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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Mar 05. 2024

책을 쓰면 성공할 줄 알았다

시간과 노력


K는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술 마셨을 땐 전화하지 말라고 그토록 당부했건만. 그는 또 어김없이 밤 열 시쯤 전화를 했고, 혀가 꼬부라진 소리로 신세를 한탄했다. 수화기 밖으로 술냄새가 풍기는 것 같았다.


"야! 이은대! 책 쓰면 성공할 수 있다며? 근데 난 왜 이 모양이냐? 너, 나한테 거짓말 한 거냐?"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지난 8년간, 단 한 번도 글쓰기/책쓰기를 돈이나 성공과 결부시킨 적 없다. 난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굳이 K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말해 봐야 내일이면 다 잊어버릴 테니.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내가, 아부지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돈을 좀 가진 게 있었거든. 왜 너도 알지? 울아부지 퇴직금이랑 주식해서 번 돈 전부 나한테 주셨잖아. 그때만 해도 세상 다 가진 것 같았는데. 야! 근데, 이은대! 넌 임마, 사람이 그러는 게 아니다. 왜 술은 끊고 지랄이냐? 너 때문에 내가 요즘 통 술 마실 기회가 없다 임마!"


K는 비트코인으로 돈을 잃었다. 주식으로도 꽤 많은 돈을 날렸다. 직장은 일찌감치 때려치웠고, 맨날 모니터 앞에 앉아서 그래프와 숫자만 보고 살았다. 이제는 더 이상 투자할 돈도 없다고, 몇 달 전 술에 취해 전화했을 때 말했다. 


천만 원이 넘는 돈을 내고 어디서 책쓰기 수업을 들었나 보다. 그러고는 책을 한 권 출간했는데, 이후 판매가 시원찮았다고 한다. 책만 쓰면 성공한다, 인생 역전할 수 있다! 화려한 광고에 혹해서 작년 이맘 때 즈음 탈탈 털어 강의 신청을 한 모양이다. 


K가 술에서 깨지 않길 바란다. 내일 아침 술에서 깨면 지독한 현실을 다시 마주해야 할 테고, 그걸 견디지 못해 또 술을 퍼마실 거다. 그렇게 점점, 바닥으로 간다. 나는 차라리 K가 지금 이 술에서 영영 깨지 않고, 그래서 더 이상 술을 마시지 않기를, 말도 안 되는 바람을 품어 보는 것이다. 


토하는 소리가 한참이나 들렸다. 아까와는 달리 코맹맹이 소리로 바뀌었다. "야! 이은대! 넌 좋겠다! 이제 고생 끝났지 뭐.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많지? 책은 몇 권이나 썼냐? 열 권? 스무 권? 캬! 우리 작가님! 내 친구 작가님! 잘 먹고 잘 살아라 임마!"


어느 순간 전화가 툭 끊어졌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고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그 안에, K가 아니라 오래 전 내 모습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실패 후 망가지는 모습은 다들 비슷한 것인가. 어쩜 이리 그 시절 내 모습과 하나도 다르지 않을까. 속에서 뭔가 시커먼 것이 올라와 나를 집어삼킬 것처럼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 서울로 가서 K를 만나야만 할 것 같았다.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할 텐데. 


주식하는 사람은 주식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독서법 강의하는 사람은 책 읽으면 인생역전 가능하다고 말한다. 부동산 투자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은 역시 부동산이라며 큰소리 뻥뻥 친다. 스마트 스토어 강사는 스마트 스토어가 인생 비법이라 말하고, 전자책 강의하는 사람은 전자책만이 파이프라인이라고 강조한다. 


(     )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다! 문장의 형태로만 보면, 빈 칸에 들어갈 수 있는 단어는 수백만 가지가 넘는다. 고물상 해서 성공한 사람도 있고, 철거 사업으로 떼돈 번 사람도 있고, 남의 집 계단 청소만 해서 갑부가 된 사람도 적지 않다. 


과거의 나, 그리고 지금의 K는 세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첫째, 인생 방향을 스스로 결정한 것이 아니라 남의 말만 듣고 선택했다는 사실. 둘째, 본질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오직 돈만 보고 덤볐다는 사실. 셋째, 자신의 실패를 세상 탓 환경 탓 사람 탓으로 돌린다는 사실. 이 세 가지 실수는, 무슨 일을 해도 실패하게 만든다. 


