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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Dec 19. 2023

세상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

보고 듣는 정성이 필요하다


이게 겨울인지 아닌지 분간도 하지 못할 정도로 따뜻한 날만 이어지다가 지난 토요일 칼바람이 불었다. 한파주의보가 떨어지고 기온은 영하로 뚝 떨어졌고 사람들은 옷깃을 한참이나 여몄고 택시는 잡히지 않았다. 잠실에서 저자 사인회 행사를 마친 밤 8시. 빌딩 사이에서 카카오톡으로 택시를 호출했다. 15분 기다려야 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군 복무했다. 7월과 8월 빼고 열 달 내내 춥다. 전역한 지 수십 년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곳의 눈과 바람을 잊을 수 없다. 스키 장갑을 끼고 양말을 두 개씩 껴신어도 추위를 피할 길 없었다. 철원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빛난다. 그 만큼 춥다는 얘기다. 


잠실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15분 동안 철원 생각이 났다. 어지간한 대구 추위는 겨울도 아니라고 여기다가 오랜만에 와수리를 떠올릴 정도로 매서운 바람이 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또 다른 생각 하나를 문득 떠올렸다. 


서울역과 대전역, 그리고 부산역에서 노숙한 적 있다. 채권자들이 집으로 쳐들어오는 걸 막겠다는 심정으로 밖에서 살았다. 그때는 뭐가 그리도 겁이 났던 것인지. 서울역은 냄새가 고약하다. 대전역은 축축한 느낌이지만, 광장 포장마차 아주머니들 인심이 좋아서 노숙하기가 제법 괜찮다. 부산역은 최악이다. 10년도 더 전이었는데, 그때 이미 벤치마다 팔걸이를 설치해 두었었다. 누울 곳이 없었다. 아스팔트에 박스 깔고 잤다. 


잠실 한가운데서 서울역 노숙자 생각이 났다. 겨울은 그들에게 최악의 계절이다. 박스와 신문지가 겨우 체온을 지켜준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소주만 마신 그들이 겨울밤을 보내는 건 위태롭고 위험하다. 밤새 안녕하냐는 인사를 건네야 하는 전쟁통이나 다름 없다. 


저녁밥은 먹었을까. 잠자리는 정했을까. 어쩌면 지금 이 시간까지도 삼삼오오 모여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서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주고 받는 중은 아닐까. 열차를 타고 대구로 내려오는 동안, 따뜻한 공간에서 편안하게 앉아 있는 내가, 이래도 되는 건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사람, 상황, 그리고 사건들에서 자꾸만 안 좋은 것들이 보인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가 있나.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생각도 바꿔야 하고 행동도 바꿔야 하는 것 아닌가. 마치 내가 인생을 통달한 도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세상과 타인이 모두 잘못 된 것처럼.


언제부턴가 내 입에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말이 자주 나오기 시작했다. 강의가 업이다 보니 수강생을 내리꽂는 태도가 몸에 배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자고 수없이 다짐했건만, 나는 여전히 그들에게서 '문제'만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야흐로 '지적질의 시대'이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쉽게 엿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응원하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사람보다 지적하고 딴지 걸고 험담하고 삐딱하게 구는 댓글러들이 훨씬 많다. 스마트폰을 들어 온라인 세상을 구경하다가 눈과 귀가 혼탁해질까 두려워 얼른 닫는다. 사람 가슴에 칼 꽂는 행위를 저토록 자연스럽게 죄책감 하나 없이 행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한겨울 칼바람에 노숙자를 떠올리는 마음 하나가 여전히 내 안에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빨리 오지 않는 택시, 갑자기 추워진 날씨 등을 탓하며 불평과 불만만 늘어놓았더라면 나는 또 나 자신에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보든 그 속에 감춰진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야 행복하다. 사업 실패 후 힘든 시간 보내던 시절, 내 안에는 시커먼 분노와 원망과 후회 뿐이었다. 그 시절에 아주 조금이라도 세상 아름다움을 볼 수 있었더라면, 어쩌면 그토록 처절하게 망가지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힘들수록 좋은 걸 보아야 한다. 어려울수록 예쁘고 참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시련과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어떻게든 아름다움을 보고 듣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좋아진다. 누군가를 지적하고, 다른 사람 험담하고,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욕해 봐야 달라질 건 없다. 스스로 고난을 자초하는 꼴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인생의 따뜻한 구석을 보고 들으려는 노력이 매서운 삶을 견디게 해준다. 


오늘 나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는가. 보고 들은 세상과 인생에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걸 느낀 적은 없었나. 오늘이 참하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살아가야 하는가. 보고 듣는 것도 정성이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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