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감 따라 노동하러 감. 에헤라디야~

by 쓰는수 이지수

내가 촉이 좋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무언가 중요한 그리고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는 특별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


작년부터 이직 준비로 정신이 없었다. 공통점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서로 다른 직종의 일자리를 두고 갈팡질팡 하고 있었다. 조용하고 깨끗한 사무실 그리고 시끄럽고 정신없는 조리실. 달라도 너무 달랐다.


특히 스트레스의 양상이 다르다는 것이 내가 고민하는 여러 가지 것들 중 하나였다. 사무실에서의 근무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가 있고 조리실에서의 근무, 이른바 그곳에서의 노동은 사람 스트레스는 거의 없고 밀려오는 일거리를 내 체력으로 소화할 수 있는가,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육체적 고됨을 견뎌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일 것이다.


누구나 더 마음이 갈 만한 깔끔한 사무실 근무가 난 이상하게 내키지가 않았다. 그곳으로의 출근이 확정되었을 때 처음엔 '이제는 반지도 끼고 귀걸이도 하고 예쁘게 하고 다녀야지! 매니큐어를 발라도 되네!' 하며 꿈에 부풀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그 감정은 사라지고 왠지 모를 걱정에 휩싸였다. 이 사업이 길게 갈까, 내가 이곳에서 살아남을까 하는.



난 내 직감을 따라 조리실로 향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는 공간이며 사람들과 말을 많이 섞을 필요 없이 묵묵히 내 할 일만 하면 스트레스도 거의 없는 곳. 게다가 요가를 하며 근력이 좋아졌는지 예전엔 엄두도 못 냈던 몸 쓰는 일이 별로 힘들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노인복지관 조리실에서 일할 때 위생모에 전투복 같은 방수 앞치마를 두르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매일 아침 머리카락을 가다듬어 위생모 속에 쏙 넣고 결의에 찬 듯 앞치마의 허리끈을 힘을 주어 동여맨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뽀샵처리라도 된 듯 반듯한 매무새에 나도 모르게 씩 미소가 나왔다. 나는 밥 당번이었던 터라 창고에 보관 중인 쌀자루를 어깨에 짊어지고 룰루랄라 조리실로 돌아오는 길이면 "이 정도는 껌이지~"라는 생각이 절로 났다.


진짜 전투복처럼(?) 질긴 정육점 앞치마(!)는 내가 조리실에서 질긴 넝쿨 같은 생명력을 발휘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갖게 했다.


정신없는 노동에 내 몸을 맡길 때면 잡념이 싹 사라지는 곳. 나는 그렇게 경기도의 어느 병원에서 세척파트, 즉 설거지 담당을 시작으로 조리실 종사자로서 50대를 보내보고자 마음먹었다.



나를 예쁘게 포장하여 회사 인사 담당자에게 추천을 해주었던 지인분과 통화를 하게 되었다. 새해 인사겸 안부 통화였다. 그 지인은 회사가 곧 폐업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근무한 지 오래되지 않은 직원들은 속상해서 울음을 터뜨리고 사무실 분위기가 엉망이 되었다고 했다.



"쌤 여기 안오길 잘했어. 괜히 여기 왔으면 어쩔뻔했어! 나도 추워서 출퇴근하기가 힘들었는데 잠깐 실업급여 타면서 이사 준비나 하면 편하지 뭐."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인생이 좀 쓰네. 알 수 없는 한탄이 입 밖으로 나왔다.


내가 느낀 그 직감이라는 것은 과연 촉일까? 젊은 시절의 커리어가 나이에 밀려 더 이상의 경력도 별로 쓸모가 없어지는 기로에 섰을 때 그저 중년 아줌마로서 현실파악, 아니 주제파악을 제대로 한 것은 아닐까?


이제는 직장에서 내가 다른 이들에게 들어야 하는 호칭은 '쌤'에서 '여사님'이 되었다.


간혹 내게 ㅇㅇ씨라고 부르는 이도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했다.


이곳에서 점심 식수는 직원 포함 400명 가까이 된다고 했다. 내가 근무하던 복지관에 비해 세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첫날 점심 식사 후 조리실장님이 내게 커피를 건네며 일에 대한 이야기, 앞으로 잘해보자며 격려를 해주셨다.


"이 병원에 직원이 그렇게나 많아요? 그럼, 식판 400개 문질러요?"

"식판 개수는 200개 정도고, 400번 문질러야지."

"아... 네...."

그리고 나는 속으로 되뇐다.


' 그 정돈 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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