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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Jan 01. 2024

매일 반복하는 나만의 의식

내 소중한 하루


아버지는 산에 가셨고, 어머니는 파룬궁 수련을 하시고, 나는 글을 쓴다. 어제, 12월 31일에도 그러했고 오늘, 1월 1일에도 똑같다. 새해 첫 날, 뭔가 색다른 일이 펼쳐지길 기대하며 약간의 설렘도 가져 보지만 나의 하루는 '컨트롤씨'의 무한 반복이다. 예전에는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지겹고 지루하기만 했었다. 뭔가 새로운 이벤트가 열리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심정으로 살았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무너졌던 날, 나는 그 매일의 반복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축복이었는가 깨달을 수 있었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도 두 번 다시 내게 오는 일상을 함부로 여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이다. 


새해 첫 날, 나는 변함없이 일기를 썼고 습작을 했고 아홉 번째 책 집필했고 블로그 포스팅 작성중이며 장석주를 읽었고 오늘 밤에 진행할 [라이팅 코치 양성과정] 강의 자료를 준비하였다. 23년이 가고 24년이 오는, 그 장엄한 광경을 보기 위해 해맞이 장소마다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였다고 한다. 어느 곳에는 10만 인파가 몰렸다 하니,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기대와 흥분이 어느 정도인가 짐작할 만하다. 


밤 12시 제야의 종소리가 울려퍼졌을 때, 아들의 스마트폰에는 친구들이 구입한 컨디션 사진이 일제히 올라왔다. 자기들만의 퍼포먼스 같기도 하지만, 그때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적어도 새벽 3~4시까지는 술판을 벌인다는 뜻이다. 1월 1일은 숙취로 날려버리는 것 아닌가 싶어 안타깝고 염려된다. 


새 노트를 펼쳤을 때, 새 볼펜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새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기대와 설렘은 기분을 좋게 만든다. 노트를 꾸준히 채우는 것, 볼펜으로 열심히 글을 쓰는것, 그 사람에게 정성을 다하는 것, 정성껏 책을 읽는 것이 우리에겐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산에 다녀오신 아버지는 "올해는 떡국 나눠주는 행사가 없는 모양이다"라며 조금은 실망하신 듯한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집에서 먹으면 그만이지요" 투박하게 쏘아붙이신다. 노부부의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거실에 울려퍼지는 걸 보니 또 하루가 시작되었는가보다.


매일 반복하는 것이 그 사람이다. 매일 생각하는 것이 그 사람이고, 매일 말하는 것이 그 사람이고, 매일 행동하는 것이 그 사람이다. 새로움과 설렘과 흥분을 기대하고, 또 그런 순간이 나름의 즐거움과 행복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어쨌든 '순간'은 나의 진짜 모습일 수 없다. 


집 가까운 곳에 <맥코리아>라는 치킨집이 있다. 유명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맛이 좋아 인근 주민들에게 인기가 많다. 여름이면 노상에서 테이블 놓고 늦은 시간까지 더위를 식히고, 겨울이면 식당 안이 손님들로 북적인다. 작년 5월부터 8월까지 아무런 소리 소문 없이 문을 닫았다. 오며 가며 문 닫힌 치킨집을 보면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인가 궁금했다. 9월부터 다시 영업을 시작하여 다행이라 여기고 요즘도 가끔 치킨을 시켜 먹는다. 


