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짜리 큰아이를 남겨 두고 여행을 하게 되었다. 여행을 가기 전부터 아이가 걱정되어 별의별 말도 안 되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내 일생에서 비행기를 타본 경험은 몇 번 없지만 비행기를 타야 하는 여행을 할 때마다 사고가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긴다. 이번 여행지는 유니버설 스튜디오 재팬에 가고 싶다는 작은 아이의 의견을 받아들여 일본으로 정했다.
여행지가 정해지면서 난 한 가지 걱정을 추가했다. 재수 없게 우리가 갔을 때 지진이라도 나면 어쩌지? 나이가 먹은 탓인지 '사고'가 날 것 같은 불안감이 앞선다. 물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여행을 하면서 걱정부터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3일 동안 혼자 집에 남겨질 큰아이 걱정, 비행기에 이상한 사람이 타서 심장을 쫄깃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지진 잘 나기로 알려진 일본에서의 날씨 걱정. 비가 오든 더워서 얼굴이 타든 그것은 문제 될 것이 아니었다. 여행을 가기 전 만난 절친은 내가 느끼는 불안감에 한술 더 떠서 보탰다.
- 그래서 어디로 가기로 했는데?
- 일본. 엔화가 싸졌다잖아. 멀지 않아서 좋고 또안전하잖아. 무엇보다 작은 애가 거기 테마파크에 가고 싶어 해.
내가 말한 안전의 의미는 치안과 관련한 것이었다.
- 안전? 일본이 안전해? 너 큰일 날 소리 한다. 원전 터진 지가 언젠데! 그거 해소되려면 아직 멀었단다.
- 사고 난 지역으로 가는 것도 아닌데 별 걱정을 다한다. 난 그것보다도 지진이 더 겁나. 너 예전에 일본에 선교활동 갔을 때 괜찮았어?
- 괜찮긴. 툭하면 흔들흔들. 심심하면 흔들흔들하더라. 큰 지진은 뉴스에 나오는 거고 작은 지진은 자주 생긴다고 보면 돼.
나는 이 친구가 여행지를 바꾸라는 뜻인지 잠시 헷갈렸다.
나는 홀로 끼니를 챙겨야 하는 큰아이를 위해 미역국과 닭죽을 끓여 1인분 반찬통에 담아 냉동실에 넣어놨다.
아이가 금방 꺼내기 쉽게 반찬통마다 라벨지에 음식이름을 적어 붙였다.
아이가 먹고 싶다는 양념게장도 잊지 않았다. 문득 이 아이가 내가 만들어 둔 음식을 다 먹을 때까지 나머지 세 식구가 무사히 집에 올 수 있을까, 주책맞은 생각을 한다.
코로나 핑계, 아이들 학원 일정 핑계에 여행이라는 것을 하도 오랜만에 해보니 집 밖을 나서서 새로운 곳으로 가는 것이 심리적으로 부담이 되었나 보다. 그 와중에 큰 녀석은 고3이라는 핑계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에 있기로 했다.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말이 속담처럼 다가왔다.
큰 아이가 정말 혼자가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 3인 녀석은 나중에 커서 사업을 하고 싶다며 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책을 제법 읽은 터였다. 다행이었다. 내년이면 성인이 될 아이에게 후견인이 되어 준다며 누군가가 접근한다면 나는 전혀 반갑지가 않을 것 같다. 큰 아이를 붙들고 얘기했다.
- 너, 이 집 매매가가 대충 어떻게 되는 줄 알지? 혹시 우리 여행 가서무슨 일 생기면 이 집은 네 거야.
- 뭔 소리야
- 너 어차피 내년이면 성인이니까 네가 알아서 스스로 재산관리해.식구들 여행 가서 잘못돼도 친척들 아무한테도 의지할 생각 말고 바로 변호사 찾아가.
- 회계사를 찾는 게 맞지 않나?
- 암튼, 네 재산을 지켜줄 전문가를 찾아. 믿을만한사람으로.
- 누가 들으면 한 1년 세계일주라도 하는 줄 알겠네.
아들은 구시렁대며 방으로 들어갔다.
쓸데없는 걱정을 해대서인지 여행 가기 전부터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원래 우리 식구 3명이 가기로 했었는데 나중에 한 명이 합류하게 되었다. 엄마도 같이 가면 어떻냐는 남편의 물음에 나는 시큰둥했다. 엄마라 함은 내 엄마가 아니라 자기네 엄마, 즉 나의 시어머니를 의미했다.
"엄마 경비는 엄마가 내는 걸로 하고."
남편이 덧붙였다.
" 명절 때 서울도 귀찮다고 안 올라오시는데 해외여행을 가시겠어?"
싫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난 시어머니를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다. 만약에 시어머니와 같이 사는 일이 생긴다면 깔끔쟁이 노인네가 나 때문에 고생을 하실게 뻔하다고, 그런 의미에서 합가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1인이다. 참!! 몇 년 전에 어머니와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또 있었다. 유자차를 마시려고 커피코트에 버튼을 눌러놓고 컵에 유자청 한 숟가락을 떠 넣고는 잠시 화장실에 갔다. 나와서 보니 그 깔끔쟁이 양반이 그 새를 못 참고 차를 다 마시고 놔둔 컵인지 아셨는지 유자차를 담아 놓은 컵을 소리소문 없이 씻어 건조대에 엎어 놓으셨다. 그때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랑은 같이 살면 안 되겠다.'
낼모려면 80이 다 되시는 분이 설마 해외여행을 가시겠다고? 이제는 늙어서 다 귀찮다며 아버님 제사나 명절 때 큰아들(남편의 형님) 집에도 발길을 끊으신 지가 수년째였다.자유 일정이 하루 포함된 패키지여행이라 첫날부터 극기훈련급의 일정이 예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