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표준 발음법에 어긋나는 여러 가지 발음 때문에 오해를 한 적이 종종 있었다. 이름 뒤에 '엄마'나 '아빠'라는 호칭이 따라오면 어머니는 마이웨이 방식으로 받침 하나를 추가하여 새로운 단어를 창조하는 동시에 편안한 발음을 추구하는 탁월한 재주를 지니셨다. 받침이 없는 누군가의 이름 끝글자에 니은이 붙어서 새로운 ㅇㅇ엄마가 되는 재미있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어머니의 손주 중 누군가의 이름이 '지하'라고 예를 들어 보자. 며느리가 되든 딸이 되든 그 아이의 엄마를 부를 때는 독특하게 '지하엄마'에서 > '지한엄마' 또는 '지한오마이'로 바뀐다는 것이다. '하'자에는 분명 받침이 없다. 지하라는 발음을 하게 되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채 마무리가 된다. 왠지 불편한 느낌이 있다. 사실 단어의 마지막 글자에 니은 받침이 있으면 발음이 한결 편해진다. 지한오마이, 시혼오마이, 하난 오마이, 미린 오마이, 유난 오마이, 채안 오마이, 유준 오마이.....
어머니는 이러한 불편함을 일찌감치 몸소 느낀 것일까. 문법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워도 이렇게 하면 말할 때 조금이라도 그 불편함을 줄이고자 수십 년째 한글 자음을 자유롭게 활용하신다. 어머니의 이러한 능력 덕분에 나는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시댁 조카 중에 '지하'라는 아이 외에 '지한'이라는 아이도 있나 보다 착각을 했었다.
시집을 오고 얼마 되지 않은 때 어머니는 '지한오마이가 이제는 음식 솜씨가 많이 늘었다.' 하시며 누군가를 칭찬을 하셨다. 지한 오마이는 누굴 말씀하시는 거지? 유치원을 다니던 귀염귀염한 내 시댁조카의 이름이 내 기억으로는 분명 지하가 맞는데 말이다. 당시 함께 있던 사람은 어머니와 나 둘 뿐이어서 지한오마이라는 사람이 동서 형님을 지칭하는 것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나중에 그것이 어머니 나름대로의 발음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나의 며느리용 닉네임도 그렇게 바뀌어 불리게 될 줄은 몰랐다. 큰 아이의 이름은 이 집안에서 정해진 돌림자를 따라 받침이 없는 글자로 끝났다. 나는 큰 아이가 태어난 후 ㅇㅇ 엄마가 아니라 ㅇㅇ + ㄴ 받침 오마이로 불렸다.
시댁에서는 어느 누구도 이것에 딴지를 걸 필요가 없었다. 이 집안 내에서 통용되는, 일종의 언어의 사회적 기능에는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와 동시에 이것은 내가 이 집안의 찐 며느리가 되기 전 '시어머니 언어 듣기 평가'의 1단계 과정이었다.
사실 발음뿐 아니라 어머니는 사물의 명칭을 당신 편한 대로 호칭하며 사람을 헷갈리게 할 때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어머니는 접시를 쟁반이라고 말했다. 쟁반을 달라고 말씀을 하시기에 싱크대 아래쪽 수납장을 열어 커다란 쟁반을 꺼내려하자 어머니는 '쟁반! 쟁반!' 하시며 상단의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셨다. 나는 '거 참, 희한하네, 허허' 하며 속으로 웃으며 '이 동네에서는 접시를 쟁반이라고도 하나?' 갸우뚱했다. 나는 접시 접시 쟁반 쟁반을 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신기하게도 쟁반이라는 단어도 니은 받침으로 끝났다.
'접시보다 쟁반 발음이 편하기는 하네. 편하네! 호호'
언어의 사회적 기능에는 아직 미숙한 동물이 된 나는 동서 형님의 댁에서 감탄을 한 적이 있었다. 형님 댁에서 모여 차례를 지내게 된 날이었다.
주방에서 우리는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또 '쟁반! 쟁반!' 하셨다. 나는 '또 저러시네', 하며 싱크대 가까이에 있는, 가끔 지한이로 이름이 바뀌는, 조카 뒤에서 저 아이가 과연 무엇을 꺼낼까 한걸음 물러나 지켜보고 있었다. 조카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어 장손주 미소와 함께 할머니게 드렸다.
나는 또 속으로 헐 하면서 역시 집안 장손이라 다르구나 생각했다. 후에 어머니 말씀 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어머니는 쟁반을 쟁반이라 부르지 않고 오봉이라고 불렀다. 그러니 쟁반이라 하면 알아서 접시로 새겨들으면 되는 문제였다.
그러다가 며칠 전 어머니와 통화를 할 때펜과 메모지를 준비해 놓고 적어가며 통화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건이 있었다. 어머니와의 통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내가 어제 휴대폰을 새로 샀다. 그런데 그것이 고장이 난 거라.
이 짧은 문장을 읽은 당신은 어떻게 이해했는가?
저 두 문장을 말씀하실 때까지 나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어머니가 다 말씀하실 때까지 듣고 있다가 그에 대한 반응을 하기 위함이었다.
아니 어제 산 새 휴대폰이 벌써 고장이 났다고? 나는 참 둔하게도 눈치가 없었다. 카톡의 오타는 잘도 이해하면서, 20년을 함께한 어머니의 언어 듣기 평가에서는 여전히 헤롱 대고 있었다. ㅇ떡 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왜 못 알아듣는가?
- 어머니, 새로 산 휴대폰이 하루 만에 고장이 났다고요?
- 야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그게 고장이 왜 나나? 전에 쓰던 휴대폰이 고장이 났다는 말이지!
어머니는 성격이 급하셔서 일단 휴대폰을 새로 산 것이 중요한 사건이기에 그 사건을 먼저 언급하신 것이다. 뒤에 따라오는 문장은 시간 적으로 이전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급하게 말씀하시다가 '그런데'라는 접속사를 사용하신 것 같다. 물론 어머니의 그런데라는 말은 '근데 왜냐면'이라는 말의 줄임말이었으리라. 시어머니 언어 듣기 평가의 고급 단계였다.
아직은 이 집안 며느리가 될 자질이 부족하구먼 스스로 자책하며 내가 어떻게 했어야 했는가 쓸데없는 머리를 굴렸다. 성격이 급한 어머니의 맞춤 며느리가 되려면 나도 같이 성격이 급한 며느리가 되어야 했다.
성격이 급한 어머니가 두 문장을 연달아 말씀하시기 전에 잽싸게 중간에 끼어들어, 마치 우싸인 볼트가 화장실에 뛰쳐가는 속도로 끼어들어
"왜요!!!"
라고 여쭈었어야 했다. 그러면 어머니의 문장이 한결 매끄럽게 다듬어질 테고 내가 엉뚱하게 해석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