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3
우리 동네에는 친척들이 몇 집 살고 있었다. 그중에 당숙도 포함되었는데 당숙모는 심심할 때마다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엄마와 한참 수다를 늘어놓다가 가시곤 했다. 나는 당숙모에게 아줌마라고 불렀다. 그 호칭이 적절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모, 고모는 아니고 좀 친한 동네 아줌마니까 그렇게 불렀다. 엄마에게 형님 형님 하면서 살갑게 구는 아주머니는 엄마의 동서 지간이면서 만만한 동네 친구 같은 존재였다.
"아니 무슨 그런 선생이 있대요? 노인네를 오라 가라 하고! 얘가 잘 모르고 우유 좀 먹을 수도 있지! 우리 작은 어머니 고생하셨네. 아이고."
당시 새댁이었던 아줌마는 그날도 우리 집에 놀러 오셨다가 할머니가 학교에 가셔서 고초를 겪으신 것에 대해 들으셨다. 내가 어리숙해서 급식 신청을 하지 않은 채 우유를 마셨다는 것을 전제로 하신 것에 대해서는 약간 언짢았으나 할머니를 위로하시는 모습을 보며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줌마는 할머니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움켜쥐고 안타까운 표정을 하셨고 할머니는 그저 멋쩍은 미소를 지으시며 앉아 계셨다. 선생님의 노인에 대한 공경심이 부족한 것에 대해 분노를 하시는 아줌마를 보며 나도 거기에 합세해서 선생님이 가끔 요상한 발언을 한다고 일러바치고 그것에 대해서 아줌마가 새로운 분노를 하도록 유도하고 싶었다.
"형님 몸 좀 회복하면 선생님 좀 만나 봬야겠네요. 선생님이 좋아하는 거 가지고요."
하며 아줌마는 눈을 찡끗했다.
그때부터 엄마의 연례행사는 선생님한테 돈 봉투 갖다 주기가 되었다. 새 학기가 되면 평소에는 집에 있지도 않은 새하얀 봉투가 자연스레 보이게 되고 엄마가 생각하시기에 알맞은 금액의 현금이 그 봉투 속으로 들어갔다. 학교에 갔다 오신 엄마가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콧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르며 집안일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그 봉투가 선생님에게 잘 전달이 되었다는 것을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봉투의 효과는 꽤나 잘 나타났던 것 같다. 어떤 선생님은 별로 한 것 없이 가만히 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가 하면 어느 때는 독후감 숙제에서 우수상을 주기도 했고 또 어느 때는 방학 숙제를 잘했다고 상을 주시기도 했다. 나는 내가 상을 탈 때마다 내가 정말 잘해서 상을 받은 건지 엄마의 도움으로 그런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지 헷갈려서 그 상들을 받고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자랑스러운 상장을 엄마아빠에게 자랑스럽게 내보이기는커녕 그 상장들을 아무도 눈치 못 채도록 책꽂이에 꽂아 두었다. 마침내 학기말에 통지표에는 '미'라고 표기될 것을 예상한 칸에 당당하게 '우'자가 써져 있는 것을 보고 선생님이 나름의 양심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다음 상을 받기 위해서는 엄마가 또 한 번 학교에 오셔야 하나 하는 내 속의 영악한 감정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재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 내 예상과는 달리 일이 어긋났다고 여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ㅡ아마 숙제를 하지 않았거나 그랬을 것 같다ㅡ 선생님이 다른 몇몇 아이들을 비롯해 나의 뺨을 때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지금의 학생들이 듣기엔 기암을 할 노릇이지만 그 당시에 이 것은 그저 선생님의 훈계의 일종이었다. 1학기때는 괜히 교사용 문제집을 챙겨주고 불필요하게 상냥하게 대해주던 양반이 2학기가 들어서는 돌변을 한 것이다. 따귀를 맞는 순간 나는 그의 넥타이를 보며 생각했다.
'돈이 부족했나.....?'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생각을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돈도 올라가야 했는데 엄마가 그런 생각을 못하신 건 아닐까? 금액이 얼마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1학기, 2학기 두 번에 걸쳐했어야 했나? 아니지, 학년이 올라간 만큼 4분기로 나누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이렇게 하셨어야 했어. 엄마는 왜 신학기 때 달랑 한 번만 오신 거야? 답답해라.
나는 숙제를 하다 말고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생각을 이어갔다. 돈은 알맞게 넣으신 건지 그것이 궁금했다. 금액을 정하실 때 분명히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우리 집 2층에 세 들어 사는 A네 집에 물어봤을까? A 어머니는 항상 돈이 부족하다고 하셨다. 그 집 아저씨는 조그만 회사에 다니는 월급쟁이였는데 엄마가 뭐만 물어봤다 하면 '그건 비싸다'라고 하시며 귀가 얇으신 엄마의 구매 욕구를 좌절시키곤 하셨다. 내가 그렇게나 걸스카우트를 하고 싶었을 때도 그 아주머니가 하신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라는 말을 듣고는 실제 회비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나를 좌절시키셨다. 설마 신학기 때마다 그 아주머니한테 물어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럼 B네 아주머니한테 물어보셨을까? B 아버지는 사업을 하셔서 그 동네에서 가장 잘 사는 집이었다. B 어머니는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라서 좋은 집에 좋은 차를 몰면서도 절대 거만하지 않은 조용한 분이셨다. 분명 우리 엄마보다도 더 두둑한 봉투를 선생님께 가져다 주고도 '나는 그런 거 안 해요' 하고 점잖은 말투로 시치미를 떼실게 분명했다. 그럼 C네 아주머니? C네는 아버지는 가끔 집에 오시고 아주머니는 룸살롱인지 단란주점인지 별로 떳떳지 못한 술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C 아주머니는, 가게 운영하는 데 동생들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다며 그 동생들한테 돈을 엄청 많이 썼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돈을 쓸 줄 알면서도 그것에 대해 자랑을 늘어놓는 분이셨으니까 엄마한테도 돈 주려면 제대로 주라고 조언을 했을 가능성이 있다.
'D 아주머니한테는 아마 묻지도 않고 패스를 했겠지.' 나는 책상에 앉아 뭉뚝해진 연필을 한쪽에 놔두고 필통에서 뾰족한 연필을 찾아 뒤적거렸다.
우리 집 앞 다세대 건물 단칸방에 세 들어 살았던 D네는 아주머니가 슈퍼에 갈 적마다, 시장에서 필요한 것을 살 적마다 아저씨가 필요한 만큼의 돈을 준다고 했다. 집집마다 저녁 준비가 한창일 어느 날 D 아주머니가 우리 집에 오셨다. 부탄가스를 빌려달라고 하셨다. 엄마는 부엌에서 부탄가스를 가져와서 건네주고는 아주머니가 대문을 나서는 뒷모습을 빤히 지켜보다가 한 마디 하셨다.
"저 집도 참 신기하다. 이거 몇 푼 한다고 슈퍼에서 하나 사지, 이런 걸 다 빌리러 온다니?"
봉투에 대한 조언을 구하려고 동네 아주머니를 찾을 때 D씨네를 잠깐 바라보던 엄마는 그대로 고개를 돌려 다른 아주머니를 찾아갔을 것이다.
나는 따귀를 맞은 순간을 떠올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도대체 엄마는 누구한테 물어본 거야? 2학기때 상장을 받기는 글렀군.'
나는 아버지가 사다 주신 기차모양 연필 깎기에 연필을 꽂고 씩씩거리며 손잡이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