매일 들리던 망치질 소리가 멈추면 대장장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고, 매일 들리던 대패 가는 소리가 멈추면 목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며, 매일 화면에 등장하던 연예인이 갑자기 사라지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매일 글 쓰는 작가가 글을 쓰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반복은 지겨운 게 아니라 삶 그 자체이다. 사업에 크게 실패하고 모든 걸 잃었을 때, 매일 지겹도록 반복하던 삶이 한 순간에 사라졌다. 아버지와 어머니 툭탁거리던 소리도 사라졌고, 아들 칭얼대던 소리도 사라졌고, 믹스 커피 한 봉지 끓는 물에 타 먹는 일상도 모조리 사라졌다. 실패에 대한 회한의 눈물보다 반복되는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고 살았던 나의 어리석음에 더 많은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평범한 삶이 탁월함에 이르는 최선의 방법은 반복이다. <생활의 달인>에 등장하는 모든 주인공들은 타고난 능력 때문이 아니라 같은 일을 긴 세월 수없이 반복하는 사람들이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은 공부를 반복하고, 운동 잘하는 사람은 운동을 반복하고, 글 잘 쓰는 사람은 매일 글을 쓴다. 


그럼에도 일상과 하루를 지겹게 여기는 사람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첫째, 그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더 대단한 무슨 일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셋째,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만족과 감사를 모르기 때문이다. 다섯째, 몸도 마음도 지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매일 반복되는 삶이 축복임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첫째, 자신보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자기보다 위쪽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비교하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데, 이것은 자기 삶에 아무런 도움 되지 않는 태도이다. 아래를 볼 줄 알아야 겸손과 감사를 배우게 된다. 


둘째, 생은 결국 끝을 맺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메멘토 모리! 언젠가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는 날 올 테고, 언젠가 이 사람 더 이상 만나지 못하는 날 올 것이고, 언젠가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날 반드시 온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오늘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겠는가. 


셋째,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나'라는 존재가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세포는 끝도 없이 분열과 생성을 반복하고, 뇌는 생각을 멈추지 않으며, 감정도 수시로 달라진다. 같은 일상이 아니라 엄청난 변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넷째, 일상에 끌려다니지 말고 스스로 하루를 주도해야 한다. '시간이 되면',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하는' 그런 하루를 멈추고, 내가 목표로 삼고 계획한 일들을 '해 나가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계획 없는 삶은 무의미하다. 무의미한 하루가 계속 되면 멘탈에 금이 갈 수밖에 없다. 


다섯째, 열 가지 반복 뒤에 한 가지 새로운 도전을 더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많은 이들이 한두 가지 일상에다 스무 가지 새로움을 더하려 한다. 마음은 늘 들떠 있지만 실속은 하나도 없는 경우다. 묵묵히 나아가는 하루 사이에 새로움이 하나씩 섞여야만 그 인생 재미가 있다. 


매일 글을 쓴 지 10년 넘었다. 매일 블로그에 포스팅을 발행한 지 8년 지난다.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매일 같은 분량의 일기를 쓴 지 3년 되었다. 매일 책을 읽고 독서노트를 작성한지 8년이 되었고, 월 평균 25회 강의를 이어온 지도 8년 넘었다. 탁월함은 없다. 오직 반복만 있을 뿐. 단 한 번의 예외도 두지 않는 매일의 반복이 최악의 실패자를 [자이언트 북 컨설팅]의 대표로 만들었다. 작가와 강연가로 멋진 삶을 누리게 된 것은 모두 반복 덕분이다. 


새해 목표를 세웠다. 4년째 같은 목표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분량의 일기를 쓰는 것. 이 단순하면서도 '지겨운' 목표가 내 삶의 중심을 잡아준다. 목표는 하나뿐이었는데, 인생은 전부 좋아졌다. 누구를 만나든 강조한다. 무식할 정도로 반복하라! 절대 멈추지 마라! 자신과 타협하지 마라!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 오늘과 다름없는 내일.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오늘 하루 더 없을 정도로 살아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지칠 때 있지만, 반복과 루틴이야말로 나태와 권태를 이겨낼 수 있는 최고의 도구란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어제 새벽부터 지금까지, 전에 없이 심란하고 복잡한 심경이다. 컨디션 최악인 상태로 연말과 연시를 맞는다. 견디기 힘들지만 꺾이지는 않는다. 1월 1일이라고 생각하면 상당히 부담스럽지만, 그저 내 하루라고 여기면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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