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리뷰
수많은 매스컴의 홍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가 있다.
"000의 세계에 빠져들어보세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에는 이 문구가 빠지는 일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도 그럴 것이 그가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라는 특징이. 그리고 그의 세계관이 압도적인 새로움을 줬기 때문이다. 허나 이전 작품과 오늘 리뷰할 작품의 차이가 있다면 관객을 본인의 세계관에 접속시키는 형태와 관련 있을 것이다. 감독은 본인이 지금까지 그려온 '지브리'라는 세계를 작품 속 '탑'이라는 형태로 굉장히 직설적이게 표현했다. 그 탑의 주인은 아마 대부분의 이들이 생각하듯, 나 또한 하야오 자신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토리 #스포주의
스토리만 봤을 때 이 작품은 솔직히 어수선하다. 그것도 굉장히.
작품이 속에 등장하는 탑 속의 세계와 현실 세계에는 일종의 괴리감이 있다. 그렇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어느 세계에나 주인공 마히토의 적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현실의 적은 외부 상황이다. 전쟁으로 인한 어머니의 죽음, 급변하는 환경, 동기의 괴롭힘을 꼽을 수 있다. 탑 속 세계의 적은 형태와 시간 흐름에 따라 관계성에 변화가 생기기도 한다. 탑의 안내자 포지션인 왜가리가 적에서 친구로 변한 것이 대표적이다.
마히토가 적들을 견디거나 헤쳐나가며 새롭게 등장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고, 그 사이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의도치 않게 화면 속 미장센과 사물의 의미를 해석하려 드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다 보면 스토리 전개로 인해 머리가 당연히 아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영화가 관객에게 주는 메시지는 굉장히 또렷해서 스토리가 주는 감상과는 사뭇 모순적인 평을 내리게 된다.
내가 생각한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는 작품의 제목 그 자체이다.
'그대들(이 영화를 보고 있는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영화 속 탑과 인물을 통해 본인의 세계와 인생을 펼친 하야오의 행동을 반영해, 제목을 덫붙여보자면 정확하게는
'나는 이렇게 살았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가 된다.
실제로 유명한 일화이다. 뛰어난 상상력과 애니메이팅 기술을 가진 하야오지만, 후계자를 찾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아마 애니메이션 업계를 뛰어넘어 그에게 관심이 있는 자들은 모두 알고 있다.
이 작품은 그 부분에 대해서도 굉장히 직설적으로 담았다.
영화 속 하야오의 분신체처럼 표현되는 탑의 주인 큰할아버지는 마히토에게 자신의 후계자가 되어 돌 블록으로 탑을 쌓아 이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히토는 그 제안을 거절한다.
여기서 나오는 '돌 블록의 탑'은 하야오의 세계관(탑 속 세계)을 유지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도구이다. 아마 하야오는 이걸 통해 사람의 인생을 비유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을까.
마히토는 자신의 탑 쌓기를 큰할아버지가 만든 탑 속이 아닌 바깥에서 이루고자 한다. 탑 속에서는 선망받는 지위를 얻을 수 있지만, 인간 객체마다 원하는 욕망은 다르고 인생의 굴곡도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 속 하야오의 탑은 무너지고, 탑과 현실세계를 이어주던 왜가리는 마히토에게 저 안에서의 일을 잊으라고 말한다. 난 이 말에서 상쾌함과 동시에 약간의 서운함도 느꼈다. 잊으라니, 내 몇 십 년의 추억을 함께한 당신의 세계를 잊으라고? 그렇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우개로 지운듯한 잊음이 아니라, 마히토가 가져온 돌조각처럼 기억의 벽돌 한 조각으로 남을 따뜻함을 품은 채 나의 인생(탑 쌓기)을 이어가라는 의미였다고 생각한다.
내 등을 조심히 떠밀며, '나가라. 나가서 너의 탑을 쌓아라.'라고 말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