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입학식, 혼자 가다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2
엄마는 내가 국민학교를 입학할 때 즈음 막내 동생을 낳으셨다. 3회 연속 딸을 낳다가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이었다. 그 아이가 아들이 아니었으면 내 동생이 몇 명이 되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첫째인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시어머니에게서 쓴소리를 들으셨다. 산부인과 병원 회복실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아빠는 고생했어라고 말씀하셨고 옆에 계셨던 할머니는 뚱한 목소리로 '조금만 더 고생했으면 좋을 뻔했다.'라고 하셨다. 엄마가 좀 더 고생을 했으면 내가 가랑이 사이에 뭐라도 하나 달고 나왔을 텐데 그러지 못하셨나 보다.
"난 그 말이 잊혀지지가 않아."
평소 깊은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엄마는 그때를 그렇게 회상하셨다. 마침내 막냇동생이 태어났고 엄마는 더 이상 아기를 낳지 않으셨다.
막내의 탄생은 내 인생에서도 큰 변화를 몰고 왔다. 그 아이가 태어나고 한 달쯤 지났을 때 나의 국민학교 입학식이 있었다. 엄마는 내가 학교에 메고 갈 가방을 사가지고 오셨다. 가방은 빈가방임에도 꽤나 묵직했다. 나는 국민학교 가방은 원래 그렇게 무거운 줄 알았다. 장사를 마치고 오신 아빠는 가방을 들어 올렸다 내려놨다를 반복하며 그것을 요리조리 살피셨다.
다음 날 아빠는 새로운 가방을 사 오셨다.
"애가 저래 작은데 가방이 이렇게 무거워서 어떡하나? 저렇게 무거운 가방 메고 다니다가 키가 더 안 크겠다." 하시며 한 결 가벼워진 가방을 나에게 메보도록 하셨다. 나는 그 가방을 메고 화장대 거울 앞에서 나지막이 웃었다.
입학식 전날 엄마는 아빠가 사 오신 가방에 입학통지서를 챙겨 넣으며 말씀하셨다.
"애들이 많이 갈 거야. 그 애들 죽 따라서 가면 돼."
할머니는 엄마가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찬바람을 쐐면 안 된다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와 입학식에 가는 것이 좀 내키지 않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입학식날이 되고 할머니와 나는 집을 나섰다. 바람은 아직 차가웠다. 할머니와 나는 우리 집이 있는 주택가를 나와서 4차선 찻길을 지나 학교로 향하는 길목에 도달했다. 엄마 말대로 내 친구가 될 꽤 많은 아이들이 각자 엄마손을 잡고 학교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나도 할머니 손을 잡고 그들 사이게 끼어 걸어갔다. 그곳에서부터 학교 교문까지는 어른 걸음으로 10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나와 함께 몇 걸음 걷던 할머니는 내 손을 놓으시며,
"지수야 일단 사람들 따라가래이. 할머니 금방 갈게." 하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할머니가 또 화장실이 급하신 거구나 하고.
나는 엄마 말대로 애들을 죽 따라갔다. 죽 따라가니 학교가 나왔고 운동장에서 홀로 서 있는 나에게 선생님인 듯 보이는 어른이 다가와서 어디로 가라고 안내를 해주셨다. 두 명씩 짝지어 줄을 서있었는데 아이들 옆에는 그들의 엄마가 함께했다. 나는 혼자였다. 야무지게 입을 꾹 다물고 아빠가 사주신 한결 가벼운 가방을 메고 서있는 나에게 옆에 서있던 아주머니가 말을 걸었다.
"어머! 너는 혼자 왔니?"
나는 그 아주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엄마가 얼마 전에 아기를 낳으셔서요."
그러고선 다시 야무지게 입을 다물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아주머니는 감탄하듯,
"어머나. 기특해라. 벌써부터 혼자 다니고. 다 컸네. 다 컸어. 똘똘해라." 하셨다.
