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바닥 아이들

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6

by 쓰는수 이지수



엄마는 어리둥절해했다.

'선생님이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거지?'

엄마는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이해가 되질 않아 머릿속으로 생각을 계속하려고 애를 셨다.


'선생님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가? 아이들 싸움을 제때 못 말려서 미안하다는 것인가?'


엄마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생각들은 엉키고 또 뒤엉켜서 차라리 생각하기를 멈추는 것이 나았다. 엄마는 깊게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깊게 할수록 삼천포로 빠지게 되고 엉뚱한 결과가 입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순간은 좀 당황스러워도 나중에 '웃기려고' 그렇게 말했다고 하면 그만이었다.




그즈음 코미디언 주병진 씨가 속옷 회사를 차려서 매스컴이 떠들썩했다. 사람들은 왜 하필 속옷인지에 대해 궁금해하면서도 한편으로 재미있어했다. 토크쇼에 나와서 혹은 신문, 잡지사와 인터뷰를 한 그는 왜 속옷회사인지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의류 회사는 너무 많잖아요. 쌍방울, BYC 등 속옷 기업 독점체제에서 메이커 있는 빤스를 팔면 내 회사는 3등이 돼요."


그의 말은 너무 멋있어서 귓가에서 계속 맴돌았다. 바로 시작해도 3등을 거머쥘 수 있다는 그는 과연 천재개그맨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 줄 아나? 왜 주병진이가 다른 장사, 옷장사 같은 거 안 했는지 그 이유를 아나?"


아빠의 갑작스러운 질문이었다. 엄마와 그 자리에 같이 둘러앉아 있던 우리들은 무슨 복합한 수학 문제가 적힌 종이를 건네받은 것처럼 눈을 꿈뻑꿈뻑거렸다. 아빠는 분명 엄마에게 묻고 있었다. 우리들은 엄마 쪽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보며 엄마가 무슨 대답을 할까 눈을 또 꿈뻑꿈뻑거렸다.

엄마는 잠시 고민을 했다. 정말 어렵고 심오한 질문을 받은 것처럼 엄마는 고뇌했다. 좀 더 멋있게 대답을 하려고 고민하는 것처럼 보였다. 망설이던 엄마의 입에서 정답이 나왔다.

"등수가 낮아서!"

우리들은 순간 어리둥절해하다가 끄떡끄떡 했다. 아빠는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소주잔의 술을 재빠르게 드시고는 상에 내려놓으셨다.

"그게 아니지! 속옷 회사를 차리면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는 뜻 아니야!"

"그게 그거지 뭐!"

엄마는 당당했다. 그러면서 호통하게 웃으셨다. 좀 표현이 촌스러워서 그렇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가끔 아빠의 언어 영역 시간은 그렇게 갑작스럽게 시작되고 마무리되었다.





"제가 실수로..... 아이를 나무라다가..... 아..... 정말 죄송합니다......"

선생님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앞의 가지런한 참외는 그분에게 주려고 일부러 준비를 한 것처럼 멋쩍게 놓여있었다. 엄마는 무슨 이야기를 물어봐야 할지 뭐라고 따지고 들어야 할지를 몰라서 머릿속으로 고민만 했다. 선생님은 사죄의 의미로 엄마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난생처음 엄마는 선생님한테서 봉투를 받았다.



삐쩍 마른 몸에 턱선은 날카롭고 눈은 왕방을 만한 게 위로 찢어지기까지 해서 겉보기에도 위화감이 돌았다. 엄마는 종종 자신의 뚱뚱한 몸을 미화시키기라도 하듯 평소에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마른 사람이 신경질적이라는 것이다. 신경질적이고 못 돼서 살이 안 찌고 마른다는 논리였다. 그렇게 따지면 엄마는 성모 마리아처럼 한없이 너그러워야만 하는데 그건 전혀 아니었으니 엄마 자신은 번외로 두고 한 말이 아니었나 싶다. 엄마의 논리가 딱 맞아떨어지게 무릎을 꿇고 앞에 앉아 있는 여자는 삐쩍 마르고 신경질 적으로 생겼다.




그렇게 섬뜩한 인상을 주는 사람이 되려 자신이 잔뜩 겁을 집어 먹었다는 듯 몸을 살짝 떨기까지 하며 쩔쩔매고 있었다. 게다가 이 사람은 엄마가 항상 주눅 들어하던 '선생님'이었다. 이 잘난 사람이 하찮은 장사꾼 와이프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찮은 시장 장사꾼 앞에서!






그들에게 내가 다른 친구들과 같은 제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안 것은 6학년때였다. 아직 아동으로 분류가 될 나이었지만 무슨 말인지 말길은 다 알아듣는 때였다. 학교 근처에 큰 시장이 있었다. 시장 상인들 대부분은 그 근처에 살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자녀들은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 배정이 되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공교롭게도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자신의 제자 중 대다수가 시장 상인의 자식들일 확률이 월등히 높았던 것이다.




"내가 자료를 좀 봤더니."

무슨 자료를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중대한 발표를 할 것처럼 선생님은 운을 띄었다. 선생님은 이 학교에 부임된 지 몇 년이 되지 않았던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이 학교가 시장이랑 가까워서 시장사람들 자식들이 여기 다 배정이 되더라고. 주변에 다른 국민학교보다도 훨씬 더 많더라고. 후후후."

