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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살에 보는 면접이란

by 이지수

늙은이 취급을 제대로 받는다.


물론 직종마다 다르다.


몇 달 전 청소일을 하려고 어린이집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그곳의 원장선생님은 나를 엄청 열심히 사는 엄마, 커리어 우먼으로 추켜세웠다. 사람들이 얘기하는, 기업의 잘못된 면접 과정 중 하나는 면접자리에서 '내일 출근 가능하세요?'라며 합격 통보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술 더 떠서 면접을 본 자리에서 범죄 사실 여부 조회를 거치고 일사천리로 근로계약서까지 쓰게 되었다. 그때는 원장님이 인품이 좋고 훌륭하신 분이라고 여겼다. 그것은 내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


사람이 좋으신 분인 건 맞는데 청소부나 조리사나 일의 특성상 이직률이 높은 직종의 직원에게는 더욱 잘 대해주며 오래 붙잡아 두려는 노력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계약서의 빈칸을 채우는 나의 손을 보고 원장님은 "손도 어쩌면 그렇게 고우세요?" 했고 나는 '청소하다가 다 망가지겠지요?'라고 속으로 대답했다.


희망차게 시작한 청소부일은 3개월을 채우고 퇴직했다.

(청소부도 1년 정도는 해보고자 다짐했지만 퇴직까지 복합적인 사유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쓰려는 짧은 소설에 써보기로 한다)




요즘은 내가 이직하고자 하는 일자리에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다. 상담 관련 업무이고 30대가 가장 많이 입직을 한다고 했다. 40대에 입직을 하는 사람도 많지는 않다고 한다. 내 나이가 되어서 신입은 거의 찾기 힘들다고 봐야겠다.


만약 내가 면접을 본 곳 중 어느 한 군데에서 합격 통보를 받는다면 내 운빨이 제대로 통했다고 나는 믿으련다.


십여 군데 이력서를 냈고 드디어 면접 일정이 잡혔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말이 이렇게 기쁠 일인지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 오랜만에 보는 회사 면접이었다. 청소부 면접과는 당연히 차원이 달랐다. 청소부 면접이야 말 잘 듣고 건강하게 일할사람이면 ok일 것이다. 유튜브의 면접 관련 영상에서 보듯 동료와의 갈등이니, 잘 해냈던 성과 경험, 실패했던 경험? 이런 것들은 개나 줘버려도 된다.



상담사로서의 첫 면접은 기대와는 달리 면접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굴욕만 당한 날이었다. 면접은 이력서부터 시작한다는 유명 면접관의 말이 무색하게 이력서 따로 면접 때 대답한 내용이 따로 놀았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면접 컨설팅까지 받나 보다.


면접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중에 나보다 나이가 많아 보이는 여성 면접관이 나에게 물었다. "한글 프로그램은 어디까지 사용해 보셨어요?" 나는 순간 당황해서 뭐라고 답해야 할지 망설였다. 한글 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질문을 받는 자체가 좀 민망스러웠다. 상담과 행정 업무를 해야 하는 직종에 지원을 하면서 남들 다 할 줄 아는 컴퓨터 사용 능력에 대해 언급을 하는 것이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안이함 때문에 면접에서 이런 질문까지 나오고 말았다.



이력서에 사용 가능한 오피스 프로그램에 대해 상세하게 기술하지 않은 내 불찰이 컸다.

'나를 무슨 오지마을에서 호롱불 피우고 살다 온 아줌마로 취급하네!'

이력서에도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했고 신입 직원을 위한 교육도 진행했다고 기술이 되어있는데 그동안 오피스 프로그램도 안 써봤을까!

"음... 다 사용 가능합니다."

이런 바보 같은 대답이 다 있을까...



면접 때 분위기가 좋아도 합격 연락이 안 오는 판에 그날 면접은 분위기도 별로 좋지 않았으니... 결과는 뻔했다.



집에 와서 컴퓨터의 이력서를 열었다.

컴퓨터 사용 능력란에 커서를 대고 탁탁탁 입력을 시작했다.


오피스프로그램

한글, 엑셀

상!!!

PPT 프로그램 사용 능력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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