그리고는
"얘! 네 친구는 입학식도 혼자 왔다." 하면서 손을 잡고 있던 아이에게 면박 아닌 면박을 주었다.
생전 처음 보는 아주머니에게 기분 좋은 말을 듣고는 나는 벅찬 기분에 살짝 들떴다. 그것은 갑자기 사라진 할머니 덕분에 홀로 서 있게 된 국민학교 입학식에서, 게다가 만 7년 내 인생에서 처음 들어보는 칭찬이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툭하면 오줌을 지리는 통에 항상 쾌쾌한 냄새를 풍기는 할머니가 옆에 계시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
나는 할머니의 체면을 생각해서 할머니가 나랑 같이 오다가 쉬가 마려워서 집에 다시 돌아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나불나불한 성격도 아니었다. 소변을 제대로 참지 못하는 할머니는 그렇게 표면상 나를 독립심이 엄청 발달된 아이로 만들어 놓으셨고 입학식이 끝난 후 나는 혼자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야 생각이 난 것이지만 할머니가 집 대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할머니의 오래된 속옷은 이미 축축하게 되었을 것이다.
학교 생활은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선생님은 인자한 얼굴을 하신 40대 중반의 여자분이셨다. 아이들이 시끄럽게 한다거나 말을 듣지 않는다고 여기실 때 선생님은 한마디로 아이들을 제압했다.
"이제부터 선생님 말 안 들으면 짬지 만져준다."
선생님의 나긋나긋하고 교양 있는 말투의 무시무시한 이 소리가 울려 퍼지면 교실은 아이들이 사라진 듯 조용해졌다.
나는 엄마한테조차 들어보지 못한 이 기괴한 협박을 듣고 다리를 살며시 오므렸다.
우유 급식이 시작되었다. 우유 급식을 원하는 사람은 급식 신청서에 표시를 해서 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막내를 돌보느라 바빴고 그런 엄마를 대신해서 할머니는 장사를 하시는 아빠의 점심, 저녁을 내가시느라 정신이 없으셨다. 돈은 안 냈지만 나는 교실 뒤편에 있는 우유 상자에서 우유를 꺼내 그것을 마셨다.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돈을 내고도 우유를 못 마신 아이가 계속 나오자 선생님은 돈 안 내고 우유를 마신 아이를 색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범인은 내가 되었다. 나는 아니라고 잡아 떼야만 했다. 선생님은 남의 그것을 노리는 무시무시한 분이시니까. 선생님은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판단하시고는 엄마를 데리고 오라고 하셨다. 집에 가서 엄마에게 말씀을 전하니 엄마는 아직 찬바람을 쐐면 안 된다고 하셨다. 첫째부터 셋째 아이까지 출산을 한 후 단 며칠 만에 집안일을 시작하고 바깥바람을 쐐며 아빠의 식사를 내가셨던 엄마였다. 찬바람을 쐐면 안 된다는 것은 엄마가 선생님한테서 싫은 소리를 듣지 않을 좋은 핑곗거리였다.
할 수 없이 할머니가 학교에 오셨다. 할머니는 '우리 애는 우유를 안 마셨다.'라고 우기셨다. 나와 할머니는 무슨 발표를 하듯 친구들이 지켜보는 앞쪽에 나란히 서서 선생님의 따끔한 훈계를 들어야 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신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하셨다.
"지수가 우유 마시는 거 본 사람?"
아이들이 쭈뼛쭈뼛 손을 들었다.
"지수가 우유 마시는 거 못 본 사람?"
나머지 아이들이 느릿느릿 손을 들었다.
"이것 보세요. 얘가 우유 마시는 거 본 아이들이 더 많잖아요."
다수결에 의해 그렇게 나는 우유를 훔쳐먹은 아이로 결론이 났다. 할머니는 부지런히 집으로 돌아가셨다. 선생님이 내 가랑이 사이에 손을 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만은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