아직도 돈 때문에 책 쓰겠다는 사람 많다. '작가'라는 타이틀이 그럴싸해서 책 쓴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목적이 무조건 나쁘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 본질적인 요소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는 이유는,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으로 타인을 돕는 행위이다. 자신만의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이 핵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꾸만 내게 '이상주의'라고 한다. 그러면서, 세상은 그리 말랑한 곳이 아니니 현실 감각을 키워야 한다고. 결과는 어떠한가? 이상주의자인 나의 현실은 갈수록 좋아지고, 현실을 강조하는 그들의 삶은 점점 초라하고 각박해진다. 


타인을 돕는 인생. 이것이 현실이다. 지독하고 손발 오그라들고 적응하기 힘들지만, 남을 돕는 인생이야말로 우리 앞에 떨어진 가장 시급한 현실이다. 눈 똑바로 뜨고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한 달만에 수억 벌 수 있다는 얘기야말로 비현실이며 망상이다. 무엇이 본질인가! 종일 이것만 생각해도 인생 좋아진다.


돕는 인생에 대해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 많다. 오늘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을 적고, 거기에 인생 도움 될 만한 메시지 한 줄 붙이면 글이 된다. 매일 글 한 편씩 쓰면, 그 글을 읽는 누군가가 생각이란 걸 하게 된다. 충분하다. 글 한 편 정성스럽게 쓰는 것이 남을 돕는 일이다. 더 무엇이 필요한가. 


이렇게 매일 누군가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어떤 일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기회'라는 것이 찾아온다. 도움을 준 사람은 어떤 경로로든 자신이 베푼 몇 배의 가치를 돌려받게 되는 것이다. 돌려받겠다고 작정하고 돕는 게 아니라, 돕다 보면 복과 덕이 쌓이는 거다. 


내가 주장하는 삶에는 반드시 시간과 노력이라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빨리'와 '쉽게'를 중요하게 여긴다. 나의 실패가 '빨리'에 있었고, K의 실패가 '쉽게' 때문이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 지극한 진실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빨리'를 외치는 사람이 여유롭게 살아가는 모습 본 적 없고, '쉽게'를 주장하는 사람이 인생 수월하게 산다는 얘기 들은 적 없다. 느리게 살았더니 인생 빠른 속도로 좋아졌다. 기꺼이 어렵고 힘든 길 가겠다 선택했더니 삶이 점점 수월해졌다. 시간과 공을 들여 쌓아올린 탑은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책을 쓰면 성공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책을 쓰면, 책을 쓰지 않은 사람에 비해 더 많은 기회를 갖게 된다. 꾸준히 책을 쓰면 기회는 더 많아지고, 그런 과정에서 자기만의 콘텐츠를 강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책 한 권 달랑 써놓고 우려먹겠다는 심보로 마냥 건방 떨며 기다리기만 하는 사람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멋진 활과 화살을 가지게 되었다 하더라도,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사람에겐 무용지물이다. 책을 쓴 사람은 자신의 책을 활용해야 한다. 강의도 하고 세미나도 열고 또 다른 책도 쓰고 SNS에 관련 주제 글을 매일 올리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메시지를 제공하고...... 책 쓰고 나면 더 바빠야 한다. 출간 후 반짝 설레발 떨다가 사라지는 작가가 더 많으니 한심한 노릇 아니겠는가. 


성공하고 싶다면, 간절하다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지금은 과거 어느 때보다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세상이라는 점. 유튜브 등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성공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시절이라는 사실. 나 자신만 부지런하면 못할 것이 없는 시대이다. 감 떨어지기만을 바라는 사람에겐 최악의 세상이기도 하다. 


책을 쓰면 성공하는 게 아니라, 성공으로 향하는 길 위에 '책쓰기'라는 도구도 놓여 있다고. 지금에라도 당장 술 끊고 자기 책을 손에 쥐고 세상 가운데로 나아가라고. K에게 전해주고 싶다. 


지금 행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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