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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Dec 31. 2023

너무 좋아하면 탈이 생긴다

고요한 마음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과 사진을 보면서, 세상이 온통 '들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 분야를 막론하고 혼란스럽고 힘든 시절입니다. 서민들의 일상은 팍팍합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즈음에 그 모든 시련을 뒤로 하고 희망을 품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겠지요.


저 자신은 조심스럽고, 또 세상 사람들의 소란이 걱정 되기도 합니다. 한때, 좋은 일이 있으면 방방 뛰고 설렘 가득한 시기에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했던 적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항상 뒤에는 안 좋은 일이 따라 붙었습니다. 11월부터 12월까지, 제 삶에는 늘 불행과 불운이 따랐습니다. 


미신처럼 믿으며 연말에는 항상 '조신하게' 지냈습니다. 투자할 일 생겨도 자제했고, 즐겁고 행복한 일 생겨도 억지로 평정을 유지했으며, 그저 글 쓰고 책 읽으며 수행자처럼 두 달을 보내곤 했습니다. 다행히도, 처신을 하는 만큼 효과는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정도 외에 특별한 악재가 없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좀 웃긴 생각이긴 합니다. 매년 연말에는 몸도 마음도 움츠린 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사실은 말도 안 되는 얘기잖아요. 무치 무당처럼 미신 같은 운세를 믿는 격입니다. 저 자신 지극히 합리적이로 현실적인 사람인데도, 과거 처참한 역경을 겪은 탓에 조심하는 습관이 생긴 것인데요. 가끔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삶에 주의하는 습관은 좋은 점도 있습니다. 그 좋은 점들 덕분에 신빙성 없는 태도를 매년 반복하는 것이지요. 기쁨을 절제하고 행동거지를 조심하는 삶이 왜 좋은가 몇 가지 정리해 봅니다. 


첫째, 좋은 일에 방방 뜨지 않으니 나쁜 일에 초연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감정은 파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많이 올라가면 많이 내려가게 마련입니다. 기쁨에 젖어버리면 고통에 무너집니다. 좋은 일보다 별로인 상황이 더 많이 생기는 게 인생입니다. 잠깐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탓에 오랜 시간 불행한 경우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강한 멘탈을 갖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무슨 엄청난 수행자는 아닙니다. 매 순간 평정심을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다만, 예전처럼 감정 기복이 심해 일을 망칠 정도는 아닙니다. "이래도 허, 저래도 허" 마음을 고르게 유지하려는 노력 덕분에 힘든 일 생겨도 한 번에 무너지는 일 없습니다. 


셋째, 좋은 일 생기길 기대하는 습관도 사라졌고, 나쁜 일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습성도 없어졌습니다. 기대하는 습관과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습성의 치명적인 폐해는, '오늘과 지금'을 싹 다 놓치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고요한 마음은 '지금'을 살게 합니다. 조급하게 서두르지도 않고, 안달복달 시간에 매달리지도 않습니다. 


넷째, 일상을 지루하게 느끼거나 타성에 젖는 일 없습니다. 인생을 이벤트처럼 살아가는 사람 있는데요. 저도 과거에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뭔가 특별하고 재미 있는 일이 벌어져야만 잘 사는 건줄 알았거든요. 힘든 일 겪고 나니까, 아무 일도 없이 평온한 하루가 최고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음의 평정은 그냥 오늘이 감사한 날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다섯째,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기쁜 일에 방방 뛰어도 자신을 돌아볼 시간 가지지 못하고요. 시련과 고난에 휘둘려도 정신 차리지 못합니다. 마음이 잔잔해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고, '나'에게 주목해야만 더 나은 삶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고요한 삶은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해줍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힘든 시간 보낸 사람이라면 오늘로써 끝을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빌겠습니다. 2023년에 생각보다 일일 술술 풀렸다 싶은 사람들은 2024년에도 그 복이 잘 유지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몸과 마음이 아프거나 힘든 사람들에게 치유와 번영이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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