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면서 머릿속에서는 저글링이 시작됐다. 근사한 브런치 카페를 갈까 커피를 파는 프랜차이즈 빵집을 갈까 그냥 넓은 커피숖에 가서 계란이 곁들여진 샌드위치 종류를 하나 주문할까. 시간은 아침 11시를 훌쩍 넘어 12시를 향해 가고 있으니 때에 따른 식사 종류로는 브런치가 맞았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브런치라는 것은 나에게는 그저 소중한 친구와 일찍 만나 시간을 보낼 때 먹는, 테이블을 예쁘게 채워주고, 친구의 블로그나 인스타에 올릴만한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그저 분위기를 좋게 하는 일종의 콘텐츠에 불과했다. 몇 달 전 절친과 갔던 그 브런치 카페도 그랬다. 종업원이 안내하여 앉은자리에서 보이는 뷰는 좌측은 우리나라 최고 대형 병원 중 하나인 S의료원이, 우측에는 새로 지어진 지 얼마 안 되는 강남의 고급 아파트였다.
나는 친구와 자리에 앉으면서 병원 쪽을 가리키며 '이쪽이 병원뷰야. 흔치 않지.'라고 했고 친구는 그렇네라며 웃었다. 친구는 음식이 나오기 전 카페 내부를 돌아다니며 벽마다 예쁘게 장식된 커피잔 및 도자기 그릇을 핸드폰에 담으며 연실 감탄했다. '브런치'라는 것의 순기능이 잘 적용된 순간이었다. SNS를 하지 않는 나는 그녀가 찍은 사진을 전송받아 간직했다.
아침부터 샌드위치 같은 빵종류가 먹고 싶을 때도 간혹 있었다. 그때는 내 몸의 컨디션이 아주 좋을 때 이야기이고, 보통은 내 혈당에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을 먼저 생각한다.
나는 집 근처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역과 연결되는 주상 복합 오피스텔 건물의 지하에는 음식점 여러 개와 마트가 있다. 평일 점심때쯤 돌돌 말아 똑딱이 단추를 채운 장바구니를 옆구리에 끼고 식당들을 거쳐 마트로 걸아가는 동안 부지런히 근처 사무실에서 나온 손님으로 식당칸의 좌석은 드문드문 채워져 있었다. 장보기를 마친 후 한쪽 팔에 뚱뚱해진 장바구니를 걸치고 다시 그곳을 지날 때는 그새 가득 찬 좌석 옆에서 자리를 기다리며 서있는 사람들로 통로가 북적였다. 그 사람들 옆을 지나갈 때 옆으로 몸을 틀어 통로를 나오게 된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근처 회사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였다. 건물에 들어선 커피숖에도 식사를 마친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문제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이다. 나는 입천장이 데일 정도로 따끈한 무언가가 먹고 싶었다. 그 따끈한 것에 국물이 있으면 더욱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당가에 들어서서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평일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곳이 주말이라 고요했다. 그곳에 위치한 마트도 법정 공휴일이라 주변은 더욱 어둡게 느껴졌다. 주말에는 주변 회사가 쉬니까 식당도 쉬는 곳이 많았다. 두 바퀴 정도를 돌다가 처음 돌 때도 지나쳤던 어느 식당 앞에 멈췄다. 문을 연 식당은 그곳 한 곳뿐이었다. 손님이 한 명 식사를 하고 있었다. 메뉴판에는 된장찌개, 순두부찌개, 청국장 등의 한식과 떡국, 칼국수 같은 분식도 있었다. 출입문이 따로 없는, 파티션 칸막이가 쳐진 식당이라 나는 파티션 밖에서 큼직하게 쓰여있는 메뉴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눈에 띄는 메뉴가 있었다. 돌솥비빔밥이었다. 돌솥비빔밥 정도면 뜨거운 것으로는 따라올 메뉴가 없었다. 나는 두 개의 파티션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돌솥 비빔밥 돼요?" "그럼, 되죠. 테이블 치워 줄 테니까 아무 데나 앉으세요." 일요일 아침부터 식사를 하러 온 손님이 꽤 있었나 보다. 나는 일요일에도 일찍 나와 장사를 하시는 식당 사장님이 너무 고마웠다. 귀인이 따로 있나. 따끈한 것을 찾아 헤맬 때 오아시스처럼 홀로 문을 연 식당이, 그리고 그 식당의 사장님이 귀인이었다. 사장님은 테이블의 그릇을 치우면서 냉면 그릇에 담긴 하얀 무언가를 마셨다.
"이거 막걸리 아니야, 우유야 우유. 건강을 생각해서 우유를 마셔야 하는데 깜빡하고 먹어지지가 않아"
술을 마시며 영업을 하는 것으로 오해한다고 생각했는지 사장님은 묻지도 않은 것을 미리 일러주었다. 막걸리면 어때요! 나는 대꾸를 하려다가 그만두고 컵에 조용히 물을 따랐다.
60대 초중반쯤으로 보이는 사장님은 상냥하면서도 밝았다. 그런 성격이니 주말이라고 굳이 쉬지 않고 나와서 장사를 하시는 모양이었다. 테이블을 재빨리 치운 후 야채를 볶기 시작했다. 비좁은 식당이라 큼직한 업소용 가스레인지가 테이블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불쑥 나와있었다. 자연히 조리를 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다. 아마도 야채를 먼저 볶고 (야채는 이미 조리가 된 것이어서 살짝 데운다는 것이 맞았다) 달궈진 돌솥에 밥과 따뜻해진 야채를 올리고 뜨겁게 데우는 것 같았다.
돌솥의 밥이 뜨거워지는 동안 사장님은 세 종류의 반찬을 가져다주었다. 돌솥이 꽤 뜨거워졌다고 생각될 무렵 치익 소리를 내며 프라이팬에 계란을 하나 깨서 올렸다. 손님 두 팀이 더 들어와서 자리를 채웠다.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게 얼마만인가. 나는 미혼 시절인 2000년대 초반에도 혼밥을 즐겼었다. 당시에는 혼밥이라는 명칭은 존재하지 않았다. 혼자 밥을 먹는 사람은 언제나 있었을 텐데 새삼스럽게 언제부터인가 그런 신조어가 생겨났다. 영업 사원들이 외근을 나가고 종종 혼자 사무실을 지키는 때가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바깥바람도 쐘 겸 사무실 전화기를 내 휴대폰으로 착신 전환하고 나가서 점심을 사 먹었다. 그때도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사무실을 나섰다. 나쁘지 않은 고민이었다.
사장님이 지글지글 소리가 나는 돌솥을 내 테이블에 놓았다.
"수저 여기에 있어요."
그러면서 테이블 밑에 숨겨진 작은 서랍을 쭉 뺐다. 나는 돌솥 바닥에 밥이 눌어붙어 노릇노릇해지는 모양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돌솥에 담긴 밥을 얼마 만에 먹어보나. 이 뜨거운 것을. 뭔가 감격스러운 순간이 온 것처럼 나는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었다. 영혼을 위한 치킨수프가 아니라 영혼을 위한 돌솥비빔밥이다.
힐링센터의 명상 시간에 명상 지도자가 말했다.
'우리의 몸은 영혼과 연결되어 있어요.'
가슴속이 뜨거워지는 동안 추위에 노출되었던 내 영혼도 따뜻해질까 기대하며 나는 숟가락을 들어 맨 위에 올려진 달걀 프라이를 쪼개가며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