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일부를 잃은 분에게 바칩니다.
얼마 전 친척 어르신의 안타까운 근황을 전해 들었다. 한쪽 발이 잘못되어 절단 수술을 받게 되셨다는 소식이었다. '절단'이라는 단어가 어쩌면 이토록 끔찍한 느낌을 생생하게 전해 주는지, 다른 단어로는 대체가 될 수 없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것의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 어떠한 에누리도 허용하지 않는, 언어라는 것은 참으로 냉정한 녀석이구나 느껴졌다. 어머니는 '끊었다'라는 표현을 하셨다. '느그 큰엄마 한쪽 발을 끊었다더라.' 하시는데 절단이라는 단어보다는 왠지 덜 끔찍하게 느껴지긴 했으나 이미 힘든 일을 겪으신 분에게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수술을 받기 전 그분은 눈물로 며칠을 보내셨다고 했다. 80년 가까이 함께 해온 내 신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간다는 슬픔과 요즘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불구'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절망감에 빠졌을 것이다. 또한 수술 후에 다가올 고통이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불편한 몸으로 남은 생을 살아갈 것에 대해 막막한 생각이 들으셨을 것이다. 나는 MBTI의 T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임에도 이러한 상황에서는 F의 성향이 쏟아져 나왔다. 그저 '슬프다'라는 단어만 떠올랐다. 그분의 고통을 공감하겠다는 말도 감히 입에 담으면 안 되었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다리 한쪽이 서늘하게 식어가는 것을 상상하는 순간 내 다리에도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정강이를 어루만졌다.
수술을 받으신 지 이제 두 달이 넘어가지만 아직도 다리 끝부분에서 전해오는 통증으로 잠을 못 이룬다고 하셨다. 명상 수업 중에 바디스캔이라는 것을 배운 적이 있었다. 바디스캔이란 신체의 각 부분에 집중하여 현재의 감각과 느낌을 인식하는 방법으로 내 신체의 모든 부분을 소중하게 느끼고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명상의 한 형태라고 배웠다.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누운 채 명상 지도사가 언급하는 신체 부위에 집중하는 시간 동안 나는 마음이 더욱 편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손가락에 집중해 봐, 발가락에 집중해 봐, 다리에 집중해 봐, 가슴에 집중해 봐, 발끝에 느껴지는 감각을 느껴봐'라며 내 신체 하나하나를 언급하며 그것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일이 과연 있을까. 나는 그 소중한 시간을 즐겼었다.
이렇게 명상에 푹 빠져있는 나오서는 문득 이 분의 경우에는 바디스캔 명상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까 궁금해졌다. 나의 신체 하나하나를 탐험하는 것도 그 온 사지가 온전하게 붙어 있을 때 가능한 즐거움 중 하나인가 나는 새삼스럽게 내 별 볼 일 없는 몸뚱이에 한없는 감사함을 느꼈다.
만약 귀한 신체 한쪽이 사라진 것에 대해 어떠한 멘트가 어울릴까 나는 고민해 보기로 했다. 물론 이러한 경우에는 '신체 일부를 잃은 환우를 위한 바디스캔'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그 대상을 한정지어야 할 것이다. 몸에 붙어서 끝까지 남아 보려고 사력을 다했던 발 한쪽에게 '졌잘싸'라는 응원을 보내고 싶다. 평생 커다란 몸집을 지탱하며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던 발에게 이제는 그 고생을 마치고 더 큰 생명을 위해 '떨어져 나가는' 희생을 맡게 되어 감사하다고 멘트를 전하고 싶다.
몇 날 며칠을 그분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던 어느 날 나는 요가 수업에서 울컥할 뻔한 일이 생겼다. 등을 대고 누워서 다리를 천장을 향해 쭉 뻗고 상체를 최대한 들어 올리는 동작을 하게 되었다. 아늑한 조명 아래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은 내 작은 맨발 두 개가 눈에 들어왔다.
'저 귀한 걸 잃으셨구나!'
발 양옆엔 굳은살이 배기고, 무슨 강박증인지 바짝바짝 깎아 새끼발가락엔 보일 듯 말 듯 짧은 발톱을 가진 내 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힘든 줄도 모르고 계속 그 자세를 버티고 있었다. 눈에 눈물이 고여서 떨어지려는 순간 강사는 다른 자세를 지시했다. 다행히 수업이 거의 끝날 무렵이어서 무거운 심정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나는 서둘러서 체육관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지친 기색을 느낄 새도 없이 내 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휴가를 맞아 어머니 댁에 방문했을 때 어머니는 그분의 상황을 전해주셨다. 부엌에서 어머니와 나는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머니는 당신의 손 윗 동서가 그러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을 안타까워하며 오래전 한쪽 눈을 실명했던 때를 떠올리셨다.
"나도 젊었을 때 눈 한쪽이 병신이 돼 가 이때까지 살았다. 처음에 한쪽눈 실명했을 때 몇 발자국 걷다가 넘어지고 몇 발자국 걷다가 넘어지고. 아이고, 그때 얼마나 고생을 했나 모른다."
나는 어미니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말을 건넸다.
"어머니, 그런데도 너무 잘 사셨어요. 불편하신데도 정말 열심히 잘 사셨어요."
나는 그분을 위한, 그분이 들었으면 하는, 그리고 그분처럼 발을 잃은 분에게 위로를 전하는 멘트를 써보고자 한다. 발이 아니더라도 어느 한 부분도 하찮지 않은 신체 일부를 잃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다. '발'이라고 말하는 부분을 각자 상황에 맞게 다른 신체 부위로 바꾸어 속으로 속삭여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