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낀 감정은 내 것이 아니었다_19
나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그 좁은 거리를 걷고 있었다. 떡볶이 골목에는 매콤 달짝지근한 떡볶이 냄새가 진동했고 떡볶이 장수는 빠른 손길로 순대를 썰고 있다. 호떡이 구워지는 뜨거운 철판 앞에 얼굴이 익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사람들은 줄을 서 있다. 땀에 절은 러닝셔츠 바람에 춤을 추며 만두를 빚던 아저씨는 없다. 시뻘건 개고기를 붉은 고무대야에 이고 나와 팔던 아주머니의 수다도 이제는 없다. 생수 사업을 하다가 망해 전재산을 탕진하고 길바닥에서 노점 장사를 하게 된 그 부잣집 사모님도 사라졌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 지붕이 그들을 덮어주고 있었다.
나는 익숙한 유리문 앞에 다다 갔다. 언제나 이 시간이면 그 안에는 머리가 허연 노인이 졸고 있었다. 졸고 있을 틈이 없던 시절에 노인은 손님에게 열심히 무언가를 설명하거나 손님이 원하는 것을 포장해주곤 했다. 손님이 없을 때는 돋보기를 끼지 않은 채로 신문을 보고 있기도 했다. 노인의 머리는 까맣고 힘이 있었다.
오래전 '경'과 나는 과외를 마치고 이 가게를 지나가고 있었다. 함께 과외를 시작하면서 좀 더 가까워졌다. 사실 친해졌다기 보다도 그저 같이 앉아서 공부하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해야 맞겠다. 함께 공부를 해도 공부를 하면서 함께 간식을 먹어도 그 애와 나 사이에는 무언가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는 것을 나는 느꼈다. 경은 묻지도 않는 이야기를 종종 했는데 이를테면 '우리 엄마는 대학 나왔어'라고 하면 나는 그저 가만히 듣고 있었다. 대학을 나왔다고는 했지만 무슨 대학인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날은 함께 시장을 가게 되었다. 경은 마치 시장통을 잘 안 다녀본 사람처럼 어색해했다. 마침 아버지 가게 근처를 지나가게 되었고 나는 우리 아빠한테 인사를 하고 가자고 했다. 경은 매우 부끄러워하며,
"창피해, 창피해"라고 말했다.
자기가 창피하다는 것인지 내가 창피하다는 것인지 저 가게에 앉아 있는 사람이 창피하다는 것인지 나는 도무지 헷갈렸다. 저기서 우리 아빠는 무엇을 팔아야 창피하지 않을까. 그 애를 바라보다가 문득 내 시야에는 아버지 가게 몇 발자국 근처에서 배추장사를 하는 이가 들어왔다. 나의 당숙아주머니였다. 나는 경을 바라보며 무엇이 창피한 것인지 묻고 싶었지만 끝내 묻지 못했고 그 배추더미들 뒤에 앉아 있는 분이 우리 엄마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경은 모든 점에서 나보다 우위를 점했다. 미술 대회를 같이 나가도 그 애는 상을 탔고 글짓기를 하면 나보다 더 높은 상을 탔다. 그 애가 담임 선생님께 혼이 나서 화가 났을 때 나는 비로소 그 애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염병! 마누라랑 싸웠냐!'
이 획기적인 멘트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경에게 물었다.
"너 책도 많이 읽지?"
씩씩거리던 경은 뜬금없는 나의 물음에 '뭔 소리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부터 나는 경을 따라 하기로 맘먹었고 나도 담임에게 혼이 나면 '시팔, 마누라랑 싸웠냐?'하고 나름 멋진 멘트를 중얼거렸다.
가게에 조용히 앉아 있던 가게주인은 난데없이 창피한 사람이 되어 그 이후에도 줄곧 그 자리에 있었다. 그 가게 주인이 어릴 적에 손금 좀 본다는 사람이 손금을 보더니 '얘는 장사를 할 팔자구먼.' 해서 논밭으로 둘러싼 오지마을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했더랬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저 노인은 아마 죽을 때까지도 장사를 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아니 가게를 지키고 있을 것이다라고 표현하는 게 옳겠다. 와야 할 손님은 인테넛을 보고 있다.
내가 경을 이겼다고 생각한 유일한 때는 국민학교 특활영어 라디오 방송에 관제엽서를 보내면서부터였다. Korea를 써서 보낸 지 보름쯤 후에 두툼한 소포가 도착했다. 그 속에는 학생용 12색 수채물감이 들어있었고 종이 상자 하단에는 '한국교육방송'이라는 문구가 인쇄되어 었었다. 미술 시간이 됐을 때 나는 그 자랑스러운 물감을 챙겨 갔다. 그리고 일부러 물감 상자의 뚜껑을 덮어 놓은 채로 물감을 사용했다. 짝꿍은 그 물감에 쓰여있는 '한국교육방송'이라는 문구를 보고 감탄하는 소리로 물었다.
"너희 아빠 여기 다니셔?"
나는 짝꿍의 눈을 바라보았다. '응'이라고 대답한다면 그 아이는 부러워할 것이 틀림없었다. 경은 저만치서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경을 한번 바라보고 짝꿍에게 대답했다.
"아니, 우리 아빠는 장사해."
나는 베일에 쌓여있는 그 애 아버지의 일터를 알 수가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 애 아버지의 직업도 우위를 점했다.
국민학교 특활영어의 시청자 퀴즈는 과일, 국민학교, 부엌 등으로 이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엽서를 꺼내 4선을 그었다. 대부분의 단어는 백과사전에 있어서 답을 맞히기는 어렵지 않았다. 나는 3번인가 연달아 물감 상품을 받게 되었는데 아마도 그 방송을 듣고 엽서까지 보내는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연달에 추첨이 된 나와는 달리 경은 한 번도 당첨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엽서를 보내면 다 물감을 보내 주는 줄 알고 동네 아이들에게 영어 퀴즈의 답을 적어 엽서를 보내라고 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한국교육방송'이라고 인쇄된 물감을 쓰는 유일한 아이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