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7
할머니가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 손주를 그녀의 품에 안고 즐거워한 날은 고작 몇 년에 불과했다. 할머니는 60이 채 되지 않은 연세에 중풍으로 쓰러지시고는 몇 년간 큰집에서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할머니는 그녀만의 전용 냄새를 달고 사셨다. 난 그 냄새가 좋았다. 세상에서 가장 익숙하고 편안하면서 뭔가 만만한 냄새였다. 분명 향긋하지도 않은데 그 냄새는 그녀가 내 할머니인 것을 인식하게 하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이 요실금이 있으신 할머니가 속옷에 오줌을 지렸다가 마르기를 반복하면서, 그리고 그동안 자주 씻거나 속옷을 자주 갈아입지 않아서 나는 냄새인 줄 내가 더 커서야 알게 되었다. 게다가 할머니는 담배를 피우고 계셔서 전체적으로 안 좋은 냄새는 골고루 다 풍기고 있었다. 한마디로 할머니는 냄새나는 큰 덩어리 같았다.
할머니가 큰집에 누워 계시는 동안 나는 딱 한번 병문안을 갔었다. 아버지는 장사를 끝내고 할머니를 뵙고 집에 오셨지만 다른 식구들한테 할머니를 자주 뵈라고 강조하시지는 않았다.
큰 집에도 그녀의 아들이 있었는데 사실 할머니가 낳은 첫 자식은 내 아버지였다. 무늬만 장남인, 그 어려웠을 의붓아들과 며느리의 보살핌을 받으며 마지막을 쓸쓸하게 마무리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마지막까지 우리 집에서 지내지 못한 것에 대해 못내 안타까워했다. 엄마에게 모질었던 시어머니였지만 엄마 대신에 학교에 불려 와 준 할머니의 노고를 나는 아직도 깊이 감사하고 있었다.
20대 시절 엄마와 잡담을 나누다가 할머니 얘기가 나왔을 때 나는 무심코 말했다.
"할머니가 엄마한테 조금만 더 잘해줬더라면 엄마가 그냥 할머니를 계속 모셨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 집에서"
엄마도 할머니의 처지가 딱하다고 여기시는 눈치였다. 엄마 성질에 펄쩍 뛸만한 소리였지만 엄마는 조용히 말씀하셨다.
"우리 집은 애들이 있어서 할머니가 조용히 쉬실 수가 없지......"
할머니는 밤새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아침이 밝도록 깨지 않으셔서 늦잠을 주무신 줄 알았는데 큰 엄마가 방에 들어가 보니 이미 돌아가신 후라고 전해 들었다. 그녀의 임종을 지킨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할머니는 어두운 방 안에서 홀로 숨을 거두셨다. 가엾은 할머니를 생각하면 우리 집에 있었으면 좋았을 걸 생각하면서도 그 고생을 엄마가 짊어지셔야 한다고 생각하면 또 이건 아니다 싶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을 결정하는 데 내 의견은 전혀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할머니 괜찮아?"
딱 한번 문병을 갔을 때 할머니는 통나무처럼 반듯하게 누워서 눈만 깜박이셨다. 그 눈빛은 마치 4번을 찾는 듯했다. 할머니는 당연히 말도 못 하셨다. 엄마 아빠는 4번을 데려가면 환자 있는 집에서 애가 극성을 떤다고 그 아이를 큰집에 데려가는 것은 삼갔다. 할머니는 그 애가 가장 보고 싶었을 것이다. 당신의 친 아들 손주를.
"할머니 빨리 일어나."
시간이 지나면 누워 있던 할머니가 자연스레 일어나는 것처럼 나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너무 빨리 일어나면 보기에 안 좋을 것 같아서 지루함을 잠깐 참으며 애정을 담은 척 할머니의 손을 어루만지는 듯하다가 거실로 나왔다. 그게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였다. 나는 누워있는 환자에게 무슨 말을 해야 듣기에도 좋고 분위기도 사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단지 '할머니의 손은 많이 쪼글쪼글하다' 정도였다.
우리 집은 때때로 아버지의 언어 영역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던 집이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즈음에 한글을 거의 떼었는데 한글을 떼고 말고 가 문제가 아니라 어휘력이 상당히 달려서 무슨 얘기를 하면 나는 심한 사투리나 다른 나라의 언어를 듣는 것처럼 제대로 이해를 잘하지 못했다.
나는 밥바구니를 들고 나서는 할머니를 따라나섰다. 우리 집은 시장에서 보통 걸음으로는 10분이 안되는 거리에 있었는데 밥바구니 안의 밥과 국이 식지 않으려면 좀 더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근데 달려서도 안되었다. 밥바구니가 흔들리면 국을 흘리기가 십상이고 바구니 아래로 세는 국물은 빵 부스러기를 흘려놓는 헨젤처럼 가게까지의 노선을 안내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아기 때부터 시장 바닥을 누비던 나에게 시장은 활기찬 곳이었다. 언제 돌아다녀도 지루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것들이 눈에 띄었다. 아버지가 식사를 마치시고 할머니는 그릇들을 챙겼다. 할머니는 저기 아는 집에 잠깐 볼일이 있다고 하시며 조금 있다가 나오라고 하셨다.
"이따가 저어기 사거리에서 기다려라. 알았지? 사거리!"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거리를 되뇌면서.
할머니가 먼저 나가고 잠시 뒤에 아버지 가게에서 나온 나는 주택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즈음에 사거리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일곱 살밖에 안된 나에게 '사거리'라는 단어는 너무 고급 어휘였다. 분명 어떤 가게의 이름일 거야. 나는 천천히 걸어가며 줄지어 있는 가게들의 간판을 둘러보았다. 한글을 떼기 전이였다. 사거리는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숫기가 없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거리라는 것을 봤냐고 물어보는 것은 엄두가 나질 않았다. 나는 사거리처럼 보일 글자들을 찾다가 포기를 하고 다시 아버지 가게로 돌아와서 의자에 털썩 앉았다. 할머니와 약속이 있는지 모르는 아버지는 손님이 오자 손님에게로 다가갔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사거리를 모르는 나에게 사거리에서 기다리라고 일러주고 사거리에서 혼자 기다렸다. 나는 아무 약속이 없었던 것처럼 아버지 가게에서 멍청하게 앉아 있었다. 갑자기 버럭 소리가 들렸다.
"야! 이 우라질 년아! 사거리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까먹었나!"
나는 할머니와 함께 집으로 갔다. 사거리가 무엇인지는 할머니한테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사거리의 뜻은 한참 후에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