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궂은 날씨가 아니라면 직장에 다니지 않는 엄마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삼삼오오 놀이터로 나왔다. 저녁때가 되면 누가 '모이자!'하고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하루 일과를 마친 후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게 하고 엄마들끼리는 수다를 떠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놀이터는 이곳에 처음 지어졌을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놀이터가 언제부터 이 모양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그럴 것이다. 발이 푹푹 빠지도록 쏟아부은 모래밭은 아이들이 어디에서 놀았는지를 숨기지 못하게 하는 정직의 재료가 되었다.
아이들이야 모래밭에 퍼져 않아 놀기도 하지만 엄마들은 그 모래밭을 지날 때 신발 속에 모래가 들어가지 않게 살살 걸으며 아이들을 따라다녔다. 정사각형의 보도블록은 놀이터의 중앙을 가로질러 엄마들이 그나마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 옛날 땅속에 반듯하게 자리했을 돌다리는 세월의 풍파에 맞서며 모래 위에서 흔들흔들거렸다.
여기저기 녹이 안 쓴 곳이 없을 정도로 노후된 놀이기구들은 삐걱삐걱 소리가 나면서도 용케 돌아가기는 잘 돌아가고 굴러갔다. 한쪽에 자리한 직선의 미끄럼틀만이 수십 년간 엉덩이들이 문지르는 덕에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났다.
아줌마의 다리근력을 발휘여야만 탈 수 있는 시소는 아무래도 인기가 없었다. 시소 주변에 무성하게 뻗어 올라온 잡초와 풀들이 그것을 말해주었다. 늪으로 가라앉는 통나무처럼 시소는 땅속으로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아이가 그것을 타고 싶어 할 때는 어른이 한쪽에 앉아서 다리에 잔뜩 힘을 주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일어났다 앉았다를 반복해야 했다. 없던 종아리 근육도 생길 판이었다. 엉덩이가 아프지 말라고 시소 끝부분에 심어 놓은 타이어는 땅속으로 꺼져 들어가서 조심하지 않으면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는 수준이었다.
그 어떤 놀이기구도 색이 칠해진 것은 없었다. 앞으로도 색이 입혀질 이유나 동기는 생기지 않을 것은 분명했다. 놀이터는 완벽하게 흑백이었다. 통장이 가벼운 공무원들이 이 아파트를 거치며 한 시절 든든하고 안락한 생활을 보내는 동안 그들의 자녀들은 이곳을 거치며 수많은 엉덩이 자국을 남겼다.
뱅뱅이가 삐걱삐걱 돌아가는 소리, 끽끽 그네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에 서서 그녀의 두 아이가 뛰노는 것을 확인한 지수는 거실로 돌아와서 머리를 질끈 묶었다. 옥션에서 저렴이 옷을 파는 땡땡이모한테서 1+1로 산 치마바지를 걸치고 놀이터로 향했다.
작은 아이 다원이는 엄마를 보자 신이 나서 달려왔다.
"시소 타자."
지수는 시소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무성한 풀 속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쇳덩어리에는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았다.
"지지, 지지. 먼지 구덩이야. "
아이는 조심조심 그쪽으로 다가갔다. 풀 속에 벌레라도 발견한 모양이었다. 지수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가만히 서있던 아이는 갑자기 '꺄악!' 비명을 지르며 옴짝달싹 못한 채 울부짖었다. 놀란 애엄마는 쇳덩어리 쪽으로 잽싸게 달려갔다. 아이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번쩍 들어 올려 풀밭에서 빠져나왔다.
아이가 입은 무릎길이의 반바지와 종아리에 개미가 몇 마리 붙어있는 것이 보였다. 바지를 벗겨보니 개미들은 벌써 팬티 안쪽까지 들어와 있었다.
"지지라고 했잖아."
지수는 조용히 다그치며 툭툭 개미들을 털어냈다.
공교롭게도 아이는 개미집 위를 밟은 듯했다. 집이 무너져라 쿵쿵거리는 거대한 물체에 공격 개시! 가 떨어졌다. 그 개미들은 조금씩 사라지는 건물들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다른 새로운 곳으로 단체 이주를 했을까. 기세등등한 건물주처럼 그것들은 지하에 거대한 도시를 짓고 긴 세월을 터줏대감으로 지냈다. 나무가 잘려 나가기 전, 거대 도시 위 쇳덩어리들이 뽑히는 것을 느끼기 전 그들은 부지런히 그곳을 떠났다. 땅 위의 인간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수는 아이들에게 소리를 쳤다.
"도겸아! 다원아! 우리 공원으로 가자!"
늘푸른 공원의 놀이터는 한결 깔끔했다. 그곳의 놀이터에는 모래가 없어서 지수가 앉아서 쉬기에 더욱 좋았다. 개미가 아이의 몸을 타고 올라올까 봐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얏호!
지수와 두 아이들은 공원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도겸이는 한쪽에 던져두었던 씽씽이를 끌고 와서 전속력을 다해 씽씽 발을 굴렀다. 악!
씽씽이의 바퀴가 반듯하지 않은 보도블록의 튀어나온 부분에 부딪쳐 씽씽이와 함께 아이는 허공을 한 바퀴 휘젓은 후 땅에 널브러졌다. 이번에는 큰 아이가 울부짖었다. 지수는 놀라서 큰 아이에게로 달려갔다.
"괜찮아?"
울던 아이는 대답 대신 입을 오물거리더니 입에서 뭔가를 퉷 뱉었다. 며칠 전부터 흔들리던 앞니였다. 그리고는 2초 동안 그쳤던 울음을 다시 상기하며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