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_벚꽃과 소라게

공무원 남편을 둔 전업주부들의 소소한 수다

by 쓰는수 이지수

TV를 틀면 채널마다 벚꽃 경쟁이 한창이었다. 어느 곳이 더 잘 조성되어 있나 열심히 광고 아닌 광고가 나오고 있었고 벚꽃길은 사람들을 기분 좋게 해주는 동시에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마케팅이 되었다. 옅은 분홍빛을 섞어 잘 튀겨진 팝콘을 허공에 듬뿍듬뿍 뿌려 놓은 듯한 모습은 TV화면에서도 그 풍성함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연우는 무슨 축제 같은 게 눈에 띄면 지수와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 가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물론 그것은 대부분 입장료 없이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행사였다. 여의도 불꽃 축제는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그가 가족들에게 가장 생색을 낼 수 있는 최고의 축제였다. 좀 더 선심을 써서 축제 장소에서 가깝지는 않아도 근처의 호텔 숙박권을 예약하여 하룻밤을 묵을 계획을 잡는 것은 이들 가족에게 흔치 않은 고급스러운 일정 중 하나였으며 당연히 그 숙박권도 운 좋게 어디선가 얻은 것이었다. 김영란 법이 시행되기 이전의 시절이었다.





낡은 임대 아파트이지만 벚꽃 경쟁에서 만큼은 이곳 9단지 아파트도 절대 뒤지지 않았다. 거실에서 앉아 바깥을 보려면 20센티 이상 푹 꺼진 베란다로 나가 차가운 벽 앞에 쌓여있는 잡동사니에 기대듯 서서 창밖을 내다보아야 했다. 구렁이가 담 넘듯이가 아니라 담넘기 직전의 자세게 필요한 시점이었고 그러면 노후된 아파트와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 4층까지 쭉 뻗어서, 거실에서 고개만 돌려 바라보면 색이 바랜 액자 속에 뽀얀 벚꽃이 풍성하게 채색되어 있었다.



지수는 시끌벅적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들의 소리를 스스로 잠시 음소거를 하고 그 꽃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언뜻 보기에도 당연히 임대아파트일 거라고 여겨지는 그곳의 풍경은 지수가 가끔 사진을 찍을 때 걸리적거리는 부분이었다. 억수로 비가 많이 온다거나 눈이 많이 와서 지우고 싶은 것들이 가려졌을 때 사진을 찍어두면 그것은 뽀샵 효과를 주지 않아도 꽤 볼만했다.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기능을 열어 작은 네모칸에 바깥세상을 맞춰 넣었다. 갈색의 녹슨 새시가 화면에 담기지 않도록 살짝 옆으로 몸을 틀고 버튼을 늘렸다.


"이렇게 예쁜데 너무 금방 져."


이곳에서의 더 늘릴 수 없는 4년 동안의 짧고 안락한 생활을 말해주는 것처럼 그것은 잠깐 화려한 빛을 내었다가 다시 금세 그 모습을 벗어던졌다.



오후가 되어서 지수는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문을 열었다.



매끈하지 않은, 시멘트만 바르고 적당히 평평하게 다듬어 꼭 일부러 그것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려고 한 듯 ㅡ음식으로 치면 본연의 맛을 살린다고나 할까ㅡ 한 계단은 언제나 깨끗했다. 그 거친 질감을 자랑하는 계단은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고자 세수는 열심히 하고 비싼 돈이 드는 더 이상의 사치는 부리지 않았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이곳 주민들은 '재건축이 임박했다'라고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웬만한 돈 드는 수리는 하지 않는 것을 경제적 차원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녀는 1층 현관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가다가 맨 아랫 계단에서 휘청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뒤를 돌아다보았다. 첫 번째 계단의 한쪽이 깨어져서 이가 나가 있었다. 벌써 한참 전부터 조금씩 이가 나가더니 부서져 떨어져 나간 부분이 꽤 커져있었다.


"어머나, 애들아 여기 계단 내려올 때 조심해라. 넘어지겠다."


그녀는 한 손으로 치마 아래쪽을 툭툭 털었다. 두 아이의 손을 붙잡고 장터가 서는 아파트 중앙 도로로 갔다.



정문에서 바라보면 아파트 내 도로 옆 길 양쪽으로 낮은 연립주택 같은 동들이 일렬종대로 반듯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양 옆길에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는 벚꽃들. 그것을 올려다보는 것은 정말 웅장했다. 낮은 아파트는 분홍빛이 도는 새하얀 나무들에 미모 몰아주기를 하듯 겸손하게 앉아있었다.



