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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수 Jul 08. 2024

요즘 들은 가장 다정한 말

feat. 내게 한 말 아님

 동생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 중이라고 했다. 이미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서 관련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보다 공부하는 기간이 짧아져서 할 만하다고 다.


내가 웬  요양보호사 자격증이냐고 물으니 꼭 그 일을 하기 위함보다도 가족이 아플 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나는 나보다 윗세대인 부모님을 돌볼 때 그 자격증이 유용한 줄 알았지, 부부지간에도 해당된다는 것을 남편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남편과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남편에게 요양보호사 자격증에 대해 상냥하게 알려주더란다. 이거 따놓으면 배우자를 돌볼 때도 국가에서 지원금이 나온다고. 그러면서 남편더러 시간 있을 때 빨리 따놓으라고 재촉 아닌 재촉을 하더란다. 그 얘기를 듣던 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나 먼저 아픈 마누라 만들어 버리는 거야?'



 만약 우리 부부 둘 다 그 자격증을 땄다고 가정했을 때 그리고 가족 요양 급여를 국가로부터 받게 되었을 때 그 수급자가 누가 될까 상상해 본다. 돌봄을 받는 쪽이 나은가 요양 급여를 받는 쪽이 나은가? 아이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수준의 어려운 문제였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미리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단정할 일도 아니었다.



 

 어느 날 노부부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던져 준 제비 뽑기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쪽지에 '환자 역할' 또 다른 쪽지에는 '돌보는 역할'이라고 쓰여있었다. 환자 역할 쪽지를 뽑은 사람은 온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침대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며 배우자의 손길이 간절해진다. 젊은 시절 경제관념에 투철했던 '환자'는 요양 급여가 어느 정도 되는지 알고는 저거 덕분에 타먹는 건데 반띵 해야 하는 아녀? 하며 침을 흘리다가 이내 소리 없이 침을 삼킨다.



 돌보는 역할이 된 쪽은 팔을 걷어붙이고 아픈 배우자를 보살피는 데 사력을 다한다. 복지가 좋아져서  가족 돌보는 데도 국가에서 돈도 보태주니 얼마나 좋아! 그나마 다행으로 여기며 요양 급여가 들어오는 날짜를 떠올리며 달력을 힐끗 쳐다본다.



 중대한 일은 하늘에 달렸다고 했던가. 나의 역할이 또 남편의 역할이 어떤 것으로 정해지건 그것은 하늘이 던져비 뽑기 게임의 결과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여기기로 했다. 이래저래 결론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야 한다는 쪽으로 기우는 것인가. 제비 뽑기 게임 중에 '건강한 배우자와 사는 건강 노인'이라는 쪽지를 모든 사람들이 뽑기를!


 


 


 이론 수업을 마친 동생이 집 근처에, 이른바 노치원이라고 불리는 주간보호센터에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고 안부를 전해왔다. 주간 보호센터는 말 그대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유치원처럼 아침에 와서 시간을 보내고 오후에 집으로 돌아가니 질병의 정도가 아직 중증은 아닌 어르신들이 모인 곳이라고 했다. 그래도 어쨌든 보호 센터에 올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그 자격이라 함은 각종 노인성 질병에 '경증'이 붙는 것이었다.


  

 몇 년 전에 보육교사 가격증을 딴 경험이 있는 그녀는 이번에 갔다 온 노치원이 너무 좋았다며 그곳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아가씨적부터 나나 그 애나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각자의 아이를 잘 돌보고 서로의 조카를 예뻐했던 것은 오로지 핏줄의 힘이었다. 보육교사 자격증을 위해 실습을 나간 곳에서의 경험은 그녀에게 아이 돌보는 일은 역시 맞지 않다는 깨달음을 갖게 해 주었다. 넘쳐나는 아이들의 에너지를 감당하기가 벅찼다고 했다. 나는 일찌감치 이 일 저 일을 경험하고 너와 맞지 않는 일을 발견하는 것도 다행이라고 위로했다.



