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솥에 손이 닿지 않게 조심하며 밥과 그 위에 올려진 몇 가지나물 그리고 계란프라이를 뭉개가며 비비기 시작했다. 입천장은 데어도 좋으나 손은 아니다.
돌솥 바닥까지 벅벅 긁어가며 재료를 비비는데 그 옛날 내 돌솥에 들러붙은 누룽지를 긁어 주던 그가 문득 떠올랐다.
돌솥밥이라는 것을 처음 먹어본 때는 96년도 내 나이 20대 초반 때였다. 나는 어느 정수기 회사의 영업지점에서 아르바이트 사원으로 입사를 했다.
그곳에서 지사장인지 지점장인지 하는 분의 비서를 하게 되었다. 말이 좋아 비서지 그저 영업사원들이나 내가 모시는 높은 분의 잔심부름을 하는 일명 커피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았다.
하긴 내가 비서나 경리업무에 대해 교육을 받은 상고 출신도 아니고 대학에 떨어지고 마냥 놀고 있을 수는 없으니, 길을 가다가 쓱 집어온 벼룩시장에서 경력무관이라고 쓰여있는, 아무 회사처럼 보이는 직장에 지원을 한 것이 일 좀 해보라며 운 좋게 붙었는데,지금 나도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나 같은 애한테 커피 심부름 말고 제대로 시킬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다.
초봉은 60만 원이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근무를 하고온갖잡무가 내 할 일이었다. 근로 계약서라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정수기 회사다 보니업소용 정수기를 구매한고객의 식당에서 회식을 하는 것은 유일하게 즐거운 일과 중 하나였다.
한 번은 횟집에서 회식을 하게 되었다. 그 식당의 사장이 식당을 오픈하면서 정수기를 여러 대 구매한 케이스였다. 나이는 서른이 넘지 않게 보이는 젊은 여사장이었다. 식당은 룸으로 된 공간이 몇 개 있는 꽤 넓은 식당이었다. 큰길에서 산 쪽으로 조금 올라가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 공기도 좋았다.
젊은 여사장은 싹싹한 말투로 필요한 거 있으면얘기를 하라고 했다. 여사장이 나가고 옆에 앉아 있던 미스김 언니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기 사장 말이야. 엄청 젊지? 저 여자 어떤 돈 많은 늙은이 이거래."
언니는 새끼손가락을 까딱이며 내게 보여줬다.
"그 늙은이가 이거 차려준 거라잖아."
언니가 턱으로 크게 한 바퀴 원을 그리며 가게 내부를 가리키는 시늉을 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못생긴 게 복도 많아."
식당을 차려줄 만한 늙은이를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나 생각하며 나는 테이블에 차려진 서비스 회 종류를 집어 먹었다. 고객의 업소에 감사하는 의미로 식사를 하러 온 자리이니 지점장은(지점장인지 지사장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제부터 지점장으로 정하기로 한다) 회를 종류별로 한상 거하게 시켰다.
테이블에 음식들이 다 차려지고 식사를 제대로 시작할 참이었다. 그 여사장은 갑자기 직원들 사이에 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그러면서 젓가락으로 회를 이것저것 집어 먹었다. 마치 신선도를 테스트하듯이, 기미 상궁이 음식에 나쁜 것이라도 있을까 미리 먹어보듯이. 젓가락질은 거침이 없었다.직원들도 저 여사장의 시식이 끝날 때까지 수저를 들면 안 되는 것처럼 경건하게 있었다.
손님과 한 테이블에서 같이 음식을 먹는 것이 꽤나 자연스럽게 보였다.
지점장님은 우리 땡사장님이 애교가 많아서 장사가 잘될 것이라고 말했다.식사가 끝나고 언니들과 식당을 나왔다. 운전을 하는 사람들도 같이 술을 마셔서 차를 가지고 온 직원들은 차를 그곳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해산을 했다.
식당의 마당을 가로지를 때 뒤에서 우리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언니들! 언니들!"
우리는 뒤를 돌아다봤다.
그 여사장이었다.
"언니들 여기서 한참 걸어가야 하잖아. 우리 차 타고 가"
다른 직원들도 횟집 직원이 차에 태워서 큰길이 있는 곳까지 데려다준 모양이었다.
우리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그녀가 안내하는 승용차에 올랐다.
잘 비벼진 돌솥비빔밥은 여전히 치익 하며 바닥이 눌어붙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따뜻한 음식이란 소소한 풍요와도 같았다.
예전에 빈센드 반고흐에 관한 글을 읽다가 메모광인 그가 일기에 썼다는 내용을 읽고 울컥한 적이 있었다.
[요즘에는 따뜻한 음식을 통 먹지 못했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얼마나 눈물이 났는지.
나는 밥을한 숟가락 알맞게 떠서 후하고 몇 번 불다가 입안에 넣었다. 그 뜨거움에 진짜로 입안이 델까 봐 나는 물을 한 모금 재빨리 마셨다. 그리고 속으로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