못하는 분위기, 미팅에서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 누구 하나 강요하지 않았으나 새벽까지 일하는 분위기, 일의 why를 묻느라 나를 극단까지 몰아붙이는 경험, 이처럼 내 기준 극단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내가 겪고 나서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안일하게 일을 대해왔는지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P&G는 결과에 대해 돈으로 보상하는 회사였는데, 그래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초년생은 이 정도 평균 연봉을 받는구나라고 생각했던 내 기준 또한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다. 


P&G를 겪으면서 내가 갖고 있던 닻 자체를 이동시킬 수 있던 기회를 가지게 되었는데, 분명한 건 내가 P&G를 겪지 않았다면 그 극단값 이전을 기준으로 살아갔을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를 깨닫게 되는 순간, 그리고 그걸 완전히 깰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놓는 것이 아니고서는 스스로 깨달을 수 조차 없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 때 왜 다들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사람은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어떤 회사를 첫 직장으로 삼는지가 당신의 가치관, 일의 태도, 연봉 등 당신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의식적 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에서의 나에 대한 평가까지도  회사는 하나의 닻이 되어버린다. 모든 회사들이 P&G처럼 내가 예전에 어떤 보상을 받았는지 상관없이, 회사의 연봉 테이블이 정해져 있어서 닻을 새롭게 이동시킬 경험을 제공해준다면 너무 좋겠지만, 보통 이직 시장은 그렇지 못하다. 많은 사람들은 나중에 이직을 하더라도 내가 첫 회사에서 받았던 보상을 기준으로 몇 %가 오르면 이직할 때 만족할 연봉이겠다 등을 결정하고, 새로 채용할 회사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거나  보상할 이유가 없다. 이 부분은 팀장이 되어 채용을 진행하면서, 연차도 비슷하고 실력도 비슷해 보이는데 자신이 어떤 회사를 경험해왔는지에 따라, 그래서 본인 스스로 '평균 연봉'이라는 것을 어떻게 인지 했느냐에 따라 연봉이 2 이상 차이 나는 사람들을 보며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두 번째 이유는, '초년생 때만 배울 수 있는 것' 때문이다.

팀장이 되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연차는 찼지만 일할 줄 모르는 사람들 또한 많이 보았다. 

스타트업에서 흔히 많이 그려지는 그림은, 초반에는 회사가 당장 일손이 부족하기에 막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을 대거 전환용 인턴이라는 이름으로 채용한다. 정직원이 되었지만, 인턴 때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하고, 인풋을 받지 못한 채로 주요 보직을 맡게 된다. 몇 년이 지나 회사가 더 큰 성장을 앞두고서 경력직을 대거 채용하면서 갈등이 발발한다. 그때 이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1) 체계에 대한 이해 부족 (왜 예전에 하던 대로 일을 하면 갈등이 발생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2) 그동안 일하던 방식의 무너짐이다. 예전에는 일이 되어간다는 그 사실 자체에 집중하다 보니, 더 효과적으로 더 효율적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서는 배운 적이 없으니 주먹구구로라도 일이 되다가, 다른 회사에서 트레이닝을 매일 받아 온 사람이 왜 일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는지 질문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된다. (물론 스타트업에서 잘 배워서 더 틀을 잘 깨면서 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체계가 있는 곳에서 일을 시작해서 (좋은 사수를 만나서) 일을 할 때는 누구에게 먼저 얼라인을 해야 하고, 어떤 순서로 일을 해야 하고 등등을 배운 사람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들이, 이 부분을 초년생 때 배우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먼 나라의 이야기인 것이다.


가령 비즈니스 매니지먼트를 함에 있어서 Plan - Execution - Review라는 3가지 단계를 거쳐서 해야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데, 그동안 이런 프로세스 없이 '그냥' 일을 하던 연차가 차 버린 사람에게는 '너와 내가 스타일이 다른 것뿐이다'라는 반응을 들었던 적도 있다. 그리고 뒤늦게 이걸 배워보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이미 오랜 시간 '그냥', '누가 요청해서' 등등의 이유로 일을 접근하던 사람이 이 내용을 접목하려고 노력하다 결국 손을 드는 것도 보았다.


어디서 체스 룰과 관련된 짤을 보았는데, 나도 체스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내가 겪었던 상황 또한 이와 비슷했다.

멍청한 사람과 논쟁하는 건 체스 룰을 모르는 사람이랑 체스하는 것과 같다. 상대방은 폰을 다섯 칸씩 움직여서 나이트를 잡고 있고 나는 그렇게 움직이면 안 된다고 말하는데 체스 실력으로 못 이기니까 룰 가지고 훈수 두는거봐랔ㅋㅋ 이러는 느낌


그래서 다들 첫 회사가 중요하다고 말하는지도 모르겠다. 입사하고 첫 3년이 중요하다, 그때 배운 걸로 평생 벌어먹는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 등등의 말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했다. 체계가 잡힌 곳에서 일을 한 후에 체계가 덜 잡힌 곳으로 가서 일하기는 쉽지만, 그 반대는 어렵다고.


그럼 내 첫 직장이 남들이 말하는 좋은 기업에서 시작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마다 좋은 기업의 기준은 다를 것인데, 내가 생각하는 좋은 직장의 기준은 '내가 배울 수 있는 좋은 사수가 있는가?'이다. 결국 내 주변에 보고 배울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기준으로 닻 내리기 효과가 발생하니까, 내가 입사한 회사가 스타트업이든 대기업이든 상관없이 성장할 수 있다면 그 회사는 좋은 회사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성장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내 옆에 그런 사수가 있다면 그 사수의 모든 것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하고, 만약에 사수가 없다면 커리어 초반일수록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란 쉽지 않아서, 회사 밖에서라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회사 안에서만 배울 수 있는 사람을 찾을 필요는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 내가 겪는 상황을 이야기하며 먼저 만나보자고 제안한다고 이를 무작정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다.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끊임없이 내가 어디에 닻을 무의식적으로 내리고 있었는지 깨닫는 과정을 가져야 한다.


이 글을 발행하는 것이 맞을까 고민이 되기도 하는데, 그래도 발행하는 이유는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알고는 있어야, 모르는 것보다는 내가 성장하고 있는지를 물어볼 기회를 스스로 더 자주 가질 수 있을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 번 자신의 위치, 자신의 방향성을 확인해보는 과정으로 이 글을 활용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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