공식적이지는 않지만 9단지 벚꽃축제에 근사함을 더해줄 장터가 열렸다. 시골 5일장처럼 온갖 것들을 파는 장사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먹거리는 가장 인기가 있었다. 지수는 아이들을 데리고 장터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둘러보았다. 한쪽에서는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돌아가며 구워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를 뛰어다니며 신이 났다. 캐주얼한 여성복과 남성복부터 아이들의 비싸지 않은 장난감, 물고기나 곤충, 반찬거리, 각종 식자재, 술과 술안주는 시골 5일장을 연상했다.


ㅡ 오늘 아파트에 장이 서니까 저녁은 거기서 같이 먹어요. 저녁 안 할 거예요.ㅡ


지수는 미리 남편에게 연락해 놓고 모처럼 여유로운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물고기에 심취해 있는 동안 무엇을 먹으면 좋을지 메뉴를 고르느라 입에 침이 고였다. 평상시에는 술을 안 마시지만 이런 날에는 파전, 통돼지 구이, 맥주를 마시면 육아 스트레스를 단숨에 날릴 수 있었다.


"엄마!"


지수는 바싹한 돼지 껍질을 입에 넣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돼지 껍질에서 배어 나온 돼지기름이 그녀의 치마 위로 뚝 한 방울 떨어졌다. 유모차에 앉아 있던 작은 아이가 손을 죽 뻗어 고기를 더 달라고 시늉했다. 연우는 못하는 술을 한잔 마시고 얼굴이 벌게져서 큰 아이를 바라보았다. 이 장터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음식 중 하나는 단연 바싹하게 구운 돼지 껍질이었다. 술 좀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내 집 마당에 오랜만에 생긴 포장마차에서 편안하게 한잔을 기울였다.


사실 지수의 친정은 한 동 짜리 아파트여서 그런 곳에는 타산이 맞지도 않는 장터가 들어설 리가 만무하였고 아파트에도 이런 장터가 선다는 것을 결혼하고 알았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이렇게 바싹한 비스킷 같은 돼지껍질은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것이었다.


8단지 주민들도 와서 장터를 즐기느라 정말로 북적거리는 시골 장터 같았다.


"이것 좀 먹어봐. 엄청 바싹해. 이게 저녁이야."

지수는 한 손으로 아이의 팔을 붙잡고 돼지고기를 후후 불어서 아이에게 먹였다.


"나 소라게 살래! 소라게 사줘!"

큰 아이는 음식을 입에 넣은 채 소라게 노래를 불렀다.


며칠 전 전집을 보다가 곤충과 관련된 책을 봤더랬다. 아이는 그중에서도 소라게가 예쁘다고 했다. 그것을 키우기 위해 채집통과 바닥에 깔아 놓을 바닥재 및 소라게용 밥그릇 등 잡다하게 살 것이 많았다. 그것의 먹이는 냉장고에 있는 야채 중 적당한 것을 주면 되었다.


소라게가 담김 채집통은 자그마한 현관 옆에 세워둔 간이 신발장 위에 두었다. 그것의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열심히 야채를 주고 먹이를 먹는 모습이 신기해서 그녀와 아이들은 멍하게 구경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지수는 놀라서 소리를 쳤다.

"으악! 징그러워!."


소라게는 껍데기 밖으로 온몸을 끌어내놓고 죽어있었다.


"으흐 끔찍해, 백과사전에서는 왜 이런 건 안 알려줬던 거야?"


아이는 소라게가 죽을 때 어떻게 죽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묻어야 되냐고 물었다.


"묻긴 뭘 묻어. 밖에 비도 오는데. 냄새나기 전에 치워버려야겠다."


지수는 부엌으로 가서 서랍을 열었다. 무슨 중국집이라고 쓰여있는 나무젓가락 중에 가장 오래돼 보이는 것으로 하나 집어 들었다.


"통을 좀 씻어야겠다."


그녀는 나무젓가락을 툭 떼어내어 소라게를 집었다. 얼굴이 찌푸려졌다.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날 듯 그것을 꾹 쥐고는 작은방 창쪽으로 조심스레 걸었다.



창가까지 도달한 것을 안심하고 한 발을 의자에 다른 한 발을 책상에 살짝 디뎠다. 창문을 열었다. 얼마전까지 풍성하던 벚꽃은 빗물에 씻겨 내려간지 오래였다.


무심하게 그것을 창 밖으로 툭 던졌다.


"야, 너도 임대아파트였냐? 기간이 다 되었다고 집에서 나오긴 왜 기어 나오냐? 징그러워라."


지수는 창문을 닫고 조심스럽게 책상에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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