 이번에 그녀가 실습을 간 노치원은 에너지가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곳이었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면 조용하고 정적인, 마치 담담한 어조로 가득한 서정시 같은 분위기였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곳은 조용한 아이들이 모인 유치원 같았다고 했다. 요양 보호사들이 지시하는 과제를 묵묵히 수행하며 시끄럽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노치원생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들은 나이가 어찌 되었든 야자 하며 서로 반말을 고 할머니들은 얌전하게 앉아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머리가 하얀 어느 새침데기 여학생이 동생을 적잖이 당황시켰다고 한다. 똑같이 색칠하기 시간에 동생은 잔소리하는 선생님이 되었다. 어르신, 모자는 빨간색이고요, 여기 바지는 초록색이에요. 우산은 노란색이고요. 잠시 시큰둥하던 여학생은 '나 안 해!' 하며 크레용을 집어던졌다. 동생은 그 상황에 어찌해야 하나 얼음이 되어 버렸다. 다른 요양 보호사가 다가와서 '우리 ㅇㅇ이 하고 싶은 대로 해~' 하며 크레용을 집어 어르신 여학생에게 쥐어주고 동생에게 말했다.

"이런 분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두면 돼요."



 젊은 시절 꽤나 사회성이 좋았을 것으로 짐작되는 어느 할아버지는 반장처럼 이 친구 저 친구를 잔소리하고 참견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야 돼요? 한 할아버지 남학생이 동생에게 질문을 했다. 점선대로 그리기 시간이었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시범을 보여줘야 했다. 어르신 이렇게 하면 돼요. 동생이 시범을 보이자 반장 같은 남학생이 다정한 말투로 한마디 참견을 하더란다



"야! 그런 건 스스로 해봐야지. 그래야 치매가 낫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공부해야 치매가 빨리 낫는다고! 우리 얼른 치매 나아야지!"



  순간 웃음이 터질뻔한 것을 동생은 입술을 깨물고 참았다고 한다. 동생은 당시 어르신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그 상황을 전했는데 얼마나 흥미로웠을지 충분히 상상이 갔다. '치매 나아야지~'하는 말에 나는 폭소를 터뜨렸다. 열심히 공부하면  치매가 낫는다고 한 어르신은 너무도 멀쩡해 보여서 저런 분이 이곳에 왜 오셨을까 동생도 의아해했다고 한다. 치매를 마치 배탈, 감기처럼 표현하는 어르신의 목소리가 나는  다정하다고 느꼈다.



 보통 치매에 걸리면 증상이 점점 악화되는 것으로 사람들은 알고 있다. 조기에 발견하여 약물치료를 병행하면 호전이 된다고 어느 의학 칼럼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소수의 운 좋은 사람만이 누리는 혜택 같았다. 치매는 다른 질병보다도 더 절망적이고 온 가족을 불행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나쁜 X로 인식되어 있다. 그 주간보호센터에 온 (치매끼가 있는) 노치원생들은 <열심히 해야 치매 낫지!> 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반장의 말이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한마디가 되었을까.


  

 고치기 어려운 병에 걸린 환자 중 병을 이겨내고 꼭 나을 거라고 확신을 가진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훨씬 회복력이 좋았다고 한다. 그 반장 할아버지는 치매를 감기정도로 생각하며 빨리 나을 생각을 하시기에 더욱 호전이 되신 게 아닐까. 동생이 폭소는 못하고 미소를 띠고 서있자 그곳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가 한마디 하더란다.

"멀쩡해 보이시는 분도 있죠? 근데 어쨌든 진단을 받아서 여기에 오신 분들이세요."


"그리고 요양 보호사는 목소리도 씩씩하고 에너지가 넘쳐야 해요. 그래야 이 분들이 그 에너지를 받고 신이 나서 기분도 좋아지고 병도 더 호전되거든요." 



 어르신들의 산책 시간이 되었다. 여기서 동생은 또 한 번 재미있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보행기가 필요했는데 요양보호사나 복지사가 보행기를 펴주려고 하자 그 반장 할아버지가 나서서 친구들(?) 보행기를 열심히 펴주더란다. 꼭 시트콤 같은 장면에 동생은 큭큭거리며 웃음을 참았다고 한다. 조만간 그 어르신은 그 센터 퇴소하고 요양보호사다시 들어와도 되겠는걸? 나는 대답하며 또 웃음을 터뜨렸다.


 베스트셀러 작가 루이스 L. 헤긍정적인 마음, 그리고 긍정적인 확언 한마디가 삶을 바꾼다고 했다. 그곳의 노치원생들은 <열심히 해야 치매가 낫지>라며 잔소리를 가장한 확언을 해주고 보행기를 펴주는 다정한 노치원 친구를 뒀다.



 각자 진단을 받아서 같은 노치원 친구가 되었지만 조금 멀쩡해 보이는 친구의 따뜻한 잔소리가 그 어느 돌봄보다도 강력한 비타민이 되지 않았을까. 그 어르신들은 정말 운 좋은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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