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부족이다!
내 별명, 인간의 몸에 갇힌 고양이.(고양이 애호가분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 별명은 제가 붙인 게 아닙니다. 한 번만 눈 감아주세요.)
좋아하는 것이자 취미는 침대와 물아일체 되기, 흥미 있는 것에만 눈동자 굴리고 그 외에는 죽은 눈으로 바라보기- 등등
어찌 보면 밥도 먹고 스트레칭도 꾸준히 하고 그루밍도 하는 고양이가 나보다 나은 생명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진다.
그런 내가...... 클라이밍이란 걸 하러 왔단다. 이야 이거 엄청난 발전.
내 주변인들은 취미가 참 다양하다. 연극 & 뮤지컬 보기 / 수영 / 집에서 칵테일 만들기 / 요리하기 / 영화 감 상하고 무조건 감상평 쓰기 / 축구, 야구, 이것저것이러쿵저러쿵 너무 많다!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도파민 중독자라 넓은 범위의 활동에 흥미를 보이고 한 번씩 맛보는 걸 좋아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이미 그 활동이 취미인 지인과 함께 시도해 보는 것이 부담을 덜어주기 때문이다.
클라이밍도 위와 같은 경로로 시작하게 되었다. 솔직히 직접 몸 쓰는 행위 -운동이라던가 운동이라던가- 좋아하진 않는 편이라, 많은 고민이 있었고 실제로 클라이밍 장 앞에 섰을 때는 마치 극한 난이도의 게임 속 라스트 보스를 마주한 뉴비가 된 기분이라 집에 가고 싶었다. 정말로.
하지만 만날 때마다 클라이밍에 대해 언급할 때의 그녀의 눈빛.... 마치 양파쿵야의 알 수 없는 정의감이 깃든 눈빛 같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광기 찬 그 눈빛에 항복을 선언하며 내 발로 클라이밍 장에 왔단다.
만약 클라이밍을 처음 도전하기 전에 이 글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없을 것 같지만)
회색 + 아노락 소재의 상하의 추천한다. 홀드라고 하는 것을 잡고 위로 이동해야 하는 클라이밍 특성상 미끄러움을 방지하기 위해서 하얀 가루를 손에 잔뜩 묻혀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 가루가 온몸을 뒤덮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물론 물로 잘 지워지긴 하지만 묻어도 티가 안나는 회색, 그리고 툭툭 털면 가루가 잘 털어지는 재질의 옷을 입는다면 일석이조일 것이다.
나는 그저 편하게 입으면 되겠지 하는 마음에 흰색 상의 + 검은색 하의 + 천재질 세트를 입고 갔고, 결과 <올라프>가 되고 말았다.
클라이밍은 호흡이 짧은 게임과도 같아서, 각 난이도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머릿속으로 생각해 보고 몸으로 직접 헤쳐나간다는 데에 큰 재미 요소가 있다. 마치 RPG 게임 속 퀘스트를 직접 몸으로 헤쳐나가는 느낌이랄까?
게임을 하는 이유가 으레 그렇듯이 클라이밍 또한 한 단계 한 단계 헤쳐나가면서 얻는 쾌감이 좋았다. 나 자신이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았고 '다음엔 좀 더 높이, 좀 더 어려운 단계를' 생각하게 된다는 점에서 엄청난 긍정적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운동이라 생각한다.
왜 클라이밍을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하루였다.
그래서일까? 팔이 터질 거 같고 손에 물집이 잡힐 거 같은 기분을 느끼며 지하철을 탄 순간에도 다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어쩌면 <도파민 중독자>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운동을 찾은 걸 지도 모른다.
후다닥 다음을 권하는 지인과 약속을 잡았다.
다음은 송도다. 나는 또 어떤 땀을 흘릴 것인지- 그 형태에 긴장과 기대가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