선생님은 허탈하다는 듯 웃었다.

그러면서 그런 아이들과 수업을 하는 것이 내심 못마땅한 것처럼 말씀하셨다.

"에휴! 시장바닥 아이들"

너무도 태연하게 아이들을 바라보며 '시장바닥 아이들'이라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의 눈길은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한번 쭉 훑었는데 꼭 시장바닥 아이들을 찾아내어 휙 돌아보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딱히 기분이 나빠 보이지는 않았다. 기분이 나쁠 때는 속이 풀리도록 온갖 이유를 대어 아이들을 때리면 그만이었다. 기분이 보통인 것처럼 보이는 날에는 이렇게 비아냥대면서 하고 싶은 말을 가래침 뱉듯 툭툭 내뱉으면 그만이었다. 그 말은 정말 누군가가 내게 가래침을 뱉은 것과 같았다.

'시장 바닥 아이들'

잔잔하게 고요한 목소리로도 그런 말이 나올 수가 있구나. 나는 뭔가 기분이 나빴지만 뭐라고 따질 수는 없었다. 내가 시장 바닥 아이라는 것은 사실이었고 그분은 어른이었다. 나름 머리가 커지고 영악해진 나는 씁쓸한 기분을 가슴 한가운데 저장한 채 대문을 들어서면서 생각했다.


'미친놈. 마누라랑 싸웠냐?'




'근데 4번 선생님은 도대체 누구와 싸웠길래 4번한테 그렇게 화풀이를 한 거지?'

나는 4번의 이 안 좋은 소식을 저녁때나 되어서 들었다. 국민학교를 다니는 동안 4번의 선생님을 본 적이 없었다. 4번과 나는 학년으로는 여섯 학년이 차이가 나서 그 아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는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4번은 똑바로 앉아 있으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어기고 수업 중에 잠깐 뒤에 친구를 돌아보았다가 이 화를 당했다고 엄마는 전했다.



선생님은 화가 나서 씩씩거리며 4번에게로 다가갔다. 선생님의 손에는 투명한 30cm 자가 들려 있었다. 그 자는 별안간 흉기로 변했다. 자는 모로 세워져서 4번의 정수리 부분에 내리 꽂혔고 4번의 두피에서는 피가 줄줄 흘렀다. 선생님은 분명 크게 당황하셨을 것이다. 아이가 다친 것이 당황스러웠다기보다는 잘 못 될 수도 있을 자신의 처지를 더 걱정했을 것이다.



병원에 아이를 데려가서 찢어진 부분을 꿰매고 또다시 자신의 처지를 걱정하면서 우리 집까지 어렵게 도달했을 것이다. 엄마는 끌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누르며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는 선생님 앞에서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 때문에 죄송하다기보다 자신을 좀 봐달라는 의미의 말을 되새기는 것이 듣기 괴로워진 엄마는 한마디를 했다.


"알았으니까 돌아가세요. 돌아가세요."

4번의 선생님이 대문을 열고 또각또각 구둣소리가 멀어지자 엄마는 그제야 악 소리를 내며 봉투를 문쪽으로 집어던졌다.






"이런 쌍년을! 이 죽일 년을!"

아버지는 소주를 들이키며 분노하셨다. 그리고 세 딸들을 보며 말씀하셨다.



"니들 이런 일 있었다고 여기저기 소문내라. 소문 많이 퍼지도록 해라."

다음 날 나는 아빠와의 약속을 지키듯 옆 짝꿍에게 얘기를 했다. 다 듣고선 친구는 내게 물었다.



"그래서 지금 나한테 소문내고 있는 거야?"

"응"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그 소문은 불을 피우려고 열나게 비비다만 나무토막의 윗부분처럼 가느다란 연기만 내뿜고 '피융' 소리를 내듯 꺼졌다.



앞집 슈퍼를 자신의 팬트리로 삼으며 멋진 인생을 만끽하던 어린 소년에게도 이런 시련이 올 줄은 4번은 몰랐을 것이다.



선생님은 타깃 한번 잘 고른 샘이었다. 아이에게 상해를 입히고도 별일 없이 지나갔다. 4번에게 휘두른 힘이 그 정도라는 것을 깨닫게 된 여선생은 앞으로 그 강도를 조절하게 되는 좋은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시 시장 바닥 아이는 만만한 상대였다.



4번이 태어났을 때 누구보다 기뻤했을 할머니를 떠올려본다. 이 일이 일어났을 때 할머니는 세상에 안 계셨다. 만약 4번이 선생에게 맞아서 머리가 찢어진 꼴을 본 할머니는 얼마나 더 마음이 찢어지셨을까. 당신의 귀한 손주가 그런 꼴을 당하다니! 나의 우유 사건이 있던 날 할머니가 그 자리에 안계셨으면 나의 선생님도 내게 매를 드셨을까. 나의 룸메이트이면서 동시에 내 옆에 서서 훈계 메이트까지 자청해 주셨던 할머니가 새삼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 꼴 저 꼴을 안 보시고 일찍 돌아가신 할머니가 더욱 그리워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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