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4

by 쓰는수 이지수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엄마가 챙기는 봉투의 수도 늘어났다.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한 엄마는 그런 행동들을 나에게서 그치지 않고, 무슨 좋은 것을 대물림하듯 동생들 선생님을 뵐 때도 엄마 나름의 예의를 차리셨다. 학년에 따라 금액을 달리 하셨는지 선생님의 연령대에 따라 금액을 정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금액을 어느 선으로 결정하는 것은 무슨 일을 시작할 때 망설임이 있고 지금식으로 말하면 결정 장애가 약간 있으셨던 엄마에게 꽤나 어려운 일이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엄마는 다른 많은 엄마들이 그렇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것을 중단하는 것은 부모로서의 도리에 어긋난다고 여기셨다.



그러한 엄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선생님한테 맞았다는 얘기를 엄마에게 할 수 없었고 엄마는 여전히 내가 아무 일 없이 순탄하게 학교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으셨다.



내가 6학년이 되고 내 동생이 4학년이 되었을 때, ㅡ 편의상 내가 1번으로 시작해 동생들을 태어난 순서대로 2, 3, 4번으로 칭하겠다ㅡ 그러니까 2번이 4학년이 되었을 때 모두가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일어났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갔을 때 엄마가 나를 부르셨다.

"지수야 이것 좀 봐라."

엄마가 손에 무언가를 들고 계셨다. 흰 봉투였다.

"2번 담임 선생님이 이걸 도로 돌려보내셨다."

며칠 전 엄마는 학교에 가서 2번의 담임 선생님을 만났다.

"우리 선생님이 이런 거 안 받으시겠대. 엄마한테 도로 갖다 드리라고 나한테 주셨어."


2번은 반에서 1등만 했다. 승부욕이 이마 끝까지 차서 반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험 때면 마치 고3처럼 공부를 하고 집에서도 자기가 2번인 것이 억울한 듯 나를 찍어 누르고 1번이 되고 싶어 했다. 2번은 자기가 마치 이 청렴함의 주체가 된 듯 으스대듯 말했다.

"우리 선생님은 달라. 정말 좋으신 분이야."


나는 아무 대꾸도 없이 그냥 멀뚱히 엄마와 동생을 쳐다보다가 내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나에게 무슨 고민상담이라도 하려는 듯 따라 들어와서는 계속 말을 하셨다.

"이거 혹시 돈이 적다는 뜻 아닐까? 넌 어떻게 생각하니?"

고작 6학년인 나에게 엄마는 대단한 조언을 구했는지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내가 '음' 하고 대답을 빨리 하지 못하자,

"돈을 더 넣어서 다시 보내야 하나? 돈을 더 달라는 뜻인가? 아니지. 정말로 이런 거 안 좋아하시는 분인가? 설마. 선생들 월급 얼마 한다고 돈 주는 걸 싫어하겠어? 아직 아가씨라서 세상 물정을 좀 모르는 거 아니야? 아니지. 이렇게 바른 걸 보면 교회 다니는 사람인가? 얘! 너네 선생님 교회 다니신다니?"


"몰라!" 거실에서 2번의 대답 소리가 들렸다.


"하긴 교회나 절이나 하나님한테나 부처님한테나 한 군데 정해놓고 기도하는 사람들은 다 착하지. 아무렴."

엄마는 잠깐 3초 동안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쟤네 선생님이 이거 돌려보낸 거, 봉투 같은 거 안 받는 거 진심인가? 응? 아이고 그럼 이거 망신스러워서 어쩐다니! 어머나 이거 창피해서 어쩐다니! 이게 무슨 망신이라니!"

엄마는 어쩐다니 어쩐다니를 반복하며 그제야 내 옆에서 떠들던 것을 멈추고 방을 나가셨다. 나는 책상 의자에 앉은 채로 상체를 쭉 뻗어서 방문을 휙 닫았다.



'내 선생님이랑은 다르네.......'

'뱀처럼 날름날름 받아먹고 때리기까지 할 것은 뭐야?'

2번이 자기네 선생님으로 인해 내 앞에서 으스댄 것처럼 나는 그러지 못한 선생님과 한 편이 된 것처럼 괜한 열등감을 느꼈다.



2번의 담임 선생님으로 인해 엄마가 봉투를 챙기시는 일은 잠시 중단되었다.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마도 아빠의 조언이 크게 작용된 까닭이었을 것이다.


모든 선생님이 2번의 선생님 같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것은 단순한 착각이었다.


나를 비롯한 2번과 3번의 학교 생활은 나름 순탄한 듯 보였다. 뚱하고 어리숙한 모양새의 나와는 달리 2번 3번은 상냥하고 밝고 어딜 가나 어른들에게 예쁨을 받을 아이들이었다. 걔네들은 공부도 곧잘 했다. 걔네 선생님들은 돈도 안 받으시면서 때리는 일도 없었다. 붙임성 없는 성격과 딱히 볼 것 없는 나의 성적표의 결함에는 엄마의 봉투가 필요했다. 봉투를 주고도 나는 매를 맞았지만 두대 맞을 걸 한대로 내려준 것은 아닐까 하는 무한긍정의 태도를 유지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하지만 엄마가 그 봉투를 중단하는 일은 신중해야 했다. 순진한 시골 양반들처럼 ㅡ실제로 두 분 다 시골 출신이셨다ㅡ 잠시 방심을 하는 동안 정신이 번쩍 들게 할 일이 일어났다. 그것은 시의 적절하게 또 그것이 필요한 자에게 알맞게 전달이 되었어야 했다. 4번에게 충격적인 사건이 터지면서 우리 식구들은 분노와 슬픔에 휩싸였다.



4번이 입학을 하고 2학년이 된 어느 날이었다. 하교 때가 조금 지난 시각, 4번의 담임 선생님이 4번을 데리고 집으로 오셨다. 엄마는 선생님과 함께 현관을 들어서는 4번